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자택에서 만난 김찬호 교수는“코로나 시대의 고독은 타인과 단절하는 고립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새로운‘독립’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핵심은 대면(對面)이냐 비대면(非對面)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무너진 삶을 수습하고 사회를 복원하려면 말이죠.” 최근 저작 ‘대면 비대면 외면’(문학과지성사)을 쓴 사회학자 김찬호(60) 성공회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가 말했다.

코로나 재난이 서서히 끝을 보이고 있는 지금, 김 교수가 말하는 사회 복원의 요체는 이것이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상관없이 인간적 유대를 복원하고 확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선을 돌려 외면(外面)하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맞아들이는 환대의 시공간이 필요하죠. 바로 여기서 팬데믹 시대를 건너가는 사회적 면역력이 배양되는 것입니다.”

서울 상암동 자택 서재, 아파트와 하늘공원의 단풍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김 교수가 차분히 말했다. 이토록 목소리가 따뜻한 사회학자는 처음 만나봤다. 그는 한국 사회 일상의 문법을 굴욕과 존엄의 감정을 통해 짚은 ‘모멸감’(2014), 웃음과 공감을 소재로 살핀 ‘유머니즘’(2018) 등의 저서를 냈었다.

이번 책은 3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렇게 말했죠. ‘인간의 사회적 삶은 개인과 개인이 맺는 대면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고요. 하지만 그건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틀린 진술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뉴노멀 시대에 이제 우리는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면’은 당연히 인간 삶의 기본값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사람들은 표정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눈빛으로 마음을 드러내죠. 몸짓언어 같은 여러 가지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맥락을 빚으며 삶의 지평을 확대합니다. 그러다 ‘비대면’의 시대가 온 거죠.”

‘비대면’이나 ‘언택트’는 한국에서만 쓰는 용어인데, 그는 이 개념이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그 속에 세 가지 층위가 있다고 분석한다. 원격(遠隔), 무인(無人), 가상(假想)이다. 이것은 서로 맞물린 속성인데, 재택 노동자가 스마트글라스를 쓰고 업무를 수행한다면 원격과 가상이, AI 면접은 원격과 무인이, 은행 직원 아바타와 금융 상담을 한다면 원격·무인·가상이 결합된 것이다.

김 교수는 “결국 ‘대면’의 반대는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격 비대면의 경우 줌 회의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실상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면과 다를 바 없다. 반면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고 해도 다들 따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는 “아이가 진료받는 동안 부모가 내내 휴대전화에서 눈을 못 떼더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을 들었다”며 “이것은 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라고 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처럼 주어진 고독(孤獨)의 시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하는 고립(孤立)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내면의 중심이 분명하게 세워진 사람만이 인간관계에서 자기 중심적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독립(獨立)을 훈련한다면 타인과의 만남도 한결 충실해질 수 있죠.”

로그인과 로그아웃이 유연하게 교차하고 대면과 비대면이 순환하는 가운데, 마스크 너머로 주고받던 따스한 눈빛으로 악수를 나누며 연대(連帶)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또 다른 팬데믹이 덮친다 해도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