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이하 라스트 댄스)를 아직 안 봤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중에 보려고 아껴뒀든가, 농구에 관심이 없든가.
마이클 조던.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조던의 얼굴을 몰라도 조던이란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농구 잘하는 선수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데 조던의 이름은 왜 그리 오랫동안 회자될까. 라스트 댄스는 조던이 언제, 어떻게, 왜 그토록 유명해졌나 하는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제공한다.
농구를 몰라도 된다. ‘농구에 관심 없는데 왜 봐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라스트 댄스는 조던이 상대를 압도하고 우승하는 장면뿐 아니라 피나는 노력, 못 말리는 승부욕, 조직 생활에서의 불화, 인간적 고민이 담긴 집약체다. 그의 숨길 수 없는 약점과 궁색한 변명까지 다룬다. 단순한 농구 이야기가 아닌 ‘휴먼 감동 실화’인 것이다.
조던을 ‘지드래곤 운동화를 신은 외국 농구선수’라고 부르던 사람도 조던 마스터가 될 수 있다. 파이팅. 농구하는 장면이 나올 땐 복잡한 생각은 접고 농구공을 림에 꽂는 장면을 편안하게 감상하면 된다. 조던의 플레이는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결하고 아름답다.
다큐는 예전에 찍은 영상과 최근 찍은 인터뷰로 구성됐다. 수퍼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수십년 뒤 우리가 안방에서 생생한 고화질 영상으로 즐길 수 있는 건 당시 한 제작진이 시카고 불스 선수들의 모든 것을 촬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던 덕택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 경기장 복도, 라커룸과 훈련장은 물론이고 호텔방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선수들도 만만치 않다. “이런 건 왜 찍느냐”고 투덜거리는 건 기본이고, 제작진이 ‘잘 쉬고 있냐’고 물으면 “잘 쉬고 있었지. 너네가 오기 전까진”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그런 장면이 더 재밌다.
◇G.O.A.T.
미국 프로농구 NBA는 연속 우승도 하기 어려운 리그다. 1946년 설립된 NBA에서 3연속 우승은 조던이 등장하기 전 두 번 있었다. 1984년 데뷔한 조던은 시카고 불스를 이끌고 그곳에서 3연속 우승을 두 번 이뤘다. 3연속 우승을 거둔 뒤 ‘야구를 하겠다’며 은퇴했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와 또 3연속 우승했다.
조던이 ‘스타들의 스타’가 된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으로 NBA는 전 세계적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나이키는 그와 함께 세계 최고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했다. 라스트 댄스에는 농구 전설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인터뷰이로 틈틈이 등장한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닥터드레, 드루 배리모어, 무하마드 알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팝스타나 타 종목 전설도 빼놓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나온다. “전 시카고 주민”이란 직함을 달고.
외국에선 ‘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을 ‘GOAT’로 줄여 말하곤 한다. 이 단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조던 덕이 크다. 한 팀에 고작 5명이 뛰는 농구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종목이다. 그만큼 수퍼스타가 수두룩하고 그들을 서로 비교하는 논쟁도 자주 벌어지지만, 조던 이야기가 나올 때만큼은 모두 이견 없이 GOAT를 외친다. 그 와중에 꿋꿋이 르브론 제임스가 조던을 뛰어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꼰대, 나쁜 자식
가수 나훈아가 했던 말이 있다. “너도나도 다 좋아하는 사람은 수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다. 싫어하는 사람 30%가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칠 정도로 좋아하는 수퍼스타가 된다.”
조던의 ‘꼰대력’은 싫어하는 사람 30%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던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찬양하면서도 툭하면 흉을 본다. 조던은 엄청난 꼰대였고 나쁜 놈이었으며 때론 뻔뻔하고 쪼잔했다. 조던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이를 접한다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소 말버릇부터 그렇다. 경기 후 라커룸에서 벌어진 캔맥주 타임. 아무리 경기 후라지만 경기장에서 대놓고 술을 마셔도 되느냐는 의문은 일단 접어두자. 농구 황제가 마시고 싶다는데 누가 막겠는가. 아무튼 얌전히 마셔도 될 것을 조던은 굳이 농담이랍시고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한다. “그거 알아? 내가 데뷔했을 땐 말이야. 다들 하프타임(경기 중간 휴식 시간)에 맥주 마시고 담배 피웠다니까?”
조던은 훈련 중엔 팀원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지옥 같은 분위기를 만들곤 했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래놓고 “내가 주는 압박을 못 견디면 NBA 플레이오프도 못 견딘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쳤다. 연습 게임에서 지나치게 흥분한 그를 필 잭슨 감독이 가라앉히려 하자 그는 도리어 더 격분해 왜소한 선수에게 시비를 걸고 주먹다짐을 한다. 당시 ‘피해자’들은 상대가 워낙 거물이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낸다.
