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에 뭔가 뭉클하게 와닿는 거예요. 그래서 함께 기도한 신도님들께 ‘여러분이나 나나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 순간이 정말 복 받은 거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제 인생 마지막에 부처님께서 이런 기회를 주셨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났습니다.”
광주광역시 무각사 주지 청학 스님이 19년간 이어온 ‘5000일 기도’를 2월 7일 회향한다. 스님의 기도는 2007년 8월 13일 주지 부임한 날 시작됐다.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6시 하루 세 차례 1시간 30분씩 108배하고 목탁 치며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렇게 ‘5000일’을 채운 것이다.
그가 부임할 당시 무각사는 문 닫기 직전이었다. 무각사는 1972년 당시 송광사 방장 구산(九山) 스님을 중심으로 지역 큰스님들과 불자들의 후원으로 상무대 군법당으로 문을 열었다. 1994년 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상무대 자리는 광주의 새 도심이 됐고, 5·18기념공원은 시민 휴식 공간으로 각광받게 됐다. 그러나 공원 한가운데 있는 무각사는 법당에 비가 새고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청학 스님은 1976년 향봉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출가 후 향봉·구산·법정 스님을 시봉했던 그는 파리 길상사를 열고, 서울 성북동 길상사 초대 주지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초대 단장을 지냈다. 세계 각국의 사찰, 수도원을 많이 견학했고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러나 무각사에서 시작은 전통 방식, 기도였다. “무슨 일이든 소임을 맡게 되면 최소 100일은 기도하라”는 은사의 생전 당부를 떠올린 것. 호남은 지역적으로 불교세가 약한 편. 내심 광주에 불심(佛心)을 심고 불교 중흥을 이뤄보려는 꿈이 품었다.
그의 기도는 신도들뿐 아니라 동료 스님들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치열했다. 우선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없앴고 바깥 출입을 끊었다. 주지가 휴대전화도 없고 외출도 하지 않으니 그를 보려는 이들이 사찰로 찾아왔다. 두 번째 ‘1000일 기도’까지는 쉬지 않고 내리닫이로 1000일을 채웠다면 세 번째부터는 ‘100일 기도 후 10일은 주지 소임(업무) 보기’로 속도를 조절했다. 그래서 5000일 기도에 19년이 걸렸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이 목탁 3개가 깨져 나갔고 가사·장삼·방석은 얼마나 해지고 기웠는지 모른다. 그는 “요령도 생겼지만 기운이 없어졌는지 이젠 목탁이 안 깨진다”며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5000일로 회향하려 한다”며 웃었다.
그런 사이 무각사는 광주 불교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세 번째 1000일 기도를 하던 2014년부터 시작한 불사(佛事)는 도심 한복판에 종교·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상 120평엔 대웅전을 짓고 반지하 700여 평엔 지장전과 설법전, 선방(禪房) 등을 배치했다. 반지하 공간에는 황영성·문봉선 화백 등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어 미술관을 방불케 하고, 사찰 입구 갤러리에선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전시도 개최했다. 일주문 안 마당에 놓인 지름 5m 넘는 대형 백련(白蓮) 조형물(재독 미술가 김현수 작품)도 명물로 꼽힌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도심 사찰은 종교 시설뿐 아니라 문화가 함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는 게 스님 생각. 도심 사찰의 이점을 살려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며 젊은이들의 고민도 많이 들었다. 명상을 지도하며 “나도 한때는 별별 생각 다했다. 다 괜찮다”는 스님의 위로에 청년들도 마음을 열었다.
50대 중반에 무각사에 부임해 5000일 기도를 올리는 사이 70대 중반에 이른 청학 스님. 사찰의 변화뿐 아니라 스님 자신의 변화가 더 컸다고 했다. “5000일 기도를 마치면 나한테 큰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 적도 있어요. 아니에요. 가장 큰 깨달음은 오직 한 걸음, 한 스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9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는 자리이지만 거창한 행사는 없다. 대신 그동안 독송한 금강경을 ‘무각사 스타일’로 인쇄해 전국의 스님과 불자들에게 선물(법공양)할 생각이다. “5000일 기도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혼자 기도한 적이 없어요. 코로나 때에도요. 그런 감사한 마음을 신도님들께 전하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광주광역시=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