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조계사 바로 길 건너편 작은 빌딩 3층에 ‘보화선원’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낯선 ‘위앙종’ 선원입니다. 실내는 단출했습니다. 창문 쪽으로 불상이 놓여 있고 맞은편엔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와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것은 최근 ‘미국 스님 한국 표류기’(모과나무)라는 책을 낸 비구니 현안(45)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님은 이곳에서 선명상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승복과는 다른 짙은 갈색 승복을 입고 맨발 차림인 현안 스님은 키가 훤칠하더군요. “170㎝밖에(?) 안 된다”고 하시네요. 말투도 시원시원했습니다. 스님은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27세 때 미국으로 훌쩍 건너갔답니다. 미국에서 화장품 회사를 운영했답니다. 한때 연매출이 200만 달러(약 30억 원) 정도에 이를 정도로 사업이 잘됐다고 합니다. 마당에 잔디 깔린 주택에 포르셰 스포츠카를 몰았고, 비즈니스석으로 세계를 누볐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30대 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 불교를 만났을까요. 사업은 잘됐지만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찾아봤다고 합니다. 등산도 하고, 춤도 추고, 그림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에서 ‘무료 토요 선명상’이라는 공지를 발견했답니다. 그래서 LA 근교의 노산사를 찾아서 베트남 출신 미국인 스님인 영화(71) 스님을 만나 명상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때가 2013년 무렵이라고 하네요. 이후로도 등산, 춤, 그림, 여행 그리고 명상 수행을 병행했고요. 그는 처음 명상을 배울 때 “한국에 있을 땐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랐기에 시키는 대로 해서 좋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사찰은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한 갈래인 위앙종입니다. 스님은 “중국 위앙종이 아니라 미국 위앙종”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명맥이 끊긴 위앙종이 선화 상인(上人)을 통해 미국에 전수됐고, 현안 스님의 은사인 영화 스님도 미국에서 선화 상인을 은사로 출가했다고 합니다. 한국 불교가 중국에서 건너왔지만 ‘한국 불교’라고 부르듯이 ‘미국 위앙종’이라고 하죠. 그래서 스님은 자신을 ‘코리안 아메리칸 스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찰에서는 ‘결가부좌 수행’이 기본이라고 합니다. 좌선과 스님 면담으로 수행이 구성되는데 가장 핵심은 일 대 일 맞춤형이라고 합니다. 각자의 사정을 경청하고 그에 맞는 수행을 지도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원칙에 대해서는 엄격하다고 합니다. 결가부좌 수행은 한국 젊은이들도 힘들지요. 그렇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며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라고 한답니다. 오히려 그런 점이 서구 젊은이들에게도 통했다고 합니다. 물론 현안 스님에게도 잘 맞았고요.
이 사찰에는 ‘선칠(禪七)’이라는 집중 수행 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조계종 사찰의 안거(安居)처럼 7일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기간입니다. 1주일만 할 수도 있고, 계속 이어서 1~2개월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안 스님은 이 선칠 수행을 통해 스스로 내면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다른 취미 활동보다는 선명상 수행에 무게가 실렸고, 겨울에는 2개월, 여름엔 1개월씩 절에서 살게 됐다고 합니다. 자신이 절에서 지내는 기간에도 사업이 굴러갈 수 있도록 스케줄과 사업 내용도 조정했고요. 선칠 수행을 할 때마다 한 단계씩 더 변화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행에 맛을 들인 것이죠.
그렇게 수행과 사업을 병행하던 2019년의 어느 날. 은사 스님이 출가 이야기를 꺼내셨다지요. 한국인들의 방문이 많아지면서 수행 열기를 본 스승이 “한국에도 도량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현안 스님이 “한국에 도량이 생기면 한국 스님이 있는 것이 좋을 텐데요”라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대뜸 “네가 가면 되겠네”라며 출가를 권했다는 것. 식사 중이었는데 현안 스님은 순간 입안의 음식이 다 튀어나올 뻔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수행의 경험이 쌓였기에 자연스럽게 출가를 결심했답니다. 스승은 그에게 3개월 말미를 줬고, 현안 스님은 그 기간 동안 “실컷 놀았다”고 했습니다. 출가 전 ‘버킷리스트’ 중에는 딱 하나 ‘마다가스카르 여행’만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답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차례 “사업할 때는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출가하게 됐고 마침 한국에서도 도량으로 쓸 만한 건물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미국 국적의 청년 사업가가 ‘미국 스님’이 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죠.
