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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양호가 길에서 만나는 '논어' 양화편의 이야기를 묘사한 삽화. 단순한 에피소드 같지만, 실은 공자가 정계에 나설 수 있는 기로가 됐던 중대한 사건이었다.

- 이런 일 겪은 적 있어? 아주 미운 사람이 있어. 나는 그 사람의 무례함과 터무니없음을 생각할 때마다 혼자서 몸서리를 치지. 다른 사람들도 대개 그를 멀리하고 말야.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그를 탐탁잖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어느날 전화가 온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로 찾아오겠다고 말이지. 난 선약이 있다고 둘러대고 미리 교보문고 같은 데로 숨어버리려 하지. 그런데... 교보문고 입구에서 그 녀석과 떡하니 마주쳐 버린 거야! 그때 기분이 어떨 거 같아?

- 그것 참. 상당히 당혹스럽겠네.

- 그래. 공자님이라 해도 이런 경우엔 참 황당할 노릇일 거야.

- 갑자기 웬 공자님… 가만, 그러고 보니 그런 비슷한 장면이 ‘논어(論語)’에 나오는 것도 같은데. 네가 말한 것과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 내가 말하려는 게 그거였어.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얘기지.

- 양화라… 그 사람은 바로 양호(陽虎) 아닌가. 노(魯)나라 귀족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었다가 주군도 배신하고 3년 동안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인물이잖아. 공자하고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지. 공자가 아직 젊고 미천한 신분이었을 때 한 파티에 참석하려고 하자 “이 자리는 사(士)를 위한 자리이지 그대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며 문전박대한 그 친구지, 아마.

- 재미있는 건 그 자의 외모가 공자와 상당히 비슷했다는 얘기야. 공자가 일찍이 진(陳)나라로 갈 때 광(匡) 땅을 지나갔는데, 양호한테 늘 괴롭힘을 당하던 그곳 사람들이 공자가 양호인 줄 알고 닷새동안이나 포위하고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공자의 애제자 안회(顔回)가 한때 실종돼 공자는 이미 안회가 죽은 줄로 알고 있다가 뒤늦게 상봉하고…

- 그건 사마천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오는 얘기 아냐? 사마천은 위대한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난 웬지 그 부분은 좀 아귀가 안 맞는 것 같아. 어쩐지 연대나 사건들이 착간(錯簡) 투성이인 것 같지 않나? 공자세가를 읽다 보면 공자가 성인이라기보다는 기네스북 편찬자나 퀴즈왕처럼 느껴지더라고. 사람들이 궁금한 거 있으면 다 공자한테 물어보고 말이야.

- 고대의 위대한 스승은 인터넷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 단테 시대에 소르본 대학 도서관 장서 수가 겨우 1300여권 정도였다지. 공자 시대에는 어땠을지 확실히는 몰라도, 스승의 역할을 한 공자는 분명 당대의 거의 모든 ‘지식’들을 다 알고 있었다고 봐야지. 아무튼 불경스런 발언은 삼가주면 고맙겠어.

- 근데, 양화편 얘기는 왜 꺼낸 거야?

- 양호가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켜 전권을 장악한 게 기원전 505년 쯤 됐었지. 이때 공자는 사구(司寇) 같은 벼슬을 지냈다는 얘기도 있지만 다 지어낸 얘기 같기도 해. 크릴(H. G. Creel) 같은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 “공자가 그렇게 열망하면서도 아무 지위를 얻지 못한 사실은 점점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라고. 정작 자기가 배출한 주요 제자들은 다 제후들 밑에서 한 자리씩 얻고 있었는데 말야. 이때 양호가 사실상 백수였던 공자님한테 손길을 뻗었던 거지.

- 명망가(名望家)로서의 교육자를 등용하는 척 하면서 민심을 모으려고 했구만.

