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원로목사

14일 별세한 고(故)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해 한국교회의 부흥과 세계교회 성장을 주도하며 개신교 선교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고인은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설립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3년 세계 최대 규모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1958년 5월 고(故) 최자실 목사와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교회로 시작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61년 서대문교회를 거쳐 1973년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이름을 변경, 한국 교회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1958년 1명의 신자로 출발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세로 1993년 교인수 70만명을 돌파하며 세계 최대의 교회로 거듭났다. '조용기'라는 이름은 20 세기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기도 했다.

― 조용기 목사, 1958년 최자실 목사집에서 창립 예배 조 목사는 신학 공부를 위해 1956년 서울에 올라와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고 최자실 목사를 만났다. 1958년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한 조 목사(당시 전도사)는 최자실 목사(당시 전도사)와 함께 5월18일 서울 대조동에 있는 집에서 최 목사의 자녀 3명과 창립예배를 진행했다.

당시 최자실 전도사는 창립예배 날 아침부터 동네를 다니며 예배를 알렸지만 예배 참석자는 밭일하다가 비를 피하려고 온 할머니 1명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달이 지나 성도가 50여명에 이르렀고 조 목사는 마당에 군용천막을 치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예배를 드렸다. 이로써 천막교회가 시작됐다. 이후 천막교회는 더 많은 성도가 모이게 됐고 가난한 성도들이 드린 헌금으로 천막을 넓혀갔다.

탈장으로 인해 지대한 조 목사는 1961년 9월 서대문 로터리에서 샘 토드 목사를 강사로 한 천막 대부흥성회에서 통역을 맡았다. 이 성회가 끝난 후 조 목사는 그 자리에 천막을 치고 제2의 개척 예배를 드리게 됐다.

― 천막교회→서대문교회 개척...1964년 신자 1만명 넘어 이후 서대문에서의 교회 개척을 결심한 조 목사는 1961년 10월15일 부흥회가 열린 장소에 순복음부흥회관을 세웠다.

조 목사는 1962년 4월26일 목사 안수를 받는다. 이에 5월13일 순복음부흥회관의 명칭이 순복음중앙교회로 바뀌고 교인은 500명을 넘었다. 1964년에는 교인이 3000명이 됐고 이후 1만명을 넘자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섰다.

조 목사는 여의도에 대지를 구입해 교회를 신축하기로 했다. 여의도는 모래벌판에, 교통편도 없어 무모한 계획이라는 반대와 비난이 쏟아졌다. 조 목사는 하나님만을 믿고 성도들과 함께 1969년 4월 성전건축을 시작했다.

1973년 9월 23일 1만 명을 수용하는 교회가 완공됐고 조 목사는 헌당 예배를 드렸다. 1973년 8월19일 현재의 여의도에서 최초의 예배가 드려졌다. 같은해 9월18일부터 22일까지 한국성도 5만명과 외국인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효창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였다.

여의도로 이전한 교회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1984년에는 40만 성도, 1992년에는 70만 명을 돌파하며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최대교회로 성장 부흥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기독교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외국에서 온 목회자들이 순복음교회의 성장비결을 배우고 돌아가 구역조직을 현지 목회에 접목시켜 엄청난 부흥을 이뤘다.

― 여의도순복음교회 세대교체...2008년 원로목사로 추대 2005년 만 7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공표했던 조 목사는 성도들의 시무 연장 요청을 수락했지만 2006년 1월 연장기간은 3년으로 하고 후임목사를 선출해 공동목회를 한 후 2009년 2월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당수 대형교회 설립자들이 담임직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과 달리 당회장을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줘 호평을 받았다.

이에 차기 담임목사 선정을 위한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후임 담임목사 후보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른 추천과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이영훈 목사가 담임목사로 선출됐다. 조용기 목사는 2008년 5월14일 원로목사로 추대됐다.조 목사는 은퇴 후 영산조용기자선재단에서 행복나눔운동을 펼쳤다. 반면 故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3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으로 기소돼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편 조용기 목사는 14일 아침 7시13분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2월 부인 고(故)김성혜 전 한세대 총장이 세상을 떠나 유족으로는 희준, 민제, 승제 세 아들이 남았다.

조 목사의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마련됐다. 조문은 15일부터 17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된다.

장례예식은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열린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장종현, 이철, 소강석 목사가 맡았다. 하관예배는 같은 날 오전 10시 경기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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