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정상의 석학인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교수가 지난 14일(현지 시각) 뮌헨 근처 슈타른베르크 자택에서 영면했다. 오늘날의 극심한 세계적 혼돈 상태에서 이 시대의 스승이자 등불과도 같았던 그는, 좌우 이념 대립을 넘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의 정립을 통해 추락하는 근대의 위상을 재정립하고자 헌신해 왔다.
하버마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비판이론 제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960년대 초 실증주의 논쟁을 필두로 해석학·역사학·마르크스주의·체계이론·심리분석·포스트모던 사조 등과의 부단한 논쟁을 통해 자신이 물려받은 제1세대의 비판이론을 과학의 틀로 재구성했다. 또한 영미 실용주의 전통과 법철학을 과감히 수용해 정의와 인권, 법치, 평화, 국제 질서의 규범적 토대를 일신했다. 특히 그의 2019년 저술인 ‘또 하나의 철학사’는 기독교 문명과 함께 유교와 불교를 기축 문명의 발생학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어 동서양 문명 대화를 촉구하는 불멸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버마스는 1954년 본대학에서 독일 철학자 셸링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얻었고 1956년 프랑크푸르트 비판 이론의 산실인 사회조사연구소에서 그의 스승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961년 마부르크대에서 ‘공론장의 구조 변동’이라는 기념비적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하이델베르크대 교수직을 거쳐 1964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과 사회학 교수로 취임해 다양한 논쟁을 주도했다.
1929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1955년 동기이자 동학인 우테 베젠회프트와 결혼해 슬하에 삼 남매를 뒀다. 학문적 동지로서 70년 동안 동거 동락한 두 사람은 서구 지성계에서도 보기 드문 인생 반려의 모범을 보였다. 필자가 2024년 5월 그의 사저를 예방했을 때 하버마스는 건강해 보였으나, 부인은 보행이 불편했다. 그러던 중 부인이 지난해 6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하버마스도 채 1년이 되기 전에 부인 곁으로 갔다. 새삼 가정과 부부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1960년대 말 학생운동이 급진화되면서 하버마스의 입장인 ‘공론장을 통한 사회 변혁’과 거리가 멀어졌고 급기야 급진파 일부가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조사연구소를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 아도르노가 사망함에 따라 하버마스는 스스로 대학을 떠나 1971년부터 독일 남부 뮌헨 근처의 슈타른베르크에 새로 설립된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으로 1982년까지 저술 활동에 집중했다. 이때 ‘자본주의 정당성 문제’ ‘사적 유물론의 재구성’ 등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친 저술들을 출간했다.
1983년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대학으로 돌아와 철학교수로 복직했다.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했던 1960년대와는 달리 1980년대부터는 근대성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담론에 집중했다.
1995년 정년 이후 1996년 4~5월에 보름에 걸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대에서 행한 ‘민족통일과 국민주권’ 공개 강의를 필두로 계명대·전남대 및 여러 학회에서 모두 7개의 발표를 했고 성균관대 유학본부, 서울 종로 조계종, 해인사, 경주 불국사, 포항제철, 광주 망월동 등에서 많은 학생 및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강의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서울대에서는 2000명을 수용하는 문화관 대강당에 입추의 여지 없는 많은 청중이 모여 강의와 토론을 들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올해 5월 29일 하버마스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서울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주제는 ‘하버마스의 유교·불교 연구와 동서양 문명 대화의 미래’로서, 목적은 하버마스의 2019년 저술에 담긴 유교와 불교 연구를 동아시아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그가 기축 문명의 차원에서 시도한 동서양 문명 대화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것이다.
이 문명 대화는 양육강식의 힘의 정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늘의 국제정치에서 귀중한 의미를 갖는다. 하버마스는 국제정치의 규범적 토대를 소통정의에 두고 누구건 어떤 쟁점이건 제약 없이 소통에 참여하는 숙의 민주주의를 제안하면서 이를 파괴하는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 전략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 또한 진영 대립을 넘어 그 사이에 있는 공통의 세계를 복원하는 것이 우리가 오늘날 부딪치고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이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동서양 문명의 기저에 동등하게 내장돼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하버마스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여는 보편적이고 평등한 자유 시민의 실천을 호소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