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계에 ‘서울·로마 두 추기경 시대’의 막이 올랐습니다. 지난 27일(현지 시각)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는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부(部) 장관의 추기경 서임식이 열렸습니다. 유 추기경은 함께 임명된 추기경 19명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을 상징하는 진홍색 비레타(아래는 사각이고 위는 성부와 성자·성령을 상징하는 세 개의 각이 잡힌 모자)와 반지 그리고 로마 시내의 명의 본당 지정 칙서를 받았지요. ‘명의 본당 지정 칙서’란 추기경에 서임되면 로마 시내의 본당(성당) 중 한 곳에 명의상 사제 혹은 부제로 임명되는 형식을 가리킵니다. 유 추기경은 ‘몬타뇰라의 착한 목자 예수 본당’의 ‘명의 부제’로 임명된 것입니다. 교황으로부터 이 세 가지를 받음으로써 정식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서임식 자리에는 한국의 염수정 추기경도 추기경단의 일원으로 참석했습니다.
유 추기경의 서임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는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 등 3명의 추기경을 배출했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주교를 거쳐 서울대교구장 때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이에 반해 유 추기경은 충남 논산 출신으로 대전교구장 주교를 맡고 있던 중 지난해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됐습니다. 지난해 8월 장관에 취임했으며 다시 1년만에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과거 교황청 부서는 ‘성(省·Congregatio)’으로 불렀으나 올해초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부(部· Dicasterium)’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반 사회로 치면 1년 정도의 시간에 인사권자(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주교에서 대주교를 거쳐 추기경까지 ‘초고속’으로 발탁된 것이지요. 로마 라테란대 대학원에서 유학 중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고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교황청 인사들과 꾸준히 교유해왔고 한국 성직자 가운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직접 소통하는 몇 안 되는 분이지요. 또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대전교구가 주관한 아시아청년대회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 교구장으로서 교황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연이 축적돼 교황청 장관 발탁의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 추기경이 서임됨으로써 한국은 교황 선출 투표권을 2장 가지게 됐습니다. 알려진 대로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는 만 80세 미만 추기경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20명의 추기경이 새로 임명돼 현재 세계 가톨릭의 추기경은 226명으로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교황 선출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은 132명입니다. 한국의 염 추기경은 만 80세가 되는 내년 12월까지, 1951년 11월생인 유 추기경은 2031년 11월까지 투표권을 갖게 됩니다. ‘교황 선출 투표권 2장’은 한국 천주교로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한 분이 80세가 넘은 후에 다음 추기경이 임명됐기 때문이지요.
한국 천주교계는 한동안 일본 천주교계에 대해 은근한 자존심 경쟁(?) 같은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특히 추기경 숫자를 비교하곤 했지요. 작년 기준으로 일본 천주교 신자는 43만1000여명으로 한국(590만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거든요. 그렇지만 일본 천주교 최초의 추기경은 한국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1960년 도이 추기경(1970년 선종)이 서임돼 1969년 서임된 김수환 추기경보다 9년 빨랐지요. 이후 지금까지 6명의 추기경이 탄생했습니다. 다구치(1973년 서임·1978년 선종), 사토와키(1979년 서임·1996년 선종) 시라야나기(1994년 서임·2009년 선종) 하마오(2003년 서임·2007년 선종) 그리고 현재 마에다 추기경이 2018년에 서임됐습니다. 도쿄와 오사카 출신의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이중 하마오 추기경은 19년 전에 교황청의 장관급 직책인 이주사목평의회 의장을 지냈습니다. 하마오 추기경도 유 추기경처럼 일본 교구가 아니라 교황청에 근무했지요. 한때 일본 천주교는 도쿄엔 시라야나기 추기경, 교황청엔 하마오 추기경 등 ‘추기경 2인 시대’가 있었지요. 다만 일본은 시라야나기 추기경이 2009년 선종(善終)한 후 2018년 마에다 추기경이 서임되기까지 9년간 추기경 공백 상태였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김수환 추기경 생전에 정진석 추기경이 서임됐고, 정 추기경 생전에 염 추기경이 서임되는 등 1969년 김수환 추기경 서임 이후로 추기경이 공석인 시기는 없었습니다.
교황청 장관이 되면 여러가지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우선 ‘국적’이 바티칸 소속이 되지요. 추기경에 서임되면 모두 바티칸 국적을 갖게 되지만 교황청 장관이 된다는 것은 특히 한국이 아니라 세계 천주교를 대표하는 성직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세계 천주교의 심장부에 한국인 성직자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한국 천주교계에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현재 한국 천주교와 교황청의 현안은 교황의 방북 문제와 순교자들의 시복시성(諡福諡聖·복자와 성인의 품위에 올리는 것) 문제 등이 있습니다. 유 추기경이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이 같은 현안 해결에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