우리는 때때로 동물을 보며 상상한다. 이들이 우리처럼 말을 하고, 두 발로 걷고, 동등한 지능을 갖게 되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말이다. 이런 상상에 빗대 구 소련(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한 작품이 바로 1945년 조지오웰이 쓴 ‘동물농장’이었다. 여기서 오웰은 동물들이 인간을 닮게 된다면 서로 편을 가르고, 강자와 약자 간에 급을 나눠 착취하려 드는 인간들의 본성 또한 닮아갈 것이라고 봤다.

오웰은 특히 작중 소련의 지배층을 탐욕스런 ‘돼지’에 비유한다. 이들이 겉으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규칙을 내걸어 만든 ‘동물농장’에선 아무 권력도 갖지 못 한 짐말 ‘복서’ 같은 동물들이 혹사 당한다. 마치 ‘평등’의 가치를 내건 공산주의 정부가 실상은 철저히 기득권들에 의해 계급화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는 소시민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런 비유를 떠올리게 하는 애니메이션들이 있다. 바로 미국 디즈니사가 제작한 ‘주토피아(ZooTopia)’와 일본 애니 제작사 ‘오렌지’에서 만든 ‘비스타즈(Bestars)’다.

◇초식 vs 육식, ‘평등’의 뒷면은 결국 ‘불평등’

개봉 직후 장기 흥행을 이어갔던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만족시킬 만큼 완성도를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다.

오웰의 동물농장이 기득권인 돼지와 그들의 수하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을 모두 하층 계급으로 비유했다면, 두 작품은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양분된 사회를 그린다. 겉으로는 평등함을 꿈꾸지만 실상은 본능과 유전적으로 타고난 각자의 특성에 따라 끊임없이 서로를 편 가르려 하는 사회를 말이다.

디즈니 사의 ‘주토피아’는 제목부터 그런 사회의 양면을 희화화한다. ‘동물원(Zoo)’과 이상적인 낙원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의 영단어를 합성한 ‘주토피아’는 극 중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시의 이름이다. 이 도시엔 인간은 없지만 인간처럼 스마트폰과 전철 같은 현대 기술을 누리고, 경찰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며, 세금을 걷기도 한다. 주토피아의 구성원들은 특히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육식동물은 철저히 자신들의 본능을 억누르고, 초식동물들도 자유롭게 사회 진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가치관은 주토피아를 동경해 시골마을인 ‘토끼굴’에서 상경한 토끼 ‘주디 홉스’를 통해 점차 양면성을 내보인다. 어린시절부터 주토피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되길 꿈꾼 주디는 주토피아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경찰 내 소일거리로 여겨지는 교통 벌금 딱지 붙이기 같은 업무만이 주어진다. 육체적으로 약한 초식동물은 거친 경찰 일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동료 경찰 대다수, 그리고 경찰서장조차 육식동물로 이뤄진 경찰 조직은 철저히 주디를 소외시킨다.

'주토피아'에서 배척당했던 닉의 상황을 비유한 이미지.

그런 그녀를 돕는 여우 ‘닉’은 육식동물이지만, 역시 주디처럼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다. ‘여우는 교활한 본성을 지녔다’는 편견으로 초식과 육식, 양 진영 모두 그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닉은 특히 어린시절 친구들이라 믿었던 주변 친구들이 “포식자들은 본능을 억제해야 한다”며 전자 입마개를 씌운 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

극 중 누군가의 음모로 육식동물들이 이성을 잃고 초식동물을 습격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런 주토피아의 양면성은 더욱 극명해진다. 이 사건이 이어질수록 주토피아에는 “육식동물을 잡아 가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육식동물을 박해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겨난다. ‘누구나 평등한 유토피아’라고 불리던 주토피아가 사실은 편견과 혐오로 누구든 역차별의 고통에 빠질 수 있는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희생양으로 지탱되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

‘성인판 주토피아’로 불리는 애니 ‘비스타즈’의 묘사는 좀 더 잔혹하다. 비스타즈의 사회 역시 겉으론 주토피아처럼 육식동물이 식욕과 본성을 억누르며 초식동물과 평등하게 살아가는 곳으로 그려진다.

