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식 장례문화 개선 앞장서는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

“‘마음’이라 쓰고 ‘돈’이라 읽는다.”

최근 개신교 가정 사역 단체인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가 펴낸 책 ‘임종 감독이 쓴 임종 일기’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요즘 모바일 부고에는 장례 일정과 함께 ‘마음 보내실 곳’이라며 상주의 계좌번호를 안내하곤 하지요. 때론 기억을 더듬어 봐도 명함 한 장 주고받은 사이. 그런 사이에 무슨 ‘마음’을 전해야 할까. 결국은 ‘마음’이 아니라 ‘조의금’인 것이다. 그는 이런 문화를 바꿔보고 싶었답니다. 개신교식 장례 문화 개선에 앞장서게 된 계기이지요. 그래서 그는 요즘은 스스로를 ‘엔딩 플래너’라고 부릅니다. ‘임종 감독’이라고도 하고요. 여기서 엔딩은 ‘끝내는(ending)’이 아니라 ‘이어주는(anding)’ 엔딩이라고 하네요.

송 목사는 개신교계에서 특별한 존재입니다. 우선 특정 교회의 담임목사를 맡지 않았습니다. 고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고신대 의대와 복음간호전문대 교목(校牧)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이름도 생소한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란 간판을 걸고 가정 사역을 시작했고요.

계기는 1990년대 초 미국 교회를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교회에서는 ‘30대 싱글을 위한 모임’ ‘이혼자를 위한 모임’ ‘부모 교실’ 등 팸플릿을 비치하고 상담을 하고 있었다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에서는 공개적으로 거론하길 꺼리던 ‘문제’들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게 됐지요.

그렇지만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지금까지 집필한 책이 60권이 넘습니다. ‘부부 세미나’ ‘성희롱 예방 워크숍’ ‘결혼 예비 학교’ 등 그때그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 개신교적 관점이 필요한 일에 나섰습니다. ‘죽음의 탄생’ 등 죽음을 주제로 한 저서만 10권 넘게 펴냈지요.

부산, 일산, 서울 양재동을 거쳐 거점도 2017년엔 현재의 경기도 양평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야산에 약 3만 평의 공간을 마련한 그는 일종의 ‘개신교 테마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터전으로 새 아이디어를 펼치고 있습니다.

2021년 11월 13일 오후 을왕리해수욕장에서 저녁 노을을 보는 방모씨 부부. /앰뷸런스 소원재단

아이디어 가운데는 ‘앰뷸런스 소원재단’도 있고 개신교식 작은 장례식도 있습니다. 앰뷸런스 소원재단은 이 코너를 통해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말기 환자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할 수 있도록 차량과 안전요원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작은 장례식’은 현재의 송 목사가 진행하는 엔딩 플래너로 연결됐습니다.

'하이패밀리'가 마련한 '메모리얼 테이블'. 국화 장식 대신 고인의 사진과 유품 등을 펼쳐서 조문객이 고인을 추억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하이패밀리

<개신교식 작은 장례식>

양평 하이패밀리 강당에 장례식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책상(메모리얼 테이블) 위에는 국화꽃 대신 영정 사진과 함께 고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은 사진과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을 전시하면서 추모하는 것이죠. 고인이 그림을 그리셨다면 그림, 일기장이 있으면 일기장도 전시하고 고인이 사용하던 효자손까지 전시됐습니다. 컨셉트는 ‘함박웃음’이었습니다.

하이패밀리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메모지에 적고 있다. /하이패밀리

앞서 ‘마음이라 쓰고 돈이라 읽는’ 부조 문화의 개혁도 시도했습니다. 송 목사는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추모객들이 엽서 같은 메모지에 고인에 대한 ‘마음’을 적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육개장으로 대표되는 장례식장 음식도 간단한 간식만 준비하고 식사가 필요한 분은 근처 맛집으로 안내한다. 삼베 수의(壽衣) 대신 고인이 좋아하던 평상복을 입혀 드리고 한지 관과 한지 유골함을 사용해 탄소 배출을 줄여 화장한다. 화장 후에는 수목장으로 모신다.

하이패밀리에서 열린 탤런트 신애라씨의 부친 신영교씨의 '엔딩 파티' 모습./하이패밀리

<엔딩 파티>

엔딩 파티는 사후 장례식이 아니라 생전에, 의식이 명료할 때,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뜨거운 작별 인사입니다. 생전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오해를 다 푸는 자리입니다.

작년 배우 박정자씨가 강릉 해변에서 펼친 생전 장례식이 비슷한 콘셉트입니다. 당시 박씨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탤런트 강부자 등 문화예술계 인사 100여 명을 초청해 열었던 행사입니다. 송 목사는 탤런트 신애라씨의 아버지 신영교 집사님의 엔딩 파티를 대표적 사례로 책에 소개했습니다.

송길원 목사의 모친이 가보처럼 간직해온 자개농. 모친은 큰 수술을 앞두고 이 자개농을 미리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생전 유품 정리'의 시작이었다. /하이패밀리

<생전 유품 정리>

송 목사의 어머니는 생전에 ‘가보(家寶) 1호’인 자개농을 둘째 아들에게 가져가라고 하면 안 되겠냐고 장남인 송 목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큰 수술을 앞둔 때였지요.

송 목사 가족은 이사를 무척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교원인 아버지의 전근이 잦아서였지요. 언제든 이사를 떠날 수 있게 옷가지는 평생 박스에 넣어두고 사셨다지요. 어머니는 넋두리를 하셨다지요. “무슨 여자 팔자가 장롱이 있기를 하냐. 시골 아낙네도 다 가진 경대가 있냐. 평생을 쭈그리고 앉아 손거울 보고 산 게 나다.” 그랬던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은퇴를 앞두고 선물한 것이 자개농이었답니다.

그 자개농을 둘째 아들에게 미리 준다고 하니 송 목사는 짜증부터 냈다고 합니다. “어머니, 지금 그런 걱정하실 때입니까. 나중에 해도 되는데 뭘 그리 서두르십니까.”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무리 부모 물건이라도 죽은 뒤에 가져가려면 께름칙해. 죽기 전에 줘야 선물이지, 죽고 난 뒤에 주는 게 무슨 선물이냐?”

송 목사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엔딩 플래너’로 활동하는 지금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됐답니다. 어머니는 그 당시 용어도 없던 ‘생전 유품 정리’를 한 것이라는 것을요.

하이패밀리에서 장례식 후 유가족들이 유골을 매장한 후 나무를 심고 있다. /하이패밀리

<미래 대비>

그가 이렇게 장례 문화 개선에 나선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송 목사는 현재의 장례 문화는 과도기 혹은 혼란기로 보고 있습니다. 낡은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대안은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시기라는 것이죠. 게다가 미래의 장례 주역이 될 MZ세대는 불투명한 비용과 불합리한 허례허식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죠. 적어도 2030년 전후로 장례 결정권은 이들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보지요.

어느 순간부터 장례 대행 업체가 장례 문화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겪으셨겠지만 ‘장례 지도사’들이 장례를 ‘지도’하지요. 팔뚝에 차는 상장(喪章)부터 장례 일정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각각의 순서에 정확히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는 채로 ‘2박 3일’ 동안 진행되곤 합니다.

송길원 목사의 저서 '임종감독이 쓴 임종일기' 표지. /하이패밀리

송 목사가 던지는 문제 의식은 어쩌면 간단합니다. 적어도 가족이나 친지를 보내드릴 땐 가장 기본적인 추모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자는 것이지요. 정신은 바뀌지 않겠지만 담아내는 형식은 현실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문제 제기가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