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선 기둥에 묶인 망자(亡者)의 혀를 길게 뽑아 땅에 펼쳐놓고 옥졸이 쟁기를 맨 소를 끌고 그 위에서 쟁기질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 흥국사 ‘시왕도’의 한 장면. ‘설경(舌耕) 지옥’ 혹은 ‘발설(拔舌) 지옥’이라 부른다. 생전에 남을 험담하고 미워하며 비방하고, 선량한 사람을 헐뜯고 헛말을 전파해 사실인 양 갖가지로 저주한 사람들이 지옥에서 받는 형벌을 묘사한 그림.
월간 ‘불광’ 8월호는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모든 것을 다뤄 눈길을 끈다. ‘불광’은 매월 한 가지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는데, 8월호는 일종의 납량 특집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여러 경전에서 인용한 지옥과 벌의 종류를 도판과 함께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경전마다 다른 지옥의 종류’ 표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중아함경’엔 5가지, ‘아비달마구사론’엔 16가지, ‘지장보살본원경’엔 무려 46가지 지옥이 등장한다.
각각의 지옥에서 받는 벌도 무시무시하다. 온몸에 쇠못이 박히고, 창자가 뽑히고, 끓는 쇳물이나 물에 삶아지고, 철절구로 빻아지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그린 ‘시왕도’에서 중요한 부분은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의 죄(업)를 비춰 보는 거울 즉 ‘업경대(業鏡臺)’와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업칭대(業秤臺)’. 죄를 비춰보고 무게를 달아본 후 해당하는 벌을 받는 것.
일본의 지옥 그림은 또 다른 세계를 묘사한다. 말 그대로 똥오줌에 빠지는 ‘분뇨 지옥’을 비롯해 저울을 속인 사람들이 불붙은 쇠붙이를 되[升]에 담는 ‘함량 지옥’, 동물을 학대한 사람들이 닭이 뿜는 불에 고통받는 ‘계(鷄) 지옥’ 등이 색다르다. 영화 ‘무간도’에도 언급하는 ‘무간지옥’은 ‘아비 지옥’이라고도 하는데 극심한 고통을 피할 공간과 시간의 사이가 없다(無間)는 뜻이다.
아무리 업을 쌓고 죄를 지었다고 해도 지옥에만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니다. 지장보살이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준다. ‘지옥 중생을 다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은 ‘수륙회도’ 등에서 지옥문을 열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도록 안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림만 봐도 흥미로운 특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