‘미국 스님’이라고 했는데요. 낯선 시선으로 한국 불교를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도 눈에 띕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 불자들의 스님에 대한 공경심입니다. 그가 2020년 초 귀국했을 때는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돼 입국자들은 ‘시설 격리’가 필수였던 시절입니다. 스님은 격리 시설에 들어가면서 ‘잘됐다. 무문관 수행처럼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김에 단식을 해보자’고 결심했답니다. 그런데 단식은 이틀 만에 끝났다고 합니다. ‘스님이 입소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어떤 불자 보살님이 나물과 누룽지 등 음식을 정성스레 장만해 시설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통해 문 앞에 전달했다는 것이지요. 그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 단식은 끝났답니다. 그러면서 미국 수행 환경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동안거, 하안거는 3개월씩 진행됩니다. 사찰에서 뒷바라지를 해주지요. 그렇지만 미국 사찰은 명상 수행도 무료로 진행하니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아 3개월씩 집중 수행 기간을 이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격리를 마치고 찾아간 ‘도량’인 ‘보산사’는 청주 근처의 과거 웨딩홀로 쓰이던 건물이었습니다. KTX 오송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라는 점이 장점이었고요. 미국까지 찾아와 수행하던 분들이 청주 보산사로도 많이 와서 수행을 했답니다. 젊은이들도 많이 찾아오고요. 이후 수도권 거주자들을 위해 분당에 보라선원, 그리고 강북 지역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 조계사 앞 보화선원을 잇따라 개원했고요.
책에는 스승인 영화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영화 스님은 늘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묻기 전에 가르치려 하지 마라.” 청년들은 종교와 권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먼저 가르치려 들면 마음의 문이 닫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안 스님은 말합니다. “아는 것을 전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 친절을 베푸는 편이 낫습니다.”
2020년 초 한국에 돌아와 이제 6년. 그동안 한국에서도 10여 명이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많은 도움도 받았습니다. 청주 보산사에 있을 때에는 마야사 현진 스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작년부터는 부산 홍법사 심산 스님의 배려로 한 달에 한 번씩 ‘아메리칸 선명상’ 프로그램도 진행하게 되었답니다.
책에는 선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손글씨 소감문도 실려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선명상을 만나고 시작하며 내가 얼마나 자극과 생각에 끌려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고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선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앉아있는 고통이 있지만 고통만큼 기쁨이 있어요.” “‘고통을 참고 견디어라. 포기하지 말라.’ 위앙종의 명상법은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수행법이지만 지침을 따라가다 보니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힘과 정진하는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 머릿속이 늘 복잡했는데 선명상을 한 이후에는 머릿속이 비워진 듯 맑은 상태가 되어 그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소감문에서도 ‘쉽지 않은 수행법’이란 표현이 나오는데요. 현안 스님도 “기분 좋은 명상을 찾지 말고 진짜로 내가 변할 수 있는 명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안 스님은 사업가 출신이기에 한국에서도 법인 관리 등을 비롯해 이른바 ‘사판(事判)’ 같은 일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스님들이 많이 탄생하는 데 일조를 할 수 있어 좋다”고 했습니다.
책 제목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표지 그림도 그렇고 재미있고 파격적입니다. 스님은 “선명상하는 학생들과 함께 여러 제목을 놓고 투표를 했는데 이 제목이 뽑혔다”고 했습니다. 그는 “표류라는 단어가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떠돈다는 뜻이잖아요? 부처님도 한 나무 아래서 머물지 말라 하셨듯이 스님들이 너무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된 것 같아서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썼습니다. 인터뷰에서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도 따뜻해지고, 남에게도 따뜻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안주하지 않겠다는 스님, 그 다짐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