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양로원(발달장애노인 그룹홈)은 제 인생 마지막 소원이에요. 그 소원이 드디어 올해는 이뤄질 것 같아요.”
지난 주 인천 강화 ‘우리마을’에서 만난 대한성공회 김성수(96) 주교는 어느 때보다 환한 표정이었다. ‘우리마을’은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강화 출신인 김 주교가 유산으로 받은 고향 땅 3000평을 기증해 세운 곳으로 발달장애인 50명이 콩나물 키우기, 전기부품 조립, 커피박(찌꺼기)으로 연필, 화분 만들기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김 주교가 ‘우리마을’을 설립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발달장애인 학교인 성 베드로학교 교장을 맡았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졸업식날만 되면 학생·학부모가 펑펑 울었다. ‘이제 갈 곳이 없다’는 통곡이었다. 당시만 해도 발달장애인들은 학교 졸업 후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외출도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슬픔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긴 김 주교는 서울교구장, 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역임하고 은퇴한 후 ‘우리마을’을 설립한 것. 구내에 본인 거처도 마련한 김 주교는 스스로 ‘촌장(村長)’을 자처하고 발달장애인을 ‘친구’라 부르며 지냈다. ‘친구’들과 김 주교 사이엔 눈이 마주치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구호가 있다. 김 주교가 “우리는!”이라 선창하면 친구들은 일제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다!”라고 외친다.
‘우리마을’ 설립 직후부터 김 주교의 다음 목표는 ‘양로원’ 즉 발달장애노인 시설이었다. 언젠가 이들이 은퇴한 후 거처가 필요하기 때문. 김 주교는 “일반인도 나이가 들면 어려움이 많지만 자기표현이 잘 안 되는 발달장애인들은 노화와 장애의 이중고를 겪기 때문에 특별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김 주교는 책상 옆에 항상 건물 조감도를 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사이 정년 퇴직한 ‘친구’가 3명 나왔고, 3년 후에도 2명이 퇴직 예정이다. 점점 마음은 급해졌지만 공사비 마련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렇게 가슴만 졸이던 지난해였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막냇동생 김병수(90)씨가 수십 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동생은 김 주교를 비롯해 가까운 친척 몇몇과 식사 중 폭탄선언을 했다. “100만달러를 우리 마을에 드리겠다.” 김 주교는 “동생이 갑자기 엉뚱하게 이야기를 꺼내는데, 함께 온 제수씨도 기부 계획은 알고 있었지만 100만달러라는 액수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며 감격해했다.
발달장애노인 그룹홈 계획은 몇 차례 변경이 있었다. 조감도만 세 번째 고쳐 그렸다. 당초 30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을 계획했으나 현재는 3개 동(棟)에 4명씩 생활하는 그룹홈으로 계획하고 있다. 1차 공사 후 2차로 2개 동을 추가할 예정. 김 주교는 “친구들이 ‘처음에 30명이라고 하더니 겨우 4명씩이냐’며 욕도 할 것 같다”며 웃었다.
100만달러는 3개 동 공사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큰 금액. 지난해 10월 말 상징적으로 기공식을 가졌고, 구체적인 건물 설계가 완성되는 대로 공사를 시작해 올해 안에 5개 동 가운데 3개 동을 먼저 지을 예정이다. 기공식 직전엔 우리마을에서 경비 일을 하다 퇴직한 70대 중반의 박모씨가 그동안 모아온 1000만원을 기부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마을은 이 그룹홈의 별칭을 김 주교와 동생의 세례명을 따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부르기로 했다. 김 주교는 “성 베드로학교가 ‘귀족 학교’란 말을 들었듯이 양로원도 최고의 시설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김 주교에겐 최근 또 한 가지 희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LA의 100년 된 성공회 성당인 성 야고보 교회(St. James in-the-City)에 김 주교의 석상(石像)이 세워지게 된 것. 이 교회 축성 100주년을 맞아 개조 공사 후 그동안 비어 있던 벽면에 성공회를 빛낸 인물 네 명의 석상을 세우기로 한 데 따른 것. 후보 여덟 명을 놓고 교인 투표를 한 결과 김 주교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다른 세 주인공은 이 성당의 수호 성인인 성 야고보와 남아공 투투(1931~2021) 주교, 성공회 사상 첫 여성 주교였던 바버라 해리스(1930~2020) 주교가 선정됐다. 석상 봉헌식은 2월 22일 열릴 예정. 현지에서 석상 설치 작업을 돕고 있는 고영덕 신부는 본지 통화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김 주교님의 사랑과 헌신이 교인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