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던 지난 22일 아침 신문 사회면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불타버린 강화도 최초 개신교 교회’라는 설명과 함께 강화교산교회가 불타고 있는 사진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의 100년 교회를 가다’ 시리즈 취재를 위해 강화교산교회를 찾았던 기억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멀리 푸른 논밭 너머로 보이는 교산교회는 전형적인 전원교회였습니다. 교회를 둘러보던 중 예배당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한 할머니 신자가 창가 자리에 앉아 선풍기도 틀지 않고 성경을 읽고 계셨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아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불탔다니, 게다가 성탄절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화재는 지난 20일 오전 7시 56분쯤 발생했답니다. 지상 2층, 연면적 464㎡(약 140평) 규모의 건물이 전소됐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요. 불은 새벽기도회가 끝난 후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인근에 거주하던 교인이 연기를 보고 119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소방 장비 33대와 소방관 72명이 투입돼 5시간50분 만에 진화했다고 하니 상당히 큰 불이었습니다. 교회는 화재 다음 날인 지난 21일 주일엔 인근 양사면사무소 공간을 임시 예배처로 주일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또한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이번에 화재가 난 예배당 바로 옆의 돌 건물인 역사관은 피해를 입지 않은 점입니다. 역사관은 1957년 건립된 건물로 2003년 현재의 예배당이 지어질 때까지 예배당으로 쓰였던 공간입니다.
여러 기사에서 언급됐습니다만 강화교산교회는 1893년 설립된 강화도 최초의 개신교회입니다. 같은 해에 대한성공회 ‘성 니콜라스 회당’도 설립됐습니다. 교산교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소속입니다.
강화도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강화도는 현재 인구가 7만명인데 교회가 210곳이고 그중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교회만 59곳에 이릅니다. 지역 규모로 봤을 때 놀라운 일이지요. 그 시작이 교산교회입니다.
교산교회 앞에는 나룻배 위에 갓 쓴 외국인이 한 할머니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 교회의 시작을 알려주는 조형물입니다.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1885년 7월 인천에 내리교회를 설립했지요. 강화는 인천과는 지척입니다. 그럼에도 강화도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는 8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주민들의 반감이 심했다고 합니다. 1892년 내리교회 목사였던 존스 선교사가 전도를 위해 강화도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당했지요. 유림의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런 반대를 뚫고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은 교산리의 시루미 마을 출신 이승환이란 사람의 공이 컸습니다. 이 마을 출신으로 인천에서 주막을 하면서 신앙을 접한 이승환은 주민 시선을 피해 어머니를 존스 선교사가 타고 온 나룻배로 모셔서 선상(船上) 세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교산교회 앞 조형물은 이 사건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다음 역사는 드라마틱합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유림들이 오히려 선교에 앞장선 것이지요. 특히 양반 김상임은 존스 선교사와 ‘도(道)’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다가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예배당을 마련하고 아예 전도사로 나섰습니다. 마을 지도자의 변화에 주민들의 개종도 잇따랐지요. 그렇게 교회가 설립됐습니다. 그리고 강화도 전역으로 교회가 교회를 낳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앞서 유림들이 개종에 앞장섰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강화도 개신교 역사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장면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돌림자’ 개명(改名)입니다. 1896년 교산리 인근 홍의마을에 세워진 홍의교회 신자들은 ‘예수를 믿는 형제’ ‘믿음 안에서 하나’라는 의미로 ‘한 일(一)’ 자를 이름에 넣어 ‘박능일’ ‘종손일’ ‘권신일’ 등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1899년 교동도에 세워진 교동교회 신자들은 ‘믿을 신(信)’ 자를 넣어 개명했다고 하고요. 후에 목사가 된 종순일은 마태복음의 빚 탕감 예화를 스스로 실천해 자신이 받을 돈을 모두 탕감해 줬다고 하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그 시작이 교산교회였던 것입니다.
지난여름 방문한 ‘강화 초대 기독교 선교 역사관’은 강화도 개신교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역사관 입구엔 ‘강화에 떨어진 한 알의 겨자씨, 복음의 숲을 이루다’라는 문구와 함께 존스 선교사, 이승환, 김상임 등 교산교회 설립의 주역 얼굴이 부조(浮彫)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노모를 업고 존스 선교사가 기다리는 나룻배로 향하는 이승환의 모습을 재현한 인형과 초기 초가 교회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 등이 선교 초기 역사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1899년 강화교산교회 성탄일 경축’이란 미니어처 모형에선 당시 마을 잔치 같았던 성탄절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 일지’ ‘당회록’과 옛 자료 사진들도 전시돼 있었고, 축음기와 옛 전화기도 놓여 있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아끼는 교인들의 마음, 그리고 자부심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이 귀한 자료가 소장된 역사관은 정말 다행히도 화마를 피했습니다.
이번 화재가 강화교산교회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같은 강화도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대한성공회가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시설인 ‘강화 우리마을’이지요. ‘우리마을’엔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콩나물 공장이 있습니다. 2019년 10월 어느 날 이 공장에 큰불이 나 공장이 전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 낙담했지요. 그런데 이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근 불교 전등사를 비롯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심지어 불을 끄러 왔던 소방관들까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고 이듬해에는 훨씬 좋은 시설의 공장을 새로 지은 일이 있었습니다.
강화교산교회 박기현 담임목사와 통화했습니다. 그는 뜻밖에 차분한 목소리였습니다. 박 목사는 “2층 예배당 내부만 전소되고 다른 건물에는 피해가 없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전소된 예배당은 2003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당장 이번 성탄절 예배는 건물 1층 공간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번에 화재로 손상을 입은 건물은 안전 문제 등으로 허물고 재건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네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교단장인 김정석 감독회장도 22일 현장을 다녀갔고 교단 차원에서도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 목사는 통화를 마치며 “많이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마을과 같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