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수도자로서 끝까지 남아야겠다는 몸부림의 흔적이 일기장에 남아 있더라고요. 지금은 해이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수도자로서 첫 마음을 다시 찾아야지 싶어서 50년 묵혀둔 일기장을 공개하게 됐어요.”
이해인(81) 수녀가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을 맞아 기념판과 산문집 ‘해인의 바다’(이상 가톨릭출판사)를 함께 펴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해인의 바다’. 그는 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해 ‘예비 수녀’ 4년, ‘유기서원기’ 8년을 거쳐 1976년 종신서원을 하고 정식 수녀가 됐다. 이 책은 종신서원하던 1976년의 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수도 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 수도자가 하느님과 대화하듯, 때론 응석부리듯 털어놓은 이야기가 풋풋하다.
종신서원 후 첫 소임은 수녀회가 운영하던 성 분도 병원의 ‘수납 담당’이었다. ‘시 쓰는 수녀’와는 잘 맞지 않는 소임이었고 힘들었지만 세상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여러 종류의 차트를 접수하며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숨 돌릴 겨를 없는 업무와 수도 공동체 내의 사소한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내 “자기가 행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 역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신부의 강론 내용을 되새기고, 좋아하는 보라색 초에 불을 켜고 앉아 묵상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도 토로한다. “생각만큼 실천을 계속하지 못하는 안타까움”(7월 5일) “요즘은 저의 기도가 너무 기계적이지요? 정말 죄송합니다”(7월 28일) 같은 글이다.
수도 생활을 지탱하게 해준 것은 기쁨이었다. “아침에 성당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가슴이 뛰었습니다.”(6월 1일) “주님, 자꾸자꾸 감사 노래를 당신께 바치고 싶어집니다.”(6월 11일) “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당신 안에 모여 하나로 사는 이 생활만큼 분에 넘치는 행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12월 12일)
1976년 12월 31일 마지막 날 일기는 이렇다. “주님, 장미의 길을 원했던 베르나데트였으나, 이제는 민들레의 길만을 원하는 클라우디아를 앞으로 당신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책 뒷부분에는 종신서원을 앞두고 8일간 피정하면서 적은 글과 작년에 적은 글도 있다. 수녀원 내 ‘마리아의 뜰’이라는 노인 수녀 휴게 공간에는 그가 쓴 글귀가 붙어 있다고 한다. ‘노을빛 노년의 모든 순간들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도하는 오늘!’이라는 글귀다.
이해인 수녀는 9일 오전 통화에서 “수도자로서 첫 마음을 되새기며 여생을 ‘명랑’을 덕목으로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11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는 북콘서트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