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반가 하리 부다 마가르
두 다리 없는 사람이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 주인공은 구르카 용병 출신인 하리 부다 마가르씨. 201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그는 13년이 지난 후 세계 최고봉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장애를 지닌 산악인들의 에베레스트 등정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에는 시각장애 산악인 에릭 바이헨마이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우리나라의 고故김홍빈 대장도 열 손가락 없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마가르 외에도 ‘의족’을 착용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산악인들이 있었다. 2006년 뉴질랜드 산악인 마크 잉글리스는 최초로 의족을 착용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2018년에는 중국 산악인 샤보위가 69세의 나이에 의족을 착용하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무릎 위까지 절단된 장애인 중에서는 마가르가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다.
시련 후 더 강해지는 법
마가르는 다울라기리산군이 보이는 네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보냈던 그는 언젠가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말겠다는 목표를 가지기도 했지만, 그건 여전히 목표에 불과했다.
1999년 그가 19세 되던 해였다. 그는 세계 최강의 용병이라 불리는 영국의 구르카 용병 부대에 자원했다. 영국 육군이 1816년 네팔 침공 이후 네팔 구르카 부족 전사로 이루어진 용병 부대를 유지하고 있던 덕이었다. 그렇게 그는 구르카 용병으로 전 세계의 전장을 누비며 10여 년간 복무했다.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10년 아프간 전쟁터에서 급조폭발물IED 공격으로 두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군인 20명이 한 줄로 걸어가던 중 10번째에 서 있는 그의 발밑에서 폭탄이 터졌다.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장애가 생긴 후 절망에 빠진 끝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알코올 중독에도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법. 이후 그는 실의를 딛고 일어섰다. 곁에서 그를 응원하는 세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였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운명을 건 도전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등정이 그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됐다. 그에게 에베레스트는 단순한 등반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다면 장애인들이 가진 용기와 투지를 세계에 보여 주고,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어릴 적부터 꿈꿔온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게 됐다
그의 도전에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 구르카 산악대장이었던 크리쉬 타파다. 그는 2016년부터 마가르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었다. 마가르는 타파의 도움을 받아 유럽 몽블랑(4,809m), 네팔 수리아쿤다(5,145m), 토롱라 패스(5,416m), 메라피크(6,476m)와 같은 고산 등정에 성공했다. 2022년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까지 나아갔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기반을 탄탄히 다진 셈이다.
3배의 시간, 그리고 정상
순조롭게 등반을 준비하던 중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앞길을 막아섰다. 그것은 바로 네팔 정부의 ‘장애인 에베레스트 등반 금지령’이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장애인 차별이라는 또 다른 큰 산을 넘어야 했다. 2017년 12월 네팔 정부는 산악규정을 개정해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금지하기로 했다. 산악 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네팔 정부의 장애인 에베레스트 등정 금지령을 폐지하기 위해 그와 동료들은 투쟁했다. 그들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2018년 네팔 대법원은 네팔 정부의 조처가 차별적이라는 청원을 받아들였고, 다행히 이 금지령은 취소됐다. 그에게 다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수년간의 준비를 끝낸 그는 2023년 4월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끈질긴 투쟁과 훈련 끝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지만 악조건은 계속됐다. 등반하기에 날씨가 너무 추웠던 것이다. 보온병에 넣어둔 뜨거운 물마저 얼어버리는 극한의 추위가 이어졌다. 그 때문에 베이스캠프를 떠나기까지 마가르는 18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5월 6일 마침내 베이스캠프를 떠나 정상으로 향했다.
등반은 히말라야의 초등 루트인 남동릉 노멀루트를 따랐다. 전문적인 셰르파들의 지원이 있었지만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산악인이라면 3시간이면 통과했을 빙하 구간도 그는 11시간이나 걸렸다. 의족이 얼어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발열체를 데워 관리를 해줘야 했다.
짧은 의족 때문에 보폭이 좁았던 그는 남들과 같은 거리를 가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3배의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고산등반에서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은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5월 18일 오후 9시 50분 그는 최종 캠프인 사우스콜을 떠나 정상 공격에 나섰고, 다음날 오후 3시경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그리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다시 최종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18시간 소요되는 정상 공격을 그는 25시간 만에 무사히 끝낸 것.
비록 악천후 때문에 산소마스크가 얼어붙어 정상에서 등정의 기쁨을 오래 누리진 못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 왔던 세계 최고봉에 당당히 서게 됐다.
두 다리를 잃고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다리를 잃었기에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었다”고 답했다. 다리가 있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와 같은 다양한 이유가 그를 막아섰지만, 두 다리를 잃고 나서야 그를 막아서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것.
마가르에게 에베레스트 등정은 첫 번째 목표에 불과하다. 현재 그의 최종 목표는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는 “당신이 꿈이 아무리 크더라도, 당신의 장애가 아무리 크더라도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