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별세한 '주역의 대가' 대산 김석진 선생. /이진한 기자

‘주역의 대가’인 대산(大山) 김석진(95) 선생이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충남 논산에서 1928년 태어난 김 선생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다. 신학문을 배우고 싶어하는 김 선생에게 할아버지는 “‘인기아취(人棄我取·다른 사람이 버리는 것을 나는 갖는다), 지금은 한학이 천대받아도 나중에 귀하게 된다. 글자 한 자에 천 냥짜리가 될 것”이라며 한학을 권했다고 한다. 19세부터는 당대의 한학자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 선생 문하에 들어가 13년간 배웠다. 이달은 ‘이주역’이란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근대 주역 연구의 대가였다.

김 선생은 한때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한약방을 운영하면서도 주역 연구를 계속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5년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시작한 ‘주역 강좌’. 소설 ‘단(丹)’이 베스트셀러로 주목받던 시절이었다. 그의 주역 강좌는 인기를 모으며 제주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열렸고, 2002년까지 연인원 1만명이 강의를 들었다. 정치인, 대기업 총수 등 그에게 호(號)를 받은 사람만 3000명에 이른다. 김 선생은 호를 짓는 원리로 “사람의 사주를 살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잘될 수 있는 부분을 북돋우는 뜻을 두 글자에 담았다”며 “30년이 지나 ‘지어준 호대로 살아왔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기뻤다”고 했다.

매일 아침 주역 점을 치며 하루를 시작한 그는 “점에서 좋다고 하면 더 근신하고, 나쁘다고 하면 더 조심했다”고 했다. 고령에도 강의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고 겸손과 유머가 넘쳤다. “주역에 땅을 아홉 길을 파도 마지막 한 길을 파지 않아서 샘물이 나오지 않으면 버린 샘이라 했는데 제가 꼭 그런 사람”이라고 겸손해했다. 또 평생을 주역과 함께했지만 ‘주역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가’란 질문엔 주저 없이 “모르고 사는 게 좋다”고 했다. “미래를 알수록 걱정도 많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선생의 장례는 한국홍역학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실,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2)301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