- 좀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 그는 학단(學團)의 큰 스승이었어. 그 이전에는 그런 본격적인 학단도 없었고.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거의 전무한 시절, 공자가 배출한 사인(士人)들은 학식과 교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더구나 자공(子貢)같은 사람은 당대의 벤처기업가였고. 이런 인재들을 어디서 구하나? 공자를 일단 모시기만 하면 그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 아닌가. 양호 자신도 가신(家臣) 출신이니 크게 보아 사(士)의 한 갈래야. 구닥다리 귀족 계씨를 몰아낸 인물이 귀족출신의 인재를 선호할 리도 만무했고, 아니 당시에 그런 인재가 있기나 했겠나? 그 암울한 춘추시대 말기에.

- 양호가 공자를 포섭하려 했다… 당연히 공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겠군.

- 난폭한 음모가였고, 정치꾼이었지. 가신으로 있다가 벼락 출세한 사람이고. ‘좌전’이고 ‘맹자’고 ‘사기’고 할 것 없이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아. 주군을 배반한 난신적자(亂臣賊子)의 세상에서 공자가 정치를 하려 하겠는가. 자, 양화편은 이렇게 시작돼. 양화가 공자를 만나려고 했으나 공자가 만나주지 않자, 공자께 삶은 돼지를 선물로 보내 드려.(陽貨欲見孔子, 孔子不見, 歸孔子豚) 그런데 여기서 공자님이 취한 태도가 너무나 인간적이야. 일부러 양호가 없는 틈을 타서 답례하러 가거든. 그러다 길에서 마주쳐 버린 거야.(孔子時其亡也而往拜之, 遇諸塗)

- 아까 교보문고 사건이랑 비슷한 경우군. 무슨 얘긴지 알겠다. 만나기 귀찮은 사람이 자기 딴에는 예(禮)를 보내 왔으니 거절한다면 군자의 도리가 아니겠고, 만나기는 싫고. 그런데 양호가 언제 자리를 비우나 사람을 시켜 살피다가 양호가 집을 나갔는데요!라는 보고를 듣자마자 ‘바로 이때다’라는 듯 채비를 차려서 답례하러 가셨단 말인가? 싫다는 말도 못 하시고, 정말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야… 하긴 호오(好惡)를 칼로 자르듯 표현하는 것도 군자의 도리는 아니겠지. 그러다 길에서 마주쳐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정말 아무리 공자님이라 해도 말야. 난처하셨겠네. 속마음을 들킨 것도 같았겠고.

- ‘맹자(孟子)’ 등문공 하편에서 이 얘기를 설명한 걸 보면 좀더 복잡해. 대부(大夫)가 사(士)한테 선물을 보낼 경우에 사가 자기 집에서 그걸 받지 못하면 직접 대부 집에 찾아가 사례한다는 게 당시 예(禮)였나봐. 양호는 공자가 부재중인 걸 엿보고 돼지 선물을 한 다음에 집에 없는 척 해서 공자가 사례하러 오게 하고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자를 만난 거지.

- 양호가 무슨 경찰기자 2진인가? 하여튼 머리는 잘 썼구만. 양호는 공자님이 자기 의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가 이미 알고 있음을 공자님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까지 감지하고 있었구만. 허 참, 때로는 소인배의 꼼수에 성인(聖人)이 넘어갈 때도 있네그려!

- 어쨌든 외모가 흡사한 거구의 두 인물이 길거리에서 마주친 광경은 예사롭지는 않았을거야. 처음엔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겠지. 이윽고 여유만만한 양호는 공자한테 먼저 말을 꺼내지. “이리 오세요. 얘기좀 합시다.(謂孔子曰: 來, 予與爾言) 괜찮은 보물을 품고서 나라를 어지럽게 버려두는 걸 어질다고 할 수 있어요?(曰: 悔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아니죠.(曰: 不可)” “일에 종사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놓치는 걸 앎이라고 할 수 있어요?(好從事而기(極에서木뺌)失時, 可謂知乎?)” “아니올시다.(曰: 不可)” “해와 달이 저렇게 흘러가는데, 시간은 나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아요.(日月逝矣, 歲不我與)”

