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활절을 앞두고 강원 평창 산마루예수공동체에서 이주연 목사님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목사님이 2014년에 간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진단 한 달 후 다시 검사를 받았을 때에는 각종 검사에서 암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그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이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는 아직도 주변에서 ‘목사님이 건강이 안 좋은데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입니다.
이 목사님이 너무나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셔서 그렇지만 그가 어떤 자세로 목회를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이 목사님 말씀을 살려서 전해드리겠습니다.
<2014년 봄이었어요. 그 전해인 2013년 여름 무렵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저는 원래 아무리 힘들어도 새벽에 눈만 뜨면 바로 벌떡 일어나요. 그런데 그 무렵에는 이상하게 아침에 설교하고 나면 왜 그렇게 힘든지, 평생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한 달쯤 지나니 힘들어서 새벽기도회 설교를 하는데 말이 잘 안 나오고, 설교하고 나면 진이 빠졌어요. 그런 상태에서 여름엔 캄보디아로 평화 캠프를 다녀왔는데 폭염에 잠도 잘 못 자고 해서, 초죽음이 돼서 돌아왔지요. 그래도 건강검진 받으러 갈 생각은 안 했어요.
원래 제가 40대까지는 건강에 관해선 진짜 자신 있었어요. 달리기를 하면 몇 사람은 앞질렀고, 매년 8월 첫 주 한여름에 청년들을 이끌고 광야체험이라 해서 설악산 종주를 해마다 했어요.
그런데 2014년 그 때 인근 교회의 사모(목사의 부인)가 폐암 3기 진단을 받았어요. 제 40년 지기인 폐암 전문인 의사가 계셔서 제가 그분께 모시고 가서 진찰을 받았어요. 그런데 의사분이 “목사님도 이제 연세가 있는데다, 얼굴이 너무 안 좋으신데 검사 좀 받고 가시라”고 해서 그분의 후배 의사를 통해 검사를 받았어요.
12년 전 “암입니다” “그렇군요”...평안이 밀려왔다
그 다음 주에 결과를 보러 갔는데 딱 3㎝짜리가 나온 거예요. 간에서. 피 검사 결과도 그렇고요.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하더군요.
“목사님, 암입니다.”
“그렇군요.”
그는 제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다시 한 번
“목사님, 암입니다”라고 했어요.
저는 또 “그렇군요” 했지요.
그랬더니 그는 책상 앞의 모형을 보여주면서 “이게 간경화이고, 심화되면 이렇게 암이 됩니다. 그러니까 수술을 하면 되니까 치료 계획을 세워야 되고…”라고 얘기해요. 그러면서 치료 스케줄을 빨리 시작하자고 하는데, 저는 그냥 한 달쯤 후부터 하자고 했어요.
‘암’이란 얘기를 듣는 순간 그냥 평안했어요. 평안이 밀려온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순간 완전히 내려놓은 거 같아요. 그게 4월 8일이에요. 부활절 전이었죠. 차를 몰고 강변 따라서 오는데 강가에서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순간적으로 시제(時制)가 모두 과거로 바뀌는 거예요. ‘아, 아름다운 지구의 여행을 했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을….
그러면서 딸들이 떠오르는데 ‘이거 어떡하지?’ 싶다가 ‘나는 10대 때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오늘의 내가 됐는데, 애들은 다 컸고 대학도 나왔으니…’ 싶었어요.
갚아줄 시간이 없다...그러니까 빚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아내를 생각하니 그렇지 않은 거예요. 내가 늘 마음속에선 큰소리 쳤거든요. 난 집 돌보질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언젠가 내가 다 갚아줄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늘 미뤘던 거지요. 근데 이젠 ‘언젠가’가 없는 거예요. 시제는 과거형으로 바뀌었는데, 시간이 없는 거라. 그러니 이건 정말 난망이더라고요. 우선은 내가 교만했다는 생각과 더불어서 시간이 진짜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빚지지 말았어야지’ 그 생각이 딱 드는 거죠. 빚지지 말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교회에 도착을 한 거예요. 평소 나는 목회를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는데, 뜻밖에 ‘나 같은 죄인, 나 같은 인간에게 교회를 세우게 했으니 영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암이래” “당신 안 죽어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갔는데 이 사람(아내)이 저녁에 학교 마치고 온 거예요. 쓱 들어오더니 “병원에서 뭐래요?”라 물어요. 그래서 “암이래” 그랬더니 대뜸 “당신은 안 죽어요”라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려요.
