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북 의성 봉양면 문화마을에서 두봉 주교가 본지와 인터뷰 하며 인형이 손을 흔들고 있다. /신현종 기자

올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81) 미국 대통령의 말실수가 논란이지요. 전(前) 독일 총리 메르켈과 헬무트 콜을 헷갈리고,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이름을 혼동하는 식이죠. 이런 말실수 때문에 그의 고령(高齡)이 새삼 거론되면서 대통령직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요.

저는 바이든의 말실수를 보면서 지난 연말 성탄절 앞두고 인터뷰한 천주교 전 안동교구장 두봉(95) 주교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인터뷰 도중 저는 우문(愚問)을 드렸습니다. “프랑스에서 24년, 한국에서 70년째 사시는데, 한국어와 불어 중 어느쪽이 편하시냐”고 여쭸더니 주교님은 “(상대방이)한국어로 할 때는 한국어, 불어로 할 때는 불어, 영어로 할 때는 영어로 말한다”면서 “그런데 사람 이름 기억나지 않는 것은 어느 나라 말로 하건 똑같다”며 웃었습니다.

사실 고유명사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중년을 넘어서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팔순의 바이든 대통령도 만약 현역 정치인이 아니고,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사람 이름 헷갈리는 게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두봉 주교님은 스스로 ‘약점’을 먼저 털어놓으면서 ‘하, 하, 하’ 웃었지요. 그런 점에서 일찍이 다 내려놓고 베풀면서 사는 두봉 주교님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인터뷰 당시 저 스스로 느꼈던 두봉 주교님의 행복한 노년의 비법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내려놓음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내려놓는 삶’이었습니다.

두봉 주교님은 알려진 대로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로 1954년 한국에 와서 1969년 안동교구가 신설될 때 초대 교구장에 임명됐습니다. 1990년 교구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네 차례나 교황청에 사임청원을 했지요. ‘한국인 사제가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였지요. 마침내 청원이 받아들여져 은퇴했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61세였습니다. 천주교 교회법은 교구장 주교가 만 75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사임청원을 하게 돼있습니다. 이에 비춰보면 두봉 주교님은 무려 15년이나 앞서서 조기 은퇴한 셈입니다. 아무리 성직자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교구장 역할을 소홀히 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른바 ‘오원춘 사건’을 비롯해 그는 교구 신자들과 어울리며 보듬었던 목자로 알려져 있지요. 항상 강조한 말씀이 ‘기쁘고 떳떳하게’였습니다.

은퇴 후에는 홀연히 교구를 떠났습니다. 경기 행주산성 인근에서 혼자 지냈지요. 안동교구에 혹시라도 부담을 줄까 걱정해서 아예 멀리 떠나서 조립식 가건물로 지어진 공소(公所)에서 지냈습니다. 그가 안동교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004년 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간청을 받아들여서 입니다.

문이 열려 있는 두봉 주교의 거처. 간단히 '천주교회 두봉'이라고만 적혀 있다. /김한수 기자

◇열려있음

안동교구로 다시 돌아온 그의 거처는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화마을입니다. 대문에는 ‘천주교회 두봉(杜峰)’이란 문패가 걸려 있고 대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두봉 주교님은 TV 프로그램 단골 출연자입니다. ‘건축탐구 집’ ‘유퀴즈 온 더 블럭’ 등에도 출연했지요. 고위 성직자라는 권위의식 없이 재미있게 말씀하시니 인기도 높습니다. 특히 ‘유퀴즈’ 출연 후 그의 집엔 ‘모르는 사람들’과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차도 마신다고 합니다. 인터뷰 전날에도 각각 서울과 대구에 사는 대학동창생 부부가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대구 부부는 천주교 신자이고 서울 부부는 개신교 신자인데, 대구 동창이 약간 치매 기운을 보이자 서울 동창이 두봉 주교에게 데려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런 손님들이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이죠. 그는 “선교사로 한국에 왔는데, 내가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와 주니 고마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감사

두봉 주교님의 한국어 발음은 방송인 이다도시, 크리스티나와 비슷합니다. 트레이드 마크는 웃음소리입니다. 높은 톤으로 ‘하, 하, 하’ 웃는데, 대화 중에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먼저 ‘하, 하, 하’ 웃습니다. 그 웃음이 상대방과의 거리를 확 줄여줍니다. 그의 ‘감사 목록’은 끝이 없었습니다. 대퇴부 골절상을 당했는데도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감사’, 사제생활 70년간 후회 없이 살 수 있어서 감사, 한국 국적을 얻어 노인연금 30만원씩 받아서 감사,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으니 성탄절도 감사. 기뻐서 웃고, 감사해서 웃고, 웃다보니 기뻐지고 감사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감사와 기쁨이 일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두봉 주교는 “성직자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 기운을 주는 직업”이라고 했습니다.

두봉 주교가 안동교구장 시절 강조한 '기쁘고 떳떳하게'는 안동교구 사명 선언문으로 정리됐다. /신현종 기자

◇무리하지 않는 규칙적인 생활

두봉 주교님은 스스로 정한 루틴에 따라 지내고 있었습니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체조와 목욕, 미사, 빵으로 아침식사, 성무일도(聖務日禱)를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은 ‘하느님 앞에서 침묵’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이후엔 이메일과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한다고 했습니다. 이메일과 메시지는 ‘바로 지워버릴 내용’, ‘당장 대답할 것’과 ‘시간을 두고 생각해서 대답할 것’을 구분해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손님들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주교님은 “오후 4~5시쯤 되면 힘이 빠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늦은 오후엔 무리하지 않고 쉰다고 했습니다. 저와 인터뷰도 점심 시간을 끼고 약 2시간 정도했습니다. 그리고 늦어도 밤 10시에는 잠들어 7시간 반은 수면을 취한다고 했습니다.

◇부담주기 싫다

두봉 주교님은 이날 인터뷰에서 파리외방전교회가 운영하는 프랑스 내의 요양원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은 전세계에 파견돼 현지에서 선종(善終)하는 경우도 있지만 귀국해 프랑스 내 요양원에서 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귀국할지 여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교회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것 같고, 부담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쪽(프랑스)으로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그런데 (프랑스로) 간다고 하면 여기 사람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습니다. ‘소록도의 천사’로 불린 마리안느-마가레트 간호사도 건강이 안 좋아지자 ‘부담주기 싫다’며 오스트리아로 귀국했지요. 왜 한국에 큰 사랑을 베푼 분들은 한결같이 부담주는 것에 대해 질색하는 것일까요. 두봉 주교님의 ‘부담주기 싫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젠 좀 부담주면 어떤가. 대접도 좀 받으시면 어떤가. 그만한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존재 자체가 도움인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쪼록 두봉 주교님이 건강하셔서 ‘하, 하, 하’ 웃음소리를 오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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