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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널리 알려진 노래 ⭐‘범 내려온다’는 한국관광공사의 서울 홍보용 뮤직비디오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 영상에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만 나올 뿐,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밴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밴드와 안무팀이 함께 등장한 동영상도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관광공사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 장면

안무를 맡은 김보람(빨간색 추리닝에 주립 쓴 사람)은 이 노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판소리를 록으로 편곡한 ‘이날치’의 음악이 없었다면 그런 춤도 등장할 수 없었다. 조선 후기 명창 이름을 밴드명으로 따온 이날치는 장영규의 프로젝트 밴드이다. 결과적으로 장영규가 없었다면 ‘범 내려온다’도 없었다.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의 흥겨운 선율에 독특한 춤과 패션으로 '21세기 도깨비'란 별명을 얻은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멤버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장영규는 199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활동한 ‘어어부 프로젝트’ 출신으로, 이 밴드 음악은 그때 들으나 지금 들으나 상당한 음악적 내공(대부분 이해심과 배려심으로 이뤄진다)이 없으면 10초 이상 듣기 어려운 아방가르드 그 자체다(이런 음악을 되풀이해 듣다가 결국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면 절대 줄거리를 알 수 없는 영화를 극찬하는 영화평론가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어어부 프로젝트 1집에 훗날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내는 원일이 참여했으니, 장영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악을 자신의 음악에 섞어 온 셈이다.

이날치 단체사진. 왼쪽에서 세번째 흰 머리 남성이 장영규다.

장영규가 본격적으로 국악을 록 음악과 접목한 밴드가 바로 ⭐‘씽씽’이다. 이 팀에서 장영규는 문제적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을 만났다. 이 팀은 미국 공영라디오방송인 NPR의 ‘Tiny Desk Concerts’에 출연하면서 경기민요를 전세계에 알렸다. 이날치 이전에 씽씽이, ‘범 내려온다’ 이전에 씽씽의 경기민요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 라이브에서 빨간 가발을 쓴 사람이 이희문, 뒤에 서서 베이스를 치는 사람이 장영규다. 이 동영상에서 씽씽은 민요 메들리, 난봉가, 사설 난봉가를 잇따라 부른다. NPR은 영상 소개에서 “이 음악이 한국 전통음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어떤 밴드에서도 보거나 듣지 못한 음악”이라고 했다.

SsingSsing의 NPR 방송국 콘서트 장면

남자 소리꾼들이 여장을 한 파격은 박수무당이 굿을 할 때 여장을 하고 콧소리를 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메인 보컬이 민요를 부르고 양 옆의 가수가 희한한 추임새를 넣는 모양이 미국인은 물론 우리에게도 파격 그 자체다. NPR 라이브 영상 5분 45초쯤 여자 가수(추다혜)가 목청을 터뜨리는 장면을 보라. 서양인들에게는 너무나 새로워서 기괴할 정도일 것이다. 영상 11분쯤 보컬로 나선 신승태가 가짜 눈썹을 말아올리다가 노래를 시작하는 장면은 너무나 연극적이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은 다 어디 있다가 나타난 것인가.

씽씽의 음악만 해도 경기민요를 조금 독특하게 편곡하고 록밴드가 반주하는 정도였다. 기타·베이스·드럼이 딱히 튄다고 할 수 없는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장영규는 ‘범 내려온다’에서 판소리를 완전히 다른 노래로 바꿔놓았다. 일단 이날치의 밴드는 베이스 두 대와 드럼이다. 이렇게 간단한 악기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이후 가장 중독적인 베이스 도입부를 만들어냈다. 이런 편성은 세계 대중음악에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호주에 ⭐‘옴니픽(The Omnific)’이란 밴드가 ‘투 베이스 메탈’이라고 할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는 정도다.

‘범 내려온다’는 조선 후기 판소리 중 하나인 ‘수궁가’의 범 내려오는 대목을 가져온 것이다. 자라가 토끼의 초상을 들고 뭍에 올라와 토생원을 호령해야 하는데 잘못해서 ‘호생원’을 부르니 호랑이가 숲속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그린 희극적 내용이다. ⭐이 노래 원곡을 들으면 장영규의 편곡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베이스 두 대와 드럼으로 이뤄진 록음악으로 편곡하고 박자를 넣어 부르니 판소리가 아니라 씽씽의 민요 같은 노래가 됐다. 이날치에서 노래를 맡은 네 명은 모두 서울대 국악과 출신이니,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쉽게도 씽씽은 활동을 접었지만 장영규와 이희문은 각자의 방식으로 국악과 대중음악의 지평을 각자의 방향으로 넓히고 있다. 그 결과 장영규는 ‘범 내려온다’를 내놓았다. 이희문은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스밍 List!] ☞조선닷컴(chosun.com/watching)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한예리 ‘Rain Song’

🎧한영애 ‘봄날은 간다’

🎧들국화 ‘사랑한 후에’

🎧롤러코스터 ‘어느 하루’

🎧소히 ‘산책’

🎧윤석철 트리오 ‘즐겁게,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