비스타즈의 주인공이자 체리튼 고교 2학년생인 늑대 '레고시'. /넷플릭스

극 중 주인공 늑대 ‘레고시’가 다니는 체리튼 학원은 특히 초식과 육식의 양립을 가르치고, 이를 위한 사회 지도층을 배출하는 게 목적인 명문학교다. 동시에 학생들의 야생 본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각자의 종 특성을 살린 방에 들어가 지내게 하는 수업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레고시의 경우 어두침침한 배경에 보름달 조명을 크게 띄운 방에 늑대 친구들과 함께 들어가 사색을 시키는 식이다.

애니 비스타즈 속 체리튼 고교와 동물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철저히 채식을 시키는 장면. /넷플릭스

그러나 학교는 정작 실생활에서는 각 동물들이 본성을 드러내는 것을 철저히 억압한다. 기숙사에서도 초식과 육식은 철저히 분리돼 생활하며, 각 방에는 철저히 서로 다른 종들이 섞여 지내도록 한다. 같은 종의 학생이 몰려서 집단을 이루면 다른 종을 배척하거나 공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식당 메뉴 또한 육식은 철저히 금지되며, 단백질은 곤충과 계란 등으로만 섭취하게 된다. 초식과 육식 간 이종교배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혼종들보다 순종을 더 치켜세우기도 한다.

이에 체리튼 학원에서는 학생회장 격인 ‘비스타’를 두고 매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다. 비스타를 차지한 학생은 유력한 사회 지도층이 되기 마련인데, 육식동물들은 역대 비스타가 주로 초식에게 돌아갔다는 불만을 표출한다. 설상가상 학교 내에서 초식동물이 살해 당하는 의문의 ‘식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초식 학생과 육식 학생 간의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진다.

극 중 차기 '비스타'로 여겨지는 사슴 루이. /넷플릭스

차기 ‘비스타’ 주자로 유력한 사슴 ‘루이’는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이 학교를 넘어서 동물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루이와 그의 집안은 막대한 자금을 지닌 대기업 가문으로, ‘자본’을 무기로 초식동물의 지위를 육식동물 위에 올려놓는 데 주력한다. 그럼에도 이들 초식동물의 지도층들은 육식동물들의 우위에 완전히 설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암암리에 이들이 초식동물의 시체를 식용으로 사는 ‘뒷거래 시장’을 허용해준다. 결국 비스타즈 속 동물사회의 평화는 초식동물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낮은 계급의 이들이 죽어서 가는 암시장을 희생양 삼아 유지되고 있던 것이다.

◇현실, 동물보다 나을까?

두 애니를 보다 보면 ‘현실 속의 인간이 이들 동물보다 나을까?’란 질문이 떠오른다. 힘이 약한 초식 동물을 배척하는 주토피아의 육식동물과, 반대로 육식동물을 야만적이라며 배척하는 비스타즈의 초식동물들. 이들의 모습이 때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남녀 성차별, ‘평등’을 외치며 되려 ‘모두의 불평등’을 불러왔던 공산주의의 역사, “너 어떤 당 지지하니?”라고 되물으며 서로 편을 나누고, 다른 쪽에게는 각종 테러를 가하며 지지세력을 모으는 행태들과 겹쳐 보여서다.

결국 이들 두 애니는 각자의 방식으로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 간의 평화와 타협점을 찾아낸다.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도 이들 동물들처럼 차별과 평등의 문제 앞에서 타협점을 찾아내는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

◇주토피아(2016)

개요 애니 l 미국 l 109분

등급 전체 관람가

특징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동물들

평점 IMDb⭐ 8/10 로튼토마토🍅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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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타즈(2019)

개요 애니 l 일본 l 시즌1개·12회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성인판 주토피아

평점 IMDb⭐ 7.8/10 로튼토마토🍅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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