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공개된 관조 스님 사리탑. 평생 사진 작업에 정진한 스님을 기려 자연석에 카메라 모양을 새겼다. 눈동자가 새겨진 렌즈 부분에 유골을 모셨다. /가평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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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화강암 바위 윗부분에 네모와 동그마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네모는 카메라 몸체, 동그라미는 렌즈입니다. 24일 경기 가평 백련사(주지 승원 스님)에서 제막식을 갖고 공개된 관조(觀照·1943~2006) 스님의 부도(浮屠·사리탑)입니다. 관조 스님은 한국 불교 사진의 선구자입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입적하기 직전까지 20만 장의 사진을 통해 사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분입니다. 사리탑으로 보자면 파격이지만 관조 스님의 일생을 생각해본다면 가장 어울리는 모양의 사리탑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리탑은 종(鐘) 모양이 많지요.

가평 백련사 뒷산에 마련된 관조 스님의 사리탑(오른쪽)과 비석. /김한수 기자

이런 파격적 사리탑이 세워지게 된 것은 상좌(제자)인 승원 스님의 스승에 대한 각별한 효심(孝心)이 있었습니다. 승원 스님은 17살에 범어사로 출가해 관조 스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관조 스님은 촉망받는 학승(學僧)이었습니다. 1960년 출가한 관조 스님은 일찍이 30대 초반에 해인사 강원(講院)의 강주(講主) 즉 승가대학장을 지냈습니다. 지관 스님 등 당대 불교계 석학들이 맡았던 자리이지요. 지난번 소개한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사진집엔 탄허 스님이 관조 스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 여러 장 보입니다. 그만큼 불경 연구와 번역, 강의에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지요. 산술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출가 후 불과 10여년만에 이룬 성취입니다. 당시 불교계에서 관조 스님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높았을지도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그랬던 관조 스님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사찰에서는 아무 소임을 맡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전국의 사찰과 폐사지를 다녔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영상 포교’에 나선 것이지요.

카메라 모양으로 만든 관조 스님 사리탑 제작 과정. 왼쪽부터 바위에 구멍을 뚫고, 은제 사리함을 넣은 후, 오석으로 입구를 봉했다. /가평 백련사 제공

당시만 해도 관조 스님의 변신은 칭송 대신 핀잔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진이 최고인 시대입니다. 관광지든 음식점이든 인스타그램에 잘 나와야 각광받습니다. 누구나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사진작가입니다. 그러나 40여년 전엔 스님이 경전 공부나 참선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수행’으로 쳐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게다가 스님들이 참선하는 선방(禪房), 새로 스님이 되는 수계식과 다비식(화장)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환영받지 못했지요. 아직 10대였던 승원 스님은 그런 스승의 활동이 ‘창피했다’고 합니다. 마치 사춘기 청소년이 동네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부모에 대해 가지는 마음 비슷했겠지요.

10월 24일 가평 백련사에서 열린 관조 스님 부도탑비 제막식. 전국의 스님과 불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김한수 기자

그러나 관조 스님은 그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처의 방 하나를 암실(暗室)로 꾸미고 사진 작업을 꾸준히 했습니다. 사찰 법당 ‘꽃살문’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알렸고, 막 출가한 비구니 스님이 긴 머리를 깎는 장면을 촬영했으며, 눈푸른 선승(禪僧)들이 좌선하며 깨달음을 간절히 구하는 모습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굴산사지, 신복사지, 한계사지 등 폐사지는 수시로 찾아 옛 사찰의 흔적을 담았고, 전국의 마애불은 촬영하기에 빛이 좋은 새벽과 노을 무렵 오르고 또 올라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제자인 승원 스님에겐 수시로 전화가 왔다지요. “시간 되나?” 그러면 승원 스님은 며칠씩 폐사지 순례에 동행하며 ‘조수’ 노릇을 했답니다. 주춧돌과 깨진 돌만 나뒹구는 폐사지를 순례하면서 관조 스님은 “(불교를 지키는)호법신장(護法神將)이 있다는 것도 헛말이야. 이렇게 폐허가 된 불교의 현실을 알려서 자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람을 찍고 싶다” “사진은 나의 사리다.” “깨달음의 세계를 문자로 기록한 것이 선사들의 어록이라면 나는 카메라로 어록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 관조 스님은 2006년 입적했습니다. 20만장의 ‘사리’를 남겼지요. 승원 스님은 스승의 임종 때 “꼭 제대로 된 사진집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 약속은 16년만에 이뤄졌습니다. 최근 출간된 사진집 ‘觀照’(불광출판사)입니다. 24일 추모 다례제엔 이 사진집이 봉정됐습니다. 다례제에 맞춰 스님의 부도와 탑비도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관조 스님의 작품 '성황당'. 관조 스님은 1970년대부터 사라져 가는 전통 문화를 사진에 담았다. /불광출판사
관조 스님의 작품 '신흥사 꽃살문'. 관조 스님은 사찰 꽃살문의 아름다운 문양을 사진 작품을 통해 국내외에 알린 선구자다. /불광출판사

파격의 부도 디자인은 승원 스님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백련사 뒷산의 잘생긴 자연석에 카메라 몸통 모양의 사각형을 새기고, 둥근 렌즈 부분엔 깊이 30cm 구멍을 뚫었습니다. 관조 스님의 유골을 담은 은제사리함을 그 구멍 안에 모시고 오석(烏石)으로 뚜껑을 만들어 막았습니다. 오석 뚜껑엔 눈동자를 새겼지요. 마치 관조 스님과 보는 이가 눈을 마주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안구와 법구(法軀·시신)를 기증한 관조 스님의 유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도와 탑이 놓인 자리는 잣나무가 둘러싸고 있으며 탁 트인 전망이 일품입니다. 특히 이날은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빼어난 경치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승원 스님은 “종교에 관계 없이 누구나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의 이름도 ‘관조원(觀照園)’이라 했습니다. 공원인 것이지요.

24일 관조 스님의 사리탑 제막식이 열린 가평 백련사 풍경. 관조 스님의 사리탑은 대웅전 뒷동산에 자리잡았다. /김한수 기자

이날 승원 스님은 추모 말씀 중 “16년 전 임종 때 은사 스님의 손을 잡으며 귓가에 드렸던 말씀, 사진집을 내드리겠다는 약속을 16년 동안 못 지켰다”며 “은사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제대로 살겠다”며 울먹였습니다. 제자의 애틋한 마음으로 마련한 이 자리엔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일면 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과 많은 불자들이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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