속으로 ‘저 여자 믿음도 좋다. 나보다 더 좋네’ 싶었어요. 그렇다고 크게 섭섭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위로라도 해줘야지, 말이라도….
다음날 아침 밥 먹으면서 “어제 무슨 얘기야?” 그랬더니 “당신은 여태 당신 일한 거 있냐고. 주님의 일을 늘 했는데, 지금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주님이 데려가겠냐?”라고 해요. 내가 “허 참, 내가 그랬나?” 했죠.
그런데 교회서 난리가 났어요. 장로님이 한 분이 설악산 부근 콘도를 가지고 계셨는데 거길 예약해 주시면서 ‘쉬다가 한 달 후에 치료받으러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려가서 하루 자고, 다음날 권금성에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서 보니 공기가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지내다 그 주 금요일 날 올라와서 주일 예배 설교하면서 지금까지 (주일예배 설교)안 쉬고 한 거예요.
한 달 후, 암이 사라졌다
그리고 약속된 대로 한 달 후에 병원에 갔어요. MRI도 찍고, 피검사도 하고. 근데 다 정상으로 나온 거예요. 그 한 달 사이에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는 ‘추적하자. 일단 다음 달에 찍고, 그 다음 달에 또 찍고 석 달을 계속 찍고, 그 다음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됐죠. 주치의 선생님은 정말 진정으로 저를 대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후 석 달 만에 오라고 하는데 일부러 펑크 내고 넉 달 만에 가기도 하고. 아주 감사한 일이지요.
“여든 다섯까지? 하루씩 살면 되지요”
그렇게 2년을 하고 나니까 일단은 좀 안심해도 된다고 했고, 3년이 지나니 의사 선생님이 “목사님, 이제 이 병으로는 안 죽습니다”라고 해요. 그러면서 “85세까지 사실 겁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난 몇 살까지 살겠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그저 목사는 일하다가 그냥 순교하고 죽는 거지, 이런 식의 생각이 날 지배하고 있었거든요. ‘하루씩 살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머쓱했어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정색을 하면서 “아유 목사님, 여든 다섯이 평균 연령이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90살까지도 사실 수 있고, 그 이상도 사실 수 있습니다”라고 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아, 하루씩 살면 되죠.”
그러고 나왔어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멈칫하시더니 혼잣말처럼 “아, 그렇죠.” 그러는 거예요.
암 선고 다음날,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더라
그 와중에 제가 변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암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온 그 다음날 아침에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세속적으로 말하면 아내에게 ‘금 가락지 해줄게, 은 가락지 해줄게’ 하듯이 나중에 다 해준다고 했는데, 다 갚고 죽을 거라고 했는데 해줄 시간이 없잖아요. 그때 든 생각이 신세지지 말고 살아야겠다. 그때 시작해서 요즘도 설거지는 제가 해요. 주일 날 아침에도 설거지가 있으면 해놓고 나가요. 새벽 5시에. 왜냐하면 저도 양심이 있지. 지금 제가 뭘 해줄 수 있겠어요?
암 진단을 계기로 깨달은 거요? 신세지지 말자. 또 큰소리치지 말자. 죄 짓지 말자.>
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원래 잡았던 인터뷰 날짜를 변경하게 되면서입니다. 이 목사님이 검진 날짜와 인터뷰 날짜가 겹친 걸 깜빡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만큼 암에 대해 둔감해진 것이지요. 이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기적’이란 단어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기적을 느끼기엔 충분했습니다.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부활절 다음날인 6일, 병원에서 이번 검진 결과를 들으셨다고 하네요. 사진으로 보면 12년 전 검진 당시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오진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암 징후는 없고요. 의사 선생님은 “이젠 과로하지 말고 조심하며 사시라”며 2개월 후 MRI를 한 번 더 찍어보기로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목사님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답니다. 그는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이제는 3년을 끝이라 여기고, 3년씩 살자. 3년은 짧지 않다. 예수께서도 공생애 3년을 사시고 다 이루었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주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 중에 하루씩 완결하며, 3년을 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십자가의 사랑, 그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니면 말도 삼가며, 시간을 아끼고 살자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