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 개원하는 무산선원. 왼쪽부터 신달자 시인, 권영민 교수와 주지 선일 스님. 법당 외벽엔 무산 스님의 시조와 그림이 장식됐다. /김한수 기자

“무산(霧山) 스님은 문단 곳곳 음지에서 겨우 눈 뜨고 살아가는 문인들의 손을 잡아주신 분입니다. ‘서로 힘 합해 기쁘게 살자’고 말씀하셨지요. 스님 제자분들의 지원으로 이곳에서 매달 시 낭송회와 작은 음악회를 열며 스님을 기억하고 기리려고 합니다.”(신달자 시인)

서울 성북동 삼청각 바로 옆 계곡에 이색 사찰이 문을 연다. 19일 개원하는 ‘무산선원(霧山禪院)’이다. 서울 시내에서 삼청터널을 지나자마자 바로 왼편 계곡에 자리한 무산선원은 본인 스스로 등단 시조시인이었으며 문화예술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전 신흥사 조실(祖室) 무산 스님(2018년 입적)을 기리는 공간.

무산선원 입구의 표지석. 서울 성북동쪽으로 삼청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15일 간담회를 통해 공개된 무산선원은 ‘서울에 이런 공간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의 색다른 느낌이었다. 고즈넉한 계곡 옆 길쭉한 약 300평 공간엔 법당과 작은 강당 겸 숙소인 요사채가 놓여있다. 원래 ‘홍련사’란 사찰이 있었고 노스님이 계셨는데 무산 스님의 제자인 삼조 스님에게 기증한 후 입적했다고 한다.

무산선원 법당 뒷쪽 벽. 무산 스님의 시조 '울음소리' '아득한 성자' 등과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김한수 기자

6개월의 리모델링을 거쳐 재탄생한 무산선원은 현대적이고 파격적이다. 법당의 사방 외벽은 무산 스님이 생전에 컬러 매직으로 그린 그림이 장식하고 있다. 또 ‘파도’ ‘아득한 성자’ 등 무산 스님의 시조 작품도 친필로 새겨져 있다. 요사채 안에도 무산 스님의 그림 10여 점이 걸려 있다. 무산 스님은 생전에 여기(餘技)로 그림을 즐겨 그려 주변과 나눴다. 컬러 매직으로 종이판에 슥슥 그린 그림 속에선 물고기와 동식물,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십자가를 그리고 ‘오, 하느님’이라 글씨를 쓴 그림도 있다. 마치 유치원생이 그린 듯 천진한 그림들은 스님이 평소에 이야기한 ‘화합’과 ‘평화’를 웅변하는 듯하다. 무산선원 주지 선일 스님은 “무산 스님이 다양한 예술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들었듯 이곳은 전통적인 참선이나 기도보다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백담사 인근에 ‘만해마을’을 만들어 시인·소설가에게 집필실을 제공했고, 매년 만해축전을 통해 문화예술 잔치를 벌였던 무산 스님의 정신을 잇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무산 스님이 30여년 전 속초의 한 성당에서 법문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무산선원 요사채 벽에 걸려 있다. /김한수 기자

하드웨어는 스님들이 만들고 콘텐츠를 채우는 것은 무산 스님과 가까웠던 문화예술인들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와 신달자 시인 등은 ‘무산을 그리워하는 모임’(가칭)을 통해 약 50명의 회원과 함께 매월 문화 행사를 기획한다는 계획. 19일 오후 3시 개원식에는 신영균 이근배 오세영 정호승씨 등 문화예술인 150여 명이 참석할 예정. 안숙선 명창의 공연도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