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 일주문 앞을 전동 카트가 지나고 있다. /해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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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골프장 전동카트가 여기 있네?”

올해초 강화도 전등사를 방문했을 때 전동 카트가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동 카트가 소리도 없이 사찰 경내를 누비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습니다. 사람도 타고, 짐도 실어 옮기는데 유용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저도 잠깐 타봤는데 절에서 전동 카트를 탄다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전등사를 다녀온 후로 전동 카트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 다른 사찰을 방문할 때에도 매번 전동 카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만 타는 승용도 있고, 짐을 실어나르는 짐칸을 뒤에 장착한 화물용도 있었습니다. 불교계 인사들에게 문의하니 “웬만한 교구 본사(本寺)에는 다 있을 걸요?”라고 했습니다. 서울 근교만 해도 진관사에는 승용 1대를 비롯해 총 5대가 있고, 가평 백련사에도 1대가 있답니다. 해인사는 3대, 산내 암자인 홍제암에도 1대가 있답니다. 그밖에도 서울 봉은사와 화계사, 양산 통도사, 대구 동화사, 영천 은해사 등에도 전동 카트가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산문(山門)을 개방하는 종립수도원 문경 봉암사에도 전동 카트가 3대 있답니다.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전동 카트. 1년 중 부처님오신날 하루만 산문을 열고 평소엔 참선수행에 매진하는 봉암사에서도 전동카트는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봉암사 제공

전동 카트가 산사(山寺)에 대유행하고 있는 셈이지요. 사찰 관계자들에게 문의해도 언제부터 전동 카트가 사찰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정설이 없더군요. 10~15년 전쯤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도입 시기는 사찰마다 다르겠지요. 그렇지만 전동 카트를 이용하는 사찰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용성’을 꼽았습니다.

경북 영천 은해사의 전동카트. 규모가 큰 교구본사에는 많은 경우 전동카트가 운행되고 있다. /은해사 제공

조계종은 전국을 24개 교구(敎區)로 나누고 있습니다. 각 교구에는 본사(本寺)와 말사(末寺)가 있지요. 교구 본사는 대개 크고 역사가 오래된 사찰입니다. 경내가 넓지요. 교구본사들은 사찰의 규모만큼 크고 작은 행사가 많습니다. 제사도 많고요. 그때마다 과일과 음식 등 준비물을 법당으로 옮기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과거엔 손수레나 작은 트럭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손수레는 경사진 길을 오르려면 힘이 들지요. 트럭은 매연이나 냄새, 소음 때문에 방문객이 많을 때에는 운행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동카트는 이런 불편함을 한꺼번에 해소해줬다는 게 사찰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이따금 걸음이 불편한 노보살님을 태워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신다고도 하네요.

대구 불광사의 전동카트. 사찰 주변이 환경보호구역이어서 삼륜차 모양의 전기차를 사용하고 있다. /대구 불광사

전통 사찰의 길은 시멘트나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라 고운 마사토가 깔린 경우가 많습니다. 전동 카트는 트럭에 비해 크기도 작기 때문에 좁은 길도 잘 다니면서 먼지도 덜 날리고 소음과 매연도 없으니 사찰에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친환경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쉴 새 없이 사찰 곳곳을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각 사찰에 사진을 부탁드려도 한꺼번에 모여 있는 모습을 촬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각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서울 강남 봉은사의 전동카트. 뒷칸에 짐을 잔뜩 실어 나르고 있다. /봉은사 제공

설명을 듣고보니 그동안 제가 눈여겨 보지 않았을 뿐, 전동 카트는 사찰 안팎에서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렇듯 전동 카트는 불과 10여년 사이에 규모가 있는 사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요즘에는 일반 사회에서도 전기차가 큰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사찰에서는 벌써 10여년 전부터 친환경 전동 카트가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서울 화계사의 전기자동차. 전동카트뿐 아니라 전기자동차도 사찰에 많이 도입되고 있다. /화계사 제공

사찰뿐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서울 창덕궁을 방문했더니 거기서도 전동 카트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앞좌석에는 사람이 앉고 뒤에는 짐칸이 딸린 카트였습니다. 문화재청에 문의해보니 창덕궁에만 7대가 운행되고 있다네요. 창덕궁을 포함해 경복궁 덕수궁 종묘 등 서울에만 10여대의 전동 카트가 있답니다. 대부분 작업용으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궁궐 역시 경내가 넓고 작업할 일이 늘 많다는 점에서 사찰과 비슷한 이유로 전동 카트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창덕궁 경내를 운행 중인 전동카트. 짐칸에 작업도구를 싣고 있다. 경복궁 덕수궁 종묘에도 전동카트가 있다고 한다. /김한수 기자

전동 카트의 유행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찰의 생활도 바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동 카트는 사찰에서 지내는 분들을 위한 변화이지만 ‘소비자’라 할 신도들을 위한 변화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고령의 신도들을 위해 일명 ‘교회 의자’로 불리는 긴 의자를 들이는 사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래된 한정식 음식점들이 탁자와 의자로 바꾸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필요한 변화는 얼마든 수용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본질만 훼손하지 않는다면요. 방바닥이 아닌 식탁에 앉아 먹는다고 해서 음식맛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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