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통신사 대리점이 옛 ‘기독서원’ 자리입니다. 저곳에서 처음 1년간 예배드리면서 저희 교회가 생겼지요.”
경북 안동시 안동교회 김승학 담임목사는 1937년 지어진 ‘돌예배당’ 앞에서 길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글의 고장’ 안동에서 교회의 시작은 책, 서점이었다.
서양 선교사들은 일찍부터 안동을 눈여겨봤다. 경북 북부 지역의 중심 도시로 선교 거점으로 삼을 가치가 충분했다. 그러나 접근은 어려웠다. 1890년대 이 지역을 순회한 미국 북장로교 안의와(아담스·1867~1929) 선교사는 안동 양반에 대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들” “외국인이나 외래문화에 대해 경멸하는 태도” “외국인 선교사를 마치 상놈 다루듯 반말을 한다”고 기록했다. 변화의 씨앗은 책이었다. 매서인(賣書人)들이 가져온 ‘쪽복음’(복음서를 나눈 책)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이 판매된 것.
이런 상황을 예사롭지 않게 본 선교사들은 1908년 12월 안동 서문 밖에 부지를 매입해 안동선교부를 개설하면서 초가 5칸짜리 서점을 먼저 열었다.
서점은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선교 부지 구입 비용으로 200엔이 들었는데, 서점에서 1년 동안 판매된 소책자와 성경, 쪽복음, 학용품이 1000엔어치였다. 마가복음을 1500부나 구입한 남성, 가마에 책을 너무 많이 실어 집까지 15마일(약 24㎞)을 걸어갔다는 노부인, 불신자(不信者)까지도 성경을 사서 공부했다. 안동 주민들의 지적 호기심에 불을 댕긴 것. 1909년 무렵엔 안동 지역에는 교회 없이도 약 1000명이 신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바탕에서 1909년 8월 8일 이 서점에 매서인 김병우를 포함해 8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안동교회의 시작이다. 이듬해엔 75명이 모일 정도로 부흥했다.
이후 안동교회는 안동 지역 개신교의 중심, 모(母)교회 역할을 했다. 계명학교(여자초등학교·1911), 경안중학원(중학교·1924), 안동유치원(1948)을 세우고 1909년 10월 선교사 임시 주택에서 진료를 보며 시작한 성소병원을 통해 근대 문명을 소개한 것은 물론 3·1운동, 광복, 6·25전쟁, 근대화 고비마다 모범을 보였다. 사우대(소텔·1881~1909)·오월번(웰본·1866~1928)·권찬영(크로더스·1881~1970) 등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사과나무를 가져와 농민들의 소득 증대를 돕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인 목회자와 당회장을 번갈아 맡으면서 안착을 도왔다. 여성만을 위한 성경 공부반을 만든 것은 오월번 선교사의 아내 새디 선교사였다.
양반의 고장답게 어른 공경, 바른 행실과 예의 바름은 안동교회 교인들의 특징이다. 김광현(1913~2006) 목사가 37년, 김기수(1933~2007) 목사가 24년간 담임하는 등 리더십 교체가 잦지 않았던 점도 교회의 자랑. 김광현·김기수 목사는 예장통합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다. 현 김승학 목사도 2003년 말부터 담임을 맡고 있다. 유교의 고장 안동에 복음이 성한 이유를 김광현 목사는 “유교 경전대로 살던 양반들이 성경 말씀대로 살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목회자와 어른들이 솔선수범하면서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리면 교인들이 순종하는 태도로도 유명하다. ‘성경 천독(千讀) 운동’ ‘성경 필사 운동’을 벌이면 90대 할머니까지 전 교인이 동참한다. 교회가 필요하다면 살림만 하던 중년 여성 신자가 드럼 학원을 다니며 배워 드럼을 연주하기도 한다. 서울 출신으로 1992년 전임전도사로 안동교회와 첫 인연을 맺은 김승학 목사는 “교인들이 속정과 의리가 깊고 항상 교회를 위해 헌신하려는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믿음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60년 이상 찬양대 봉사, 50년 이상 주일학교 교사가 수두룩하고, 7대째 출석하는 교인, 직계 4대에 걸쳐 장로를 배출한 집안이 두 가정, 4대 권사도 한 가정이 있다. 교회는 옛 선교사 후손과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오월번 선교사의 손녀로부터 1910~20년대 자료 사진을 대거 기증받았다. 교회와 관련된 사진뿐 아니라 110년 전 봉정사와 임청각 등 문화유산의 사진도 포함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교회는 주제별로 정리해 2차례 ‘근대역사 사진전’을 열었고, 내년에도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김승학 목사는 “돌예배당과 선교사 사택, 성소병원, 기독서원 자리 등을 묶어서 ‘안동 근대화 발상지(거리)’로 지정하고, 자료를 정리해 ‘경북 북부 근대화 박물관’ 같은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동=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