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청파교회 원로목사가 지난 19일 경기 과천의 서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집 한 채, 자가용 한 대 없는 그는 공덕동 집에서 과천까지 전철을 갈아타며 다니고 있는에 "전철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청파교회 김기석(69) 원로목사.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하는 놀라움 때문에 청년 시절 신앙을 갖게 됐고, 40년에 이르는 목회 활동 내내 자신의 설교와 생활을 일치시키기 위해 애썼다. 성경뿐 아니라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인문학과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설교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많은 지식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해 유튜브 강의로도 많은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지난해 27년간 담임한 청파교회에서 은퇴한 후에도 저서 ‘고백의 언어들’ ‘지혜의 언어들’을 펴내 지식인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19일 경기 과천의 ‘서실(書室)’에서 김 목사를 만나 성탄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언제 신앙을 갖고 목회자가 될 결심을 하셨나요?

“저는 고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뒤늦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신앙을 갖게 됐어요. 어머니를 따라간 교회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누가 봐도 어려운 형편의 사람이 밝고 맑고, 뭔가 좋은 게 있으면 기어코 남에게 줘야 하는 분, 사회적으로 상당히 성공한 분인데 거드름 피우거나 남을 무시하는 게 전혀 없이 천진한 분…. ‘이 사람들은 낯설다. 왜 이럴까’ 싶었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냥 그들 속에 예수가 있었어요. ‘저런 예수라면 내가 좀 알아봐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그런 마음을 먹자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니, 예수 믿는다면서 어떻게 저러지’ 싶은 사람들이 막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꿈, ‘내가 교회를 바로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죠.”

-감리교신학대학을 마치고 이화여고 교목과 군목(軍牧) 생활을 하셨죠?

“이화여고 교목 생활은 제 목회 인생에 중요한 시절입니다. 한 학년에 스무 반씩 있었고, 안 믿는 아이들이 다수였죠. 그 아이들에겐 교회에서 쓰는 언어로는 소통이 안 돼요. 우리가 믿는 바를 보편적인 언어로 얘기하는 훈련이 필요했죠. 저로서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도사 시절까지 포함하면 청파교회에서만 43년을 지내셨는데요.

“1981년 전도사 시절 처음 청파교회로 갔지요. 전임자(박정오 목사)께서 지금 제 목회 방향을 딱 정해주셨어요. 첫마디가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 나랑 너무 방향이 다르다 싶으면 당신이 떠나라’고 쿨하게 말씀하셨죠. 박 목사님 목회 철학은 ‘울타리를 넓게 쳐서 양(羊)들이 울타리가 있는지도 모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또 교인들에게도 ‘예수 믿는 것은 자기 희생의 길을 가는 것인데, 그거 쉬운 길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온다면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라고 하시는 분이셨어요.”

-감리교 목사 정년(70세)보다 일찍 은퇴하셨습니다.

“제가 1984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자기가 긴장을 잃어버리고 그러면 나 스스로 성실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나 자신에게도 좋겠다 싶어서 좀 일찍 물러났죠.”

-은퇴 후에 더 바빠지신 것 같습니다. 유튜브 ‘잘 믿고 잘 사는 법’도 인기가 많지요?

“저는 조회수 이런 걸 확인하지 않아서 잘 실감하지 못합니다. 다만 유튜브를 코로나 팬데믹 무렵에 시작했는데 젊은이들이 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만날 수 없게 되고, 삶이 불확실하고 불안할 때 ‘괜찮다’ 다독였던 것이 좀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저는 특히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애써요. ‘신앙적 확신’이라는 것은 원래는 좋은 것이지만 닫혀 있는 확신이 될 때는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최악은 언제나 확정적이에요. 그럴 때 최선은 머뭇거림이죠. ‘머뭇거림이 불신앙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러운 태도다’ 이런 이야기에 젊은이가 공감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팬데믹은 인류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팬데믹은 우리에게 ‘멈춤’ 신호를 줬습니다. 최소한 지난 100년간 인간이 선택해 온 삶의 결과가 팬데믹이란 경고로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으로 멈추니, 인간이 물러선 자리에 자연이 회복되는 현상도 일어났잖아요? 그런데 팬데믹이 끝나자 다시 달리고 있습니다.”

김기석 목사가 출연한 유튜브 '잘 믿고 잘 사는 법'(잘잘법)의 한 장면. '기도하는 법'을 설명한 이 동영상은 235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잘잘법'

-‘기도가 안 될 땐 이렇게 하세요’라는 동영상은 235만회나 조회됐더군요. ‘기도는 내 마음과 하나님 마음의 조율’이라고요.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게 기도인 줄 알아요. 어릴 적에는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 아시죠?’라고 여쭙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너도 내 마음 알지?’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길’ ‘진리’ ‘생명’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길의 존재 이유는 고백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함께 걷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인데, 그 길을 걷지는 않으면서 ‘그 길은 당신이 가셨으니까 진리입니다’라며 박수만 친다면 이건 전도(顚倒)된 신앙생활이죠. 경배하는 건 쉬워요. 같이 가는 게 어렵죠.”

-예수의 길이란 어떤 길이었나요.

“유대교가 ‘거룩함’이란 잣대로 사람을 죄인, 이방인으로 나누며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던 시대에 예수는 함께 아파하는 ‘자비’를 척도로 제시했습니다. 예수는 ‘앓음’을 통해 ‘앎’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했다는 것은 우리가 아파야 할 질병을 함께 앓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새로운 점이었지요.”

-목사님은 평소 ‘예수 믿고 손해 봐야 한다’고 하시죠.

“우리는 행위를 돈으로 환산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졌어요. 우리의 전(全) 존재를 들여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을 해버릇해야 내 삶이 단단해집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와 내 시간을 선물로 주는 일 등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손해 보는 일처럼 보이죠. 성경에 빗대서 얘기하면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짐을 내려놓을까 해서 그분한테 갔더니 대뜸 하는 말씀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하셔요. 그런데 그분의 멍에는 분명히 무거운데, 그 멍에를 메는 순간 내 짐이 가벼워집니다. 내가 혼자 허덕이고 있는데 어느 날 옆 사람 어깨의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나눠 집시다’ 합니다. 그러면 당장은 내 짐이 더 무거워진 것 같은데 얼마 걷다 보면 오히려 내 짐까지 가벼워집니다. 그게 신앙의 역설이고 신비입니다. 손해처럼 보이지만 진짜 손해는 아닌 거죠.”

김기석 목사가 청파교회 퇴임 후 펴낸 책들. 김 목사는 은퇴 후에도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복있는사람 제공

-곧 성탄절입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했는데 여전히 갈등이 많습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침묵 속에서’는 ‘이제 열둘을 세고/우리 모두 침묵하자’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자연이 인간을 세게(?) 어루만지면 인간들은 하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진, 화산 폭발, 코로나 같은 재난이 닥치면 인간은 하나가 돼 서로 돕지요.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재난 상황이 아닌가요? 인간성이 황폐화되고 양극화는 극심하고…. 이런 재난 상황에서 성탄절을 맞아 우리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 사람들도 귀한 사람’이라는 마음의 여백으로 서로를 보면 어떨까요. 사실 정치적 입장 차이라는 것만 빼면 우리는 보편적으로 공통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모두 행복을 원하고, 저마다 아픔이 있고…. 정치적 입장 차이가 우리 삶 전체를 규정하는 건 굉장히 슬픈 낭비입니다. 그래서 정말 예수의 그 마음, 타자들의 고통까지 그냥 품에 안으려고 했던 예수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