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교회 건축의 원형으로 꼽히는 독일 토르가우 예배당. 가톨릭 미사가 제대 중심이었던 데 반해 오른쪽 벽에 설치된 설교대가 중심이 돼 설교를 잘 듣기 위한 구조로 지었다. /김한수 기자

1557년 스위스 제네바의 생제르베 교회에서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목사의 설교 중에 한 신자가 잠든 것. 그는 옆 사람이 팔꿈치로 건드려 깨웠지만 강하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설교가 진행 중인데 소란스럽게 교회를 나갔다. 제네바의 행정 조직이 경고하자 그는 이렇게 항변했다. “목사가 이미 90분이 넘게 설교했고, 나는 다리가 아팠고, 용변이 급했다.”

이 일화는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이후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예배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박경수 장신대 총장의 번역으로 출간된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커린 막 지음·대한기독교서회)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신교 예배가 얼마나 많은 논쟁과 투쟁 끝에 정착된 것인지 그 진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종교개혁사 전문가 박경수 장신대 총장. /김한수 기자

박 총장은 역자 서문에서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리의 개혁이 아니라 예배의 개혁이었다”고 적었다. 흔히 면벌부(免罰符)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 종교개혁은 일상생활 전반까지 뒤흔든 대지진이었다. 신자들이 먼저 맞닥뜨린 것은 이론이 아니라 예배였다. 예배는 이론을 실재 현장에 구현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바뀐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일 예배 참석을 독려, 혹은 강제하기 위해 예배 시간에는 상점, 식당, 술집 문을 강제로 닫게 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성모 신앙을 비롯해 성인 공경 관습과 성인상도 없애고 여러 축일(祝日)도 축소했다.

1564년 프랑스 리옹에서 개신교(위그노) 예배를 위해 지어진 '파라디 성전'을 그린 작품. 설교단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지은 이 건물은 신구교 내전 중 파괴되었다.

교회 공간 변화도 극적이다.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면서 제단이 아니라 설교단이 공간의 중심이 됐다. 교회 건축도 설교단을 중심으로 원형 건축이 등장했다. 장 칼뱅은 “설교는 회중을 그리스도의 학교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설교를 잘 듣기 위해 의자가 설치된 것도 종교개혁의 여파다. 영주(領主)나 부유한 사람들은 설교단 주변의 좋은 자리에 고정석을 갖게 됐다.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自國語)로 설교한다는 점은 이해에 도움이 됐지만 설교 시간의 길이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기도’는 서서 할 것인지 무릎 꿇고 할 것인지, ‘세례’의 경우도 물에 풍덩 잠길 것인지 뿌릴 것인지 등등.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뜨거운 감자였다. 예배 때 반주(伴奏)와 화음(和音)을 넣을 것인지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책은 각각의 부분이 어떤 논쟁과 투쟁을 거쳐 현재의 예배 형식으로 진화했는지 옛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 표지./대한기독교서회

한국 교회도 한때 전자 기타와 드럼 사용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 적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시작된 ‘온라인 예배’만큼의 큰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책을 번역한 박 총장은 “예배 형식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라며 “그렇지만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