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엄 스님. 참선과 계율, 경전에 두루 해박한 스님으로 평가 받는다. /조계종출판사

“식량은 봉암사에서 대줄 터이니 열심히 공부하거라.”(141쪽)

최근 출간된 ‘묘엄 평전’(조계종출판사)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입니다.

이 책은 한국 비구니 승단의 기초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 묘엄(1932~2011) 스님의 삶과 수행을 다룬 책입니다.

묘엄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계의 거목인 청담 스님의 속가 딸입니다. 한국 현대 불교 역사에는 ‘고승의 딸들’이 있습니다. 성철 스님과 불필 스님, 관응 스님과 명성 스님 그리고 청담 스님과 묘엄 스님 등이지요. 모두 한국 현대 불교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큰스님들입니다. 세 분 모두 조계종 비구니로서는 최고 법계인 ‘명사(明師)’에 올랐습니다.

불필 스님과 명성 스님은 각각 성철 스님과 관응 스님이 출가 전 결혼했을 때 낳은 딸이 출가한 경우이지요. 이에 반해 묘엄 스님은 청담 스님이 출가 후에 낳은 딸입니다. 그래서 청담 스님은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도 했지요.

출가 전의 묘엄 스님. /조계종출판사

사연은 이렇습니다. 청담 스님은 결혼 후 장녀를 둔 상태에서 이혼 후 출가했습니다. 청담 스님의 속가 어머니는 ‘대가 끊어졌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고향 진주 근처에 청담 스님이 다녀간다는 소식이 들리자 ‘잠깐 들렀다 가라’고 기별을 넣었지요. 효심이 지극한 청담 스님은 그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하룻밤 들렀고요. 그 결과 생긴 자식이 묘엄 스님이었지요. 청담 스님이 수덕사 만공 스님 회상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편지가 왔답니다. 묘엄 스님이 태어났다는 소식이었지요. 문제는 그 편지를 다른 스님이 먼저 뜯어봤다는 것이죠. ‘그렇게 유별나게 굴더니 딸만 잘 낳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답니다. 말하자면 묘엄 스님은 아버지 청담 스님에게 ‘청정승(淸淨僧)이라는 백지 위에 붙은 검은 점’ 같은 존재였던 것이죠. ‘한 겁(劫)을 더 닦을 각오로 하룻밤 집에 들렀다’던 청담 스님은 ‘파계한 죄’를 참회한다고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등 육신을 괴롭히며 지냈다고 하지요. 그렇게 얻은 딸이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출가해 묘엄 스님이 됐지요.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 청담 스님이 머물던 문경 대승사로 보내진 묘엄 스님은 이후 윤필암, 봉암사, 성주사, 동학사, 김룡사로 스승을 찾아 옮겨다니며 수행했습니다. 이후 동학사, 운문사에서는 후학을 가르쳤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수원 봉녕사에서 강원과 율원을 열어 비구니 승단 발전을 선도했고요.

속가 언니인 인자와 청담 스님, 묘엄 스님(왼쪽부터). /조계종출판사

책에는 남녀 차별이 있던 시대에 한 소녀가 ‘비천해 보이는 여자 중은 안 될 것’이라며 당찬 포부로 출가해 당대의 대표적 비구니로 성장해 입적하기까지 과정이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묘엄 스님은 성철 스님에게 참선을, 자운 스님에게 율(律)을, 경전의 대가였던 운허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승들이었지요. 성철 스님이 비구니를 출가시키고 제자로 삼은 건 묘엄 스님이 유일합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 청담 스님이 머물던 문경 대승사로 보내진 묘엄 스님은 이후 윤필암, 봉암사, 성주사, 동학사, 김룡사로 스승을 찾아 옮겨다니며 수행했다. 이후 동학사, 운문사에서는 후학을 가르쳤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수원 봉녕사에서 강원과 율원을 열어 비구니 승단 발전을 선도했다.

청담 스님이 묘엄 스님에게 써준 '명심'. '파안하여 웃음을 남에게 보이지 말 것' 등 아홉 가지 지켜야 할 점을 적었다. 묘엄 스님은 이 당부를 평생 간직하고 실천했다. /조계종출판사

책은 630쪽이 넘는 ‘벽돌책’입니다. 광복 이전 불교계의 풍경부터 한국 불교의 정통을 세운 1940년대 말 ‘봉암사 결사’ 그리고 비구-대처승의 갈등과 비구니 승단이 체계를 갖춰 가는 모습, 수원 봉녕사를 오늘날 대표적 비구니 교육 기관의 하나로 키우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성철 스님이 묘엄 스님의 공부를 위해 직접 만들어 준 '한국사 연표'. /조계종출판사

현대 불교사의 고비 고비가 상세하게 서술됐지만 저는 어려웠던 시절 ‘돈’ 이야기에 눈길이 갔습니다. ‘맑은 가난’ 이야기이지요.

