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미세먼지 때문에 거리 풍경을 제대로 살피기도 어려운 요즘이지만 거리 곳곳엔 오색 연등이 걸려 있습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도 대형 조형등이 불을 밝히고 있지요. 다음주(5월 19일)로 다가온 부처님오신날(불교계에선 부처님오신날 여섯 글자를 다 붙여서 씁니다)을 봉축하는 등입니다. 시청광장 조형등과 거리의 연등은 5월말까지 불을 밝히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처님오신날을 음력 4월 8일에 경축합니다. 그래서 과거엔 ‘사월초파일’ 혹은 그냥 ‘초파일’이라고도 불렀지요. 그런데 부처님 생일을 음력 4월 8일로 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대만 정도 밖에 없다고 합니다. 남방불교는 음력 4월 보름을 부처님 탄신일로 삼아 ‘베삭(Vesak) 데이’라고 부른답니다. 인도,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등 다수의 동남아 국가의 불자들은 4월 보름에 부처님 탄신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베삭 데이가 되면 물[水] 축제 등 다양한 축제를 펼친다고 합니다. 올해의 경우는 5월 26일이 베삭 데이입니다. 대승불교의 부처님오신날과는 꼭 1주일 차이가 납니다. 한국에서 부처님 4대 명절로 ‘성도재일’(깨달은 날·음력 12월 8일) ‘출가재일’(음력 2월 8일) ‘열반재일’(음력 2월 15일)과 부처님오신날을 각각 따로 기념하지만, 남방불교에서는 ‘베삭 데이’ 하루에 모든 축일을 모아 한꺼번에 기념한다고 합니다.
베삭 데이가 음력 4월 보름으로 정해진 것도 역사가 있습니다.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우의회(WFB) 총회에선 양력 5월 15일을 베삭 데이로 정했답니다. 그러다 1998년 음력 4월 보름으로 바꿨다고 하지요. 1999년엔 유엔이 음력 4월 15일을 공식 ‘유엔 베삭 데이’로 지정했습니다. 대승불교권의 음력 4월 8일 대신에 말이지요.
특이한 점은 일본의 경우, 양력 4월 8일을 부처님 생신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래 일본 불교 역시 음력 4월 8일이 부처님오신날이었답니다. 그런데 1860년대 메이지유신부터 양력을 기준으로 바꾸면서 부처님오신날도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꿨다고 하지요. 명칭도 ‘꽃 축제(하나마츠리)’랍니다. 4월초면 벚꽃 등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하니 계절에 맞춰 축제일로 삼고 이날은 불단에 꽃을 바친다고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은 김에 ‘불기(佛紀)’의 기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기(西紀)는 예수님의 탄생에 맞춰 계산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불기’는 부처님이 탄생한 해가 아니라 열반에 든 때부터 계산합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열반에 듦으로 인해 수행과 깨달음이 완성됐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거 인도에서부터 ‘불멸(佛滅) 1년, 2년’ 등의 표현을 썼다고 하네요. 이런 전통 때문에 ‘불기’는 부처님 열반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불기의 기준점 역시 1956년 WFB 총회에서 BC 544년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불기 2565년입니다. 지난번 원불교의 ‘원기(圓紀)’ 기준이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날부터 계산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각 종교들은 이처럼 기원을 보는 방식도 차이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을 든 불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행진하며 축제를 벌이는 풍습도 한국만의 독특한 풍경입니다. 신라 때 시작해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연등회를 열었다고 하지요. 억불숭유의 조선시대엔 잠잠했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다시 성대한 축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보는 연등회와 같은 거리행진 축제는 1970년대 들어서 시작됐습니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고 이듬해 여의도광장(과거 이름은 5·16광장)에서 불자들이 운집해 조계사까지 연등행렬이 행진하며 축제를 열었지요. 이후 1996년부터 장소를 동대문으로 옮겨 조계사까지 거리 행진을 하고 있지요. 연등 행렬은 코로나 이전엔 길가의 시민까지 포함하면 수십만에 이르러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때는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 종단 구분 없이 참여해 갖가지 모양의 등을 선보이는 경연장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상은 물론 학, 코끼리, 사천왕 등의 모양으로 만든 등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퍼레이드를 펼치는 광경은 외국인들에게도 큰 볼거리를 제공했지요. 덕택에 연등회 때가 되면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 수십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유물에 머물지 않고 현재까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축제라는 성격은 국내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12년 국가무형문화화재로 지정된 데 이어 2020년 12월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됐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요.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해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했으나 코로나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올해 행사는 대폭 축소됐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등행렬 거리 행진은 취소했습니다. 대신 청계천 전통등전시회(5월 7~21일), 봉은사 전통등전시회(5월 23일까지) 등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겠습니다. 온라인 행사도 다양합니다. 연등회 홈페이지(www.연등회.kr)엔 이런 행사 참여 방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도 직접 사찰을 찾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네요. 법정 스님이 1980년대에 부처님오신날과 관련해 쓴 글이 다소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2500년 전 역사적인 인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형적인 구도자였다. 그는 절대자도 아니고 불가사의한 권능을 지닌 신적인 존재도 아니었다. 자기 존재를 철저히 자각한 ‘눈뜬 사람’이었다. 대비원력을 지니고 보편적인 진리를 구현한 선지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한낱 예경(禮敬)의 대상으로 우상화될 수 없는 분이다.”
눈 뜨고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