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하루는 빨래를 하고 하루는 풀빨래를 하고 또 하루는 다림질을 했습니다. 날씨 좋은 날은 빨래하기 좋은 날입니다. 마음의 빨래도 날마다 해야 합니다. 묵은 때를 벗겨내는 마음의 손길, 산골에서 손빨래하는 일 또한 수행자의 일상입니다.”
최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이 펴낸 에세이집 ‘무언화(無言花)’(조계종출판사)에서 읽은 ‘수행자의 일상’이란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여러 해 전 불일암을 찾았을 때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해 저는 여수로 휴가를 갔다가 불일암에 들렀습니다. 불일암 가는 길은 늘 좋습니다. 양옆으로 터널처럼 대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은 고즈넉했습니다. 이윽고 대나무 터널이 끝나고 저 멀리 불일암이 나타났습니다. 암자 마당에선 한 스님이 빨래를 널고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손빨래를 한 승복을 탈탈 털어 빨랫줄에 한 벌씩 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뒷모습이 낯익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서는데, 그 스님이 몸을 돌렸습니다. ‘역시’였습니다. 덕조 스님이었습니다.
제가 ‘혹시’ 하고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맏상좌입니다. 세속의 촌수에 비유하자면 장남인 셈입니다. 법정 스님은 지난 2010년 3월 입적하면서 몇 가지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다”며 저서의 절판을 당부했습니다. 상좌들에게도 각각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중 맏상좌인 덕조 스님에게는 인상적인 유언을 남겼지요.
“덕조는 맏상좌로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 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師弟)들로부터 맏사형(師兄)으로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
이를테면 불일암에서 ‘10년 붙박이’로 지내라는 엄한 당부였습니다.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이 김영한 보살로부터 요정(고급 음식점)이었던 대원각을 시주받은 이후 이 음식점을 사찰로 바꾸는 일을 맡아왔습니다. 법정 스님의 장례 후 덕조 스님은 불일암에서 생활했습니다. 세간에서는 스승의 유언을 제자인 덕조 스님이 어떻게 수행할지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불일암으로 내려간 덕조 스님은 조용히 수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세간에서는 법정 스님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고, 덕조 스님의 근황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지요.
제가 불일암에 들렀을 때는 법정 스님이 유언한 ‘10년’이 거의 다 돼 가던 때였습니다. 아무 기별 없이 불쑥 찾아갔기에 저는 덕조 스님이 불일암에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건 덕조 스님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런데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으로 만난 것이지요. 우연인지 모르겠습니다. 10년 동안 늘 불일암을 지키고 있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잠깐 큰절(송광사)에 내려갈 수도 있고, 외출을 할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순간 덕조 스님은 불일암에 있었고, 저는 덕조 스님이 스승의 당부를 잘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책에서 ‘빨래’ 부분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덕조 스님은 지난해 길상사 주지로 돌아왔습니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전인 2009년부터 불일암에서 지냈기에 15년 만이라고 합니다. 책에는 15년 동안 틈틈이 쓴 글과 사진이 빼곡합니다.
우선 거의 매 쪽마다 등장하는 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사진 촬영은 법정 스님이 선물한 카메라가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덕조 스님은 1983년 출가해 법정 스님의 상좌가 됐지요. 법정 스님은 덕조 스님에게 당시 필름 카메라를 한 대 물려줬다고 합니다. 스승을 시봉하는 틈틈이 그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사진을 배운 적은 없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촬영한 것은 스승의 입적 후 불일암에서 생활하면서부터였지요.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를 쓰고요.
나뭇잎 하나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 밤새 내린 눈이 고무신을 곱게 덮은 장면, 법정 스님의 유명한 ‘빠삐용 의자’ 등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는 책에 수록된 사진에 대해 “불일암에 살다 보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 참 많다. 아침 안개가 걷히는 모습, 나뭇가지에 걸린 보름달, 비 오는 모습 등. 그런 풍경을 보다가 문득 ‘아, 좋다!’ 싶은 순간, 찰나가 있다. 그럴 때 카메라를 꺼냈다. 나누고 싶어서”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찾아가는 곳, 그런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은 사진 촬영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찰나 아닌가. 찰나가 모인 것이 인생이고. 기쁨도 슬픔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항상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찰나를 담았다. ‘사진 공양(供養)’이라고 할까.”
사진 가운데는 인도 성지 순례 중에 촬영한 것과 길상사 풍경도 있습니다. 드론을 띄워 촬영한 사진도 있네요. 하나같이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한 것이라 합니다. 그렇지만 산사의 향기가 물씬 느껴집니다.
글은 새벽 예불과 참선을 마친 이른 아침에 생각을 정리하며 썼다고 합니다.
“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합니다. 비우고 버림은 집착을 여의는 길입니다. 버리고 떠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나답게 사는 일입니다.”
“마음에도 저울이 있습니다. 가끔 그 무게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열정이 지나쳐 욕심으로 변하지는 않았는지, 사랑이 너무 깊어 집착으로 흐르지는 않았는지, 자신감이 넘쳐서 자만으로 변하지는 않았는지, 주관이 강해져 독선이 되진 않았는지….”
“빗소리가 촉촉하게 들려옵니다. 둘레를 살펴보니 짙어가는 녹음 사이로 후박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집니다. 죽비 한 번 울리면 입선(入禪)하고 죽비 두 번 울리면 방선(放禪)입니다. 삶과 기도도 이렇게 익어갑니다.”
불일암에서는 우연히 찾아오는 옛 인연도 많이 만났다고 합니다. 30여 년 전, 인도 성지순례길에서 법정 스님에게 된장국을 대접한 분, 덕조 스님이 군 복무 시절 후임자도 우연히 불일암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저처럼 불일암에 덕조 스님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들렀던 사람들이겠지요. 그런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그는 책에 수록된 글에 대해서는 ‘망상의 파편’이라고 겸손해했습니다. “아침마다 생각한 내용을 적다 보니 키워드가 겹치는 부분도 많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지금’을 강조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글이죠.
“우리가 100년을 산다 해도 단 하루씩밖에 살 수 없습니다. 삶은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단 한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이 순간이 전부이며 오늘 하루가 인생입니다.”
법정 스님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법정 스님은 당대 최고의 글쟁이로 평가받았습니다. ‘무소유’ ‘산방한담’ 등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요. 그런 법정 스님을 은사로 모셨던 입장에서 책을 낸다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았을까요. 이 물음에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이 계셨다면 감히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제가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글을 쓰면 ‘어, 잘 쓰네. 이렇게 써봐’라고 하신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감히 스님 앞에서 글 쓴다는 것은 용기가 안 났지요.”
그는 15년 불일암 생활을 ‘재출가’의 마음을 다진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초발심을 되새겼다는 이야기이지요. 길상사로 돌아온 덕조 스님이 ‘재출가’의 마음으로 길상사를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