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언론 브리핑하는 허영엽 신부(왼쪽). 오른쪽은 당시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지난 18년간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 등 많은 일이 있었네요. 처음 홍보를 맡았을 때 ‘왜 그런 걸 알려고 해?’라고 하시던 신부님과 수도원들도 이젠 홍보 마인드가 많이 높아진 것 같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2004년 3월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입’으로 활동해온 허영엽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가 교구 정기 인사에 따라 8월 30일로 홍보 담당을 떠났다. 30일 만난 허 신부는 “당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님이 ‘나랑 같이 2년만 고생해달라’고 해서 맡은 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당시 홍보 담당의 주요 업무는 언론 홍보보다는 주보(週報) 제작이었다. 허 신부는 홍보 인원을 확보하고 교구 내의 크고 작은 소식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신학생 시절 학보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 홍보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해 교구 홍보국장, 대변인, 비서실장, 홍보위 부위원장 등으로 직함은 바뀌었지만 그는 18년간 항상 홍보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 언론 브리핑하는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홍보 수요는 뜻밖에 빨리 몰려왔다. 2006년 정진석 대주교가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되고,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했다. 특히 김 추기경 선종 때에는 서울대교구가 준비했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전 국민적 추모 열기가 일어났다. 허 신부는 “선종 다음 날부터 국민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준비한 것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했다”고 했다. 5일간의 장례 기간 내내 오전 오후 브리핑을 통해 상황을 전했고, 평소 많이 한 말씀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를 유언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미처 예상치 못한 ‘김 추기경이 남긴 재산’ 질문이 나왔을 땐 당황했지만 비서 수녀에게 문의해 ‘사실상 마이너스 상태’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김 추기경 장례를 치른 경험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또 정 추기경 장례 때는 미리 장기·각막 기증, 유산 기증 계획을 알리기도 했다.

지근거리에서 추기경들을 모신 만큼 일화도 다양하다. 정진석·염수정 추기경 서임 당시엔 대변인인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당사자들은 미리 통보를 받으셨겠지만 비밀 유지 의무도 있고, 무엇보다 정확한 발표 날짜는 모르셨던 것 같다”며 “갑자기 자료를 준비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또 “2013년 콘클라베 때는 새벽에 졸면서 뉴스를 보다가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새 교황님이 화면에 나오기에 깜짝 놀라 당시 염 대주교님께 알리고 새벽 감사미사를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정진석 추기경(왼쪽)과 허영엽 신부. 정 추기경의 회고록 집필 중 촬영한 사진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그는 “김수환 추기경님은 카리스마에 언론을 대하는 부분도 노련하셨고, 정진석 추기경님은 겉으론 엄숙해 보여도 속정이 많으셨으며, 염수정 추기경님은 홍보 업무를 많이 이해해주셨다”며 “곁에서 뵈면 ‘교구장님도 약한 인간인데 저 많은 요구, 무거운 짐을 어떻게 감당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고 했다.

2017년 김지영(뒷모습 보이는 이)씨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을 때 염수정 추기경(가운데)이 허영엽 신부(오른쪽 끝)와 병문안 하는 모습. /서울대교구 제공

허 신부는 정 추기경의 구술을 정리해 회고록 ‘추기경 정진석’을 집필하면서 인간적 면모를 새롭게 발견했다고 했다. 정 추기경은 부친이 월북한 사실을 장성한 후에야 알았고, 서울대 재학 중 6·25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며 사제의 길로 방향을 바꿨다. “정 추기경님은 너무나 힘든 일이 많아서인지 사제가 되기 전의 기억은 의식적으로 닫아두셨던 것 같다”며 “회고록을 위해 옛날 기억을 하나씩 들추는 과정이 오래 걸렸는데,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웠다”고 했다.

18년간 '서울대교구의 입'을 담당했던 허영엽 신부. /김한수 기자

18년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에 홍보 담당을 떠나는 섭섭함은 없고 대과(大過) 없이 마칠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2008년 설립한 ‘영성상담심리교육원’ 원장으로 옮겨 신자 재교육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