그런 조던의 적이 되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이 다큐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제리 크라우스 단장도 예외가 아니다. 조던은 크라우스가 키가 작고 뚱뚱하다는 점을 집요하게 언급하며 괴롭힌다. 경영 마인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농구선수가 일반인에게 인신공격을 하다니 비겁하지 않은가. 또 크라우스가 마음에 든다고 점찍은 선수를 국제대회에서 만나자 집중 마크하며 아주 그냥 묵사발을 내버린다. 그 선수는 무슨 죄인가. 이쯤 되면 크라우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2017년 작고해 자료 화면으로만 등장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지친 이를 위한 영웅
그러나 조던은 못된 놈일지언정 일관성은 있었다. 농구를 벗어난 영역에 대해 주제넘게 함부로 나서진 않았던 것이다. 그는 흑인 최초로 상원의원에 도전한 하비 갠트를 지지하는 광고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가 흑인 커뮤니티의 비난을 받는다. “공화당원도 조던 운동화를 산다”고 괜한 농담을 했다가 욕을 두 배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조던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다시 강조한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함부로 말할 순 없어.”
농구공은 둥글고 농구 규칙은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만큼 직관적이지만 세상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 조던은 그 시절부터 이미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좀 배워야 할 사람이 있다. 농구 코트 밖에서 사회운동에 열중하는 요즘 NBA 선수들이다. 예를 들면 태평양 건너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을 지적한 이를 “못 배운 자”라고 한다든가, 시즌 중 갑자기 잠적해 경기를 안 뛰면서 정치 행사에는 참석한다든가 하는 선수들 말이다. 갈수록 범람하는 ‘선택적인 정치적 올바름’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조던의 신념 아닌 신념에 눈길이 갈만하다.
◇김정은의 절친, 미워할 수 없는 악동 로드먼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신스틸러’가 데니스 로드먼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 바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의 절친한 친구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에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로드먼의 주장이다. 바다 건너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그가 다른 미국인보다 좀 더 특별한 이유다. TV조선은 2017년 그의 방북을 담은 다큐 ‘데니스 로드먼의 평양 방문기’를 방영하기도 했다. 기행을 펼치는 운동선수는 쌔고 쌨지만, 그를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김정은급 독재자의 친구 정도는 돼야 하므로 쉽지 않다.
로드먼은 불스에 오기 전 조던을 대놓고 다치게 하는 전술을 썼던 ‘나쁜 녀석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의 주축이었다. 불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잭슨 감독의 조련을 받고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진 않고 악동, 논란 제조기로서 면모를 계속 이어간다. 멘털이 강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여린 사람이라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도 농구는 잘했다.
일탈도 적당히 해야 욕이 나오든가 하지, 로드먼처럼 하면 말문이 막혀서 뭐라 할 말도 없을 것 같다. 훈련 지각 같은 건 언급이 무의미한 수준. 경기 중 갑자기 카메라맨을 발로 차지 않나, 결승전 기간 도중 행방불명됐다가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등장해 체어샷을 날리질 않나…. 아, 체어샷을 날린 게 아니라 맞았던가? 아무튼 재밌는 점은 제멋대로 사는 사나이지만 농구 스타일만큼은 팀원에게 이타적인 선수였단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어찌 됐든 농구만 잘하면 상관없다’는 스타일의 조던과 찰떡궁합이었다.
◇가장 위대한 장면
라스트 댄스는 길다. 1시간 짜리 영상이 10개나 있다. 입체적 구성을 의도한 건지, 1990년대 초반과 1990년대 후반을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기꺼이 시간을 내고 집중력을 발휘할 만하다. 그렇게 마지막 화의 “모든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장면”까지 보고 나면 길을 걷다 보이는 신발 매장의 조던 로고가 새롭게 보일 테고, ‘드림팀’이라는 단어를 볼 때 자연스레 조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최정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킨 스타의 스토리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제목 ‘라스트 댄스’는 말 그대로 마지막 춤이란 뜻이다. 잭슨 감독이 1997-1998시즌을 시작하며 붙였던 이름. 시즌 전, 조던과 그의 동료들이 수년 간 이룬 성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스 단장은 감독을 교체해 팀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했다. 불화가 이어지다 결국 잭슨 감독이 딱 1년만 더 하는 것으로 봉합됐다. 조던과 그의 핵심 동료 스코티 피펜도 팀을 옮기든 은퇴를 하든 불스를 떠날 예정이었다. 시즌이 끝나면 지금의 팀도 영영 끝이라는 걸 알고 임했던 시즌. 말 그대로 전설들이 추는 마지막 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