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의 한 장면./넷플릭스

부부는 시든 꽃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밥을 먹는다. 고개를 떨군 두 사람 마음의 거리도 양끝으로 벌어진 식탁의 거리만큼 멀다. 말없이 밥을 뜨지만, 마음으로는 수백번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런 지옥을 겪었을까? 아빠는 먹던 밥을 치우고 홀로 자리를 뜬다.

마당에 나선 아빠는 집 외벽에 남은 딸아이의 흔적을 마주한다. 아빠의 영혼이 그 흔적을 껴안다가 이내 미끄러진다. 빨랫감을 정리하던 엄마는 딸의 열린 방문 앞으로 홀린 듯 다가가,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문을 닫는다. 세탁기에서 딸이 입던 자그마한 티셔츠를 발견한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원제 :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의 한 장면./넷플릭스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인데, 자식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말은 차마 만들 수 없다고 했던가. 올해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원제 :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은 학교 총기 사고로 자식을 떠나보낸 참척지변(慘慽之變)의 슬픔을 담았다.

딸의 방에 나란히 앉은 부모는 아이와 관련된 추억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딸이 태어나던 날, 유난히 축구를 좋아하던 어린 딸, 딸과 함께한 자동차 여행, 딸의 열 번째 생일날, 좋아하던 남자아이와 첫 뽀뽀를 하던 순간.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의 한 장면./넷플릭스

기억은 사고가 벌어진 그날로 향한다. 교복 입은 딸에게 책가방을 메어 주던 날. 그날 아침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부모의 영혼은 학교로 향하는 딸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손을 뻗어보고 감싸 안아 보고 온몸으로 가려도 보지만, 결국 아이의 걸음을 멈추지는 못한다.

내내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은 딸이 학교에 도착해서 조용해진다. “탕, 탕탕!”. 허공을 찌르듯 퍼지는 총소리와 사이렌 소리, 학생들의 비명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딸은 부모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낸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랑해요)’.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의 한 장면./넷플릭스

화면은 전반적으로 흑백에 가까운 무채색이다. 색은 딸에 관한 생생한 기억에만 제한적으로 쓰였다. 딸이 입던 하늘색 티셔츠, 함께 바라본 금빛 석양, 딸이 선물한 보랏빛 행복, 초록이 가득한 마당에서 뛰어놀던 날들. 내내 물을 머금은 듯 흐릿하던 화면은 사고가 일어난 날 학교의 성조기를 비출 때 가장 강렬해진다. 성조기의 빨강과 파랑은 이내 다급한 사이렌 색으로 변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야기가 슬픔과 공허함에서 그치도록 두지는 않는다. 딸의 영혼은 어떻게든 부모의 영혼을 닿게 하고, 서로가 곁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부부가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 때 배경은 노랑이다. 딸과 여행하며 마주한 석양의 금빛과 같다. 부모에게 보내는 딸의 웃음은 나 없는 세상도 사랑해 달라는 듯 천진하다.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의 한 장면./넷플릭스

미국 내 모든 총기사고 정보를 기록하는 ‘총기 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17세 이하 어린이는 1373명에 달한다. 이중 0~11세 어린이는 299명이다. 영화는 단 한 명이라도 죄 없는 어린이들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주인공들에게서 묘하게 동양인의 얼굴형이 보인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노영란 씨가 제작을 맡았다. 영화가 이어지는 12분 내내 색, 음악 등 모든 표현이 최대한 절제됐다. 차마 다루기 힘든 슬픔을 표현하려는 제작자의 고민이 엿보인다. 노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식을 잃은 슬픔은 감히 공감할 수 없는 마음이라 고민이 많았다. 더 섬세하게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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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의 한 장면./넷플릭스

영화는 단 12분 만에 공허함과 슬픔을 경험하게 한다.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누구나 함께 울 수 있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담았다.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고통은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결국 회복된다. 영화는 비극 너머에도 희망이 있다고 우리를 보듬는다.

개요 애니메이션 l 미국 l 2020 l 12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대사 없이도 마음을 울리는.

평점 IMDb⭐7.8/10 로튼토마토🍅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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