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담당 기자도 일종의 ‘직업병’이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도 곁의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줄거리를 잘 따라가는데, 제 눈에만 유독 특정 장면이 눈에 띄곤 합니다. 고증이 잘 된 영화나 드라마는 각 종교의 전례(典禮) 혹은 예법을 새롭게 배우는 계기도 되곤 하지요. 오늘은 영화와 드라마 가운데 몇 장면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미사 장면
많은 분들이 본 명작이지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도 유명하고요. 저도 30년 전에 극장에서 봤습니다. 우연히 얼마전 집에서 IPTV로 ‘시네마 천국’을 다시 보다가 ‘이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영화 앞부분, 새벽 미사에 복사(服事)를 서는 꼬마 토토가 조는 장면입니다.
종(鐘)을 울려야 할 때도 놓치고 정신 없이 졸지요. 신부님은 성체 성사를 준비하다가 “참 정말 대책없는 녀석”이라며 탄식하시지요. 미사 후에도 제의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종을 아무 때나 치면 기도문이 헷갈려”라며 야단치시지요.
제 눈에 들어온 장면은 토토와 신부님이 서있는 방향입니다. 영화에서 신부님과 토토는 신자석을 등지고 제대를 향해 서있습니다. 신부님은 제대를 향해 성체(밀떡)를 들고 축성하지요. 이 장면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의 미사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가톨릭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이룬 계기로 평가받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사제들은 신자석을 등지고 제대를 향해 미사를 드렸습니다. 미사 때 쓴 언어는 라틴어였고요. 지금도 일부 보수적인 수도회에서는 여전히 제대를 향해 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이제 사제가 신자를 마주보고 미사를 드리지요. 또 미사 진행도 라틴어가 아니라 각국 언어로 말하고요.
저도 종교를 담당하면서 책이나 문헌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 알게 됐지만 실제로 과거의 미사 모습을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시네마 천국’에서 우연히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시네마 천국’의 시대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입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이탈리아였으니 고증은 잘 됐다고 봐야겠지요. 덕택에 저에겐 ‘시네마 천국’의 미사 장면은 과거의 미사 장면을 묘사한 다큐처럼 반가웠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사제들이 신자와 마주 보고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고 좋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대부 1’의 세례 장면
영화 ‘대부’도 최근에 TV로 다시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마지막 부분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가 조카 세례성사(세례식)에 대부(代父)로 참석한 장면이 새로웠습니다. 이 역시 유명한 장면이지요. 라틴어로 세례식을 진행하던 사제는 영어로 마이클에게 “창조주를 믿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등을 묻고 이어 “사탄을 멀리합니까?” “사탄의 일도 멀리합니까?” “사탄의 영화(榮華)도 멀리합니까?”라고 묻지요. 그때마다 마이클은 “멀리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각각의 질문과 대답 사이사이엔 차례차례 살인이 벌어집니다. 라이벌 마피아 보스를 제거하기 위해 마이클이 지시한 살인이지요. 그리스도교에서 세례식은 자신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감독은 그 이전까지 모범생이었던 마이클이 잔혹한 마피아 대부로 변신하는 과정을 세례식과 살인을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극적으로 대비시킵니다. 당시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장면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성스러운 세례 성사와 잔혹한 살인 장면을 교차하다니요. 아마도 코폴라 감독은 그런 충격적 효과를 위해서 이런 장면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세례식 장면을 썼지만 실제 세례식에서도 위와 같은 문답은 오갑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순서와는 달리 ‘마귀와 죄를 끊어 버림’이 먼저이고 그 후에 ‘신앙 고백’을 합니다. 먼저 ‘마귀와 죄를 끊어 버림’에서는 주례자가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죄의 뿌리인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라고 묻고 세례 받는 이들은 각각 “예, 끊어 버립니다”라고 답합니다.
◇드라마 ‘슈티셀가 사람들’의 ‘메주자’
최근에 본 넷플릭스 드라마 ‘슈티셀가 사람들’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정통 유대교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랍비 집안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통 유대교인들이 자신들의 전통과 현대 문명사회와 세속적 삶 사이에서 겪는 애환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드라마이지요. ‘유대인과 개가 함께 있다면 둘 중의 하나다. 유대인이 아니거나 개가 아니거나’ 같은 유대인 격언도 알게 되는 드라마이지요.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개를 불결한 동물로 여겼다지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장면 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문설주에 손을 대고 그 손을 입에 가져다 키스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남녀노소 예외가 없더군요. 그들이 손을 대는 문설주에는 작은 직사각형 플라스틱 케이스 같은 것이 붙어있었고요.
이스라엘에서 10년 이상 유학하며 체류했던 장재일 목사님께 여쭸습니다. 장 목사님은 “문설주에 붙은 작은 케이스 안에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는 신명기6장 4~5장의 쉐마(shema) 구절이 들어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이 쉐마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라는 명령에 따라 모든 문설주에 붙이고 출입할 때마다 손으로 터치하고 입맞춘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쉐마 구절을 넣은 이 작은 상자는 ‘메주자(mezuza)’라고 부른답니다. 실제 구글에 ‘mezuza’를 입력하니 갖가지 모양의 메주자가 수없이 나옵니다. 집안에서도 모든 방마다 문설주엔 메주자가 붙어있는데 없는 곳은 딱 한 군데라고 합니다. 바로 화장실이랍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또 남성들이 예배를 드릴 때 미간(이마)과 손목에 성구함을 끈으로 고정한 모습도 등장합니다. 이것은 테플린(tefillin)이라고 하는데 이 안에도 역시 쉐마 구절이 들어 있답니다. 그래서 모두 이 신명기의 명령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지요.
이 드라마에서 또 한가지 눈에 띈 점은 철저한 ‘식사 기도’였습니다. 이들은 정식으로 음식을 차린 식사는 물론 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짧게라도 기도하더군요. 장재일 목사님은 “정통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로 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메주자’나 ‘테플린’ 그리고 ‘식사 기도’가 때론 형식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형식이 없어지면 내용조차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통 유대교인들이 왜 그렇게 전통을 고수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