앞서 봉암사에서 참선 수행을 하러 갈 때 ‘비용’은 봉암사에서 부담하겠다고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자기가 사는 절이 아닌 다른 절에서 공부할 때 기본적인 비용, 특히 식량은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한자로 ‘자비량(自備糧)’이라고 쓰지요. 요즘은 이 ‘자비량’이라는 단어가 불교보다는 개신교에서 많이 씁니다. ‘자비량 선교사’ 등의 방식으로 쓰이지요.

묘엄 스님이 사용하던 재봉틀(왼쪽)과 대나무 자. /조계종출판사

책에는 이런 식량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묘엄 스님이 운허 스님에게 경전 공부를 하러 갈 때 스승인 월혜 스님은 ‘김 300장과 간장 한 병’을 주어 보내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계룡산 동학사에서 만난 운허 스님은 “내가 너희를 도와주고 거두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게 됐으니 미안하구나. 이 절에서 내게 대두 쌀 한 말씩만 준다고 하는구나”(237쪽)라며 미안해합니다. 강사료 역시 식량으로 지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운허 스님은 학승들에게 “혼자 있을 때는 촛불을 켜지 말라”고 했습니다. 양말도 이삼 일에 한 번씩 빨면 쉬 떨어진다고 자주 빨지도 못하게 했답니다. 책 곳곳에 절약 또 절약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김룡사는 윤필암과 달리 큰절이어서 소유하고 있는 논밭에서 자급할 수 있는 식량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식량을 내놓지 않아도 되었다.>(280쪽)

<약수암은 대중 30여 명이 공동으로 경비를 내고 큰방에서 발우공양을 했다. 양식이 귀한 때라 대중들은 탁발을 해서 쌀 다섯 말을 내놓았다. 여름에도 탁발을 나가 보리쌀을 얻어와 사중에 내놓았다.>(286쪽)

<화엄경을 다시 짊어지고 통도사로 가는 묘엄에게 동학사의 재무가 그동안 강사를 하느라고 애썼다면서 9만원을 주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318쪽)

<1966년 가을부터 사리암의 모든 보시금은 운문사 학인들을 위한 지원금이 되었다. 재정 문제 말고는 큰 어려움이 없던 운문사 시절이었다.>(336쪽)

운문사 시절 이야기 중에 ‘재정 문제 말고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다른 문제는 없지만 여전히 재정 문제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1970년대 수원 봉녕사에 자리 잡은 스님과 제자들은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서 버려진 채소를 주워 식자재로 사용하다가 밭을 구입해 직접 고추, 배추 농사를 짓고 표고버섯도 키웁니다.

근현대 스님들에 관한 일화를 들을 때면 늘 빠지지 않는 것이 검약, 절약 이야기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콩나물이나 쌀알이 수채 구멍에 흘러 있는 모습을 보고 노스님이 크게 화를 내어 대중들이 몇 끼를 굶었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설마’ 했던 그런 일들이 묘엄 스님 평전을 펼치면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묘엄 스님의 스승 월혜 스님의 환갑을 맞아 제자들이 찹쌀을 팔아 대추 등을 구입해 약식을 만들었다가 스승에게 혼난 에피소드 등이 그렇습니다. 월혜 스님이 입적했을 때에는 입던 옷을 그대로 수의(壽衣)로 삼고, 쓰던 홑이불을 뜯어 시신을 감싸고, 관도 사지 못해 돗자리 두어 장으로 시신을 싸고 장작 쌓아 화장했다지요.

사찰 음식이 웰빙 식단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요즘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절에서 웰빙은커녕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청담 스님이 속가의 손녀(묘엄 스님 언니의 딸)에게 결혼 선물로 준 '참을 인' 자를 365개 쓴 작품. 현재 봉녕사 도서관 입구에 걸려 있다. /조계종출판사

묘엄 스님의 은사 월혜 스님이 입고 있던 옷을 수의 삼고 돗자리로 시신을 감싸 화장(다비)했다는 대목은 2010년 법정 스님의 다비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법정 스님은 입던 승복을 그대로 수의로 삼았고, 관도 없이 강원도 오두막에서 쓰던 평상에 눕혀진 채로 다비식을 진행했지요.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른 다비식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한 2010년만 해도 이렇게 다비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무소유’를 가르친 법정 스님은 마지막 길을 통해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고 무언의 당부를 남긴 것이 아닐까요.

사실 묘엄 스님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 절약은 스님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덕목이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으니까요. 음식을 남기거나 낭비하면 어디서나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묘엄 평전’을 읽으면서 점점 잊어가는 절약과 맑은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묘엄 평전' 표지. /조계종출판사

책은 엄숙하지만은 않습니다. 불교 전문 작가 박원자씨가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스님이 머물렀던 현장을 일일이 답사해 묘엄 스님의 일생과 현대 불교사를 정리해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묘엄 스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묘엄평전간행위원회’가 감수했고요. 스승을 기리는 제자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