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 베컴, 가수 강다니엘의 SNS 팔로워 기록을 가뿐하게 꺾은 95세 할아버지, 본인 이름을 딴 동·식물만 10여개, 영국인이 국보(national treasure)라 부르는 사나이….
동물 애호가와 다큐 마니아들을 설레게 할 소식이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전설적 거장, 영국의 수퍼스타 동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 경의 작품이 최근 새롭게 풀렸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데이비드 애튼버러: 생명의 색을 찾아서(Life in Colour with David Attenborough·2021)’ 시리즈를 공개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다큐는 동물들의 다채롭고 경이로운 ‘색깔’이 주제. 인도, 파푸아뉴기니, 호주, 파나마 제도, 스코틀랜드, 케냐, 쿠바, 코스타리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애튼버러 경 이름을 달고 나온 만큼, 스케일과 퀄리티가 압도적이다. 대형 화면으로 온 가족이 함께 물들기 좋은 무공해 청정 콘텐츠라 할 수 있겠다.
◇Stream or Skip?…왜 동물 다큐에서 사람이 보일까
Stream it!(틀어봐!)
색깔이 주제이다 보니, 시각적 즐거움을 확실하게 보장한다. 동물들은 짝짓기를 위해, 경쟁자와의 싸움을 위해, 적으로부터 숨기 위해 자신의 색을 바꾼다. 일부러 화려하게 치장해 이목을 끌기도 하고, 주위와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위장하기도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또렷한 채도는 욕망과 권력의 상징. 행실에 따라 관상이 변하듯,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사느냐에 따라 동물의 몸 색깔도 달라진다. 비록 겉모습은 볼품 없어도 남들이 못 보는 빛과 색을 읽는 눈을 가졌다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Skip it?(건너뛴다고?)
다만, 속세에 찌든 어른이라면, 자연 다큐를 시사(時事) 다큐로 받아들여 한참 사회 탐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보고 있으면 비슷한 인간 종자들이 머릿 속을 속속 스쳐 지나가기 때문.
밋밋한 색채로 조직에서 천년 만년 살아남는 사람,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기 색깔을 아무렇지도 않게 휙휙 바꾸는 사람, 섣부르게 개성을 드러냈다가 단명(短命)하는 사람, 실제 능력보다 세 보이려고 겉모습을 부풀리는 사람···. 정글보다 정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후유증인걸까?
◇공작새 눈알 무늬에서 떠오른 ‘조만대장경’
예를 들면 이런 식. 인도 남부지방의 바위 구릉,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동물 ‘수컷 공작새’가 스마트폰처럼 엉덩이를 부르르 떨고 있다. 180㎝나 되는 깃털, 150여개의 반짝거리는 눈알 무늬가 현란하다. 수컷 공작새는 꼬리를 부채 모양으로 활짝 펼쳐 구애를 시작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만 적어 놓은 전직 법무장관의 트위터(‘조만대장경’) 글처럼, 깨알 같은 눈알 무늬가 주변을 미혹한다. 이 모습은 마치 네온사인처럼 어딘가 과한 구석이 있다. 멋지기로 유명한 수컷 공작새는 정작 평소엔 자기 꼬리에 말 그대로 짓눌려 산다. 마구 뿌린 미사여구, 스스로 내뱉은 말 폭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서아프리카 가봉의 ‘맨드릴개코원숭이’는 또 어떠한가. 수컷은 성체가 되면서 밋밋했던 얼굴이 확 달라진다. 테스토스테론이 정맥을 따라 분비되면서, 코 주변이 짙은 빨간색을 띄기 시작한다. 이 무렵 개코원숭이는 엉덩이 주변도 선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개코원숭이의 붉은 코는 일종의 완장이다. 운동권 경력을 훈장 삼아 권세를 누리는 정치인과도 비슷해 보인다. 동물의 세계 역시 색깔이 뚜렷해야 권력을 쥘 수 있다. 푸르스름하고 하얀 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룰수록 힘이 세다는 증거다. 일단 코부터 잘 생겨야 하는 ‘만사코통’ 사회인 것이다.
◇“엄마···” 하얗게 변한 홍학 보며 반성
색깔은 모름지기 잘 타고나야 하는 것이지만, 후천적 영향에 의해서도 변한다. 분명 같은 종인데 먹이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독 개구리와 오색 달팽이, 새우 먹다 분홍색으로 변해버린 홍학, 설산(雪山)에 몸을 숨기려고 겨울이면 털이 흰색으로 변하는 들꿩, 북극 여우, 눈덧신토끼도 있다.
특히 독박 육아에 지쳐 백발이 되어버린 ‘경력 단절녀’ 홍학을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위대함이 절로 떠오른다. 백발 홍학은 분홍 깃털을 되찾을 때까지, 아이돌 그룹 같이 화려한 ‘군무(群舞)’ 행렬에 끼지도 못한다.
지나치게 눈에 띄는 얼룩말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 얼룩말 여러 마리가 떼지어 달리기 시작하면, 사자·하이에나·치타가 크게 당황하고 만다. 이 맹수들은 눈 앞이 어지러워 ‘사냥감’ 특정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심지어 파리떼마저도 얼룩말 줄무늬에 거리 감각이 교란돼 제대로 착지하지 못할 정도. 혹시 직장이나 학교에 불만이 있다면, 얼룩말 무늬 옷을 입고 가보는 것도 좋겠다.
다큐는 이 밖에도 호랑이가 주황색인 이유, 밋밋하고 칙칙한 색깔로 위장해 암컷 행세를 하는 ‘복장 도착자’ 납작 도마뱀 등 동물 색깔에 숨겨진 각종 비밀을 소개한다. 자연 다큐의 매력은 우리가 보고 이해하는 세상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 있다. 애튼버러 경의 이번 작품 역시 시청자에게 이렇게 묻는 듯 하다. ‘당신은 지금 어떤 색으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개요 자연 다큐 l 영국 l 3편(각 40~50분대)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특징 대형 화면으로 보는 명품 다큐
⭐평점 IMDb 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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