- 서태지 노래 가사같은 부분도 나오네. 참 달콤한 유혹이다. 파티장 기도 노릇 할 때하곤 180도 다르네. 아무튼 사람은 배우고 볼 일이야. 근데 웬만한 사람이면 지조를 지키는 척 하다가도 이쯤에서 넘어가 주고 말 거야. “국민들을 생각해서 어려운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정치를 하시죠, 선생님” 뭐 이런 말이네. 더구나 공자님의 약점을 콕 집어내는군. 당신은 매번 헛다리만 짚었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 당신 포부를 펼치려면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밑으로 와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세 가지 유혹을 받은 장면이 문득 생각나는군. 시간상으론 이때가 훨씬 먼저겠지만. 그래서 공자님은 뭐라 하셨나? “사탄아 물러가라” 하셨나?

- 이렇게 말씀하셨지. “예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내 장차 벼슬을 하겠소.(孔子曰: 諾, 吾將仕矣)”

- 뭐야? 아니 그거 승낙해버린 거 아냐? 그예 그 폴리티션한테 넘어가 버리셨나?

-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어. 앙리 마스페로(Henri Maspero)도 그랬고 가이즈카 시게키(貝塚茂樹)도 그랬고. 특히 패총 같은 사람은 공자가 여기서 낮은 차원의 ‘협애한 군신관계’ 따위는 초월해 버린 것으로 해석하려고 했지. 근데, 도대체 이게 명분이 서는 말인가? “평생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총리를 맡아 주시죠.” 이런 말 했다가 퇴짜맞은 사람이 6공때도 있었다는데, 결국 자기 밑으로 들어오란 얘기 아닌가. 그래 군자가 일개 가신(家臣)과 주종의 임협(任俠)관계를 맺는다고?

- 왜 흥분하고 그래. 그래서 공자가 양가 밑에서 관직을 맡았다는 근거가 있어?

- 없어.

- 그럼 승낙한다는 얘긴 뭐야?

- 나가긴 나갈 건데, 너같은 녀석 밑엔 안 들어간단 얘길 돌려서 한 거지. 구구하게 설명을 늘어놓아 가며 말싸움을 할 상대가 아니었거든. 당신 말은 다 맞다. 세월이 마냥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 쓸데없는 것 같으냐? 내가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군자로 만들고 있는 일이 괜히 하는 일 같으냐?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내가 세우려는 이상적 도덕세계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이런 말을, 단 한 마디에 압축시킨 것이지. 아무리 난폭한 양가인들 어쩌겠는가.

- 근데, 이 얘기를 왜 꺼낸 건데?

- 사(士)라면, 이 땅에서 엄청난 교육비 들여가며 배운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진퇴(進退)에 있어서는 분명하고 깨끗해야 한단 말이야. 왜 배웠다는 자들이 아직도 벼슬 앞에선 위선자가 돼 버리나? 이제라도 불러주셨으니 충성을 다해야 된다는 둥, 주군의 뜻을 따르지 않고 웬 소란이냐는 둥, 자꾸 우리 조직을 흔들지 말아달라는 둥, 물러나고 나면 매번 낙하산. 근무일 중 93%를 지각했던 공직자가 물러날 때가 되니 ‘퇴임 후 휴식은 사치’ 운운하며 야당 공천 자리 달라고 추파를 던지지 않나. 참, 권력의 달콤한 핵심 주변에서 벌어지는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매번 신경을 건드리는군. 처음부터 자기가 나아갈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고사(固辭)를 했어야지. 작은 명망이라도 있던 인물들은 왜 굳이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경력에 흠집을 내며, 또 애당초 그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을 사람들은 왜 거기에 가 있나? 하도 답답해서 ‘논어’에 나오는 ‘깨끗한 진퇴’의 얘기를 해 본 거야.

- 너도 참 답답하다. 도대체 언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군자(君子)라고 부른 적이 있었냐? 말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다르잖아.

- 군자는 맞지. 양상군자(梁上君子)…!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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