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용재상을 받은 유동식 박사는 “하나님이 오래 살려주시다 보니 이런 귀한 상도 받게 됐다”며 “상금(3000만원)은 재직했던 연세대 신과대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하나님이 오래 살려주시니 이런 분에 넘는 상까지 받게 되네요. 이 나이까지 살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말입니다.”

전 연세대 신학과 교수 유동식(99) 박사가 올해 용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용재상은 연세대 초대 총장인 백낙준(1895~1985) 박사를 기려 연세대가 1995년 제정했다. 유 박사는 올해로 27회째인 용재상의 최고령 수상자다. 유 박사는 요즘으로 치면 이과인 수물과(수학물리학)로 연희전문에 입학해 윤동주 시인과 기숙사 생활을 같이했다. 연희전문 재학 중 백낙준 박사의 딸에게 수학을 가르친 인연도 있다.

유 박사는 한국인의 고유 심성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분석한 ‘풍류 신학’의 개척자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자택에서 만난 유 박사는 “풍류 신학을 주창하게 된 것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용재상 수상자로 선정된 원로 신학자 유동식 박사. /박상훈 기자

1922년 황해도의 3대째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미국 유학을 거치며 ‘우리는 뭐냐’에 대한 갈망이 컸다고 했다. ‘왜정(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차별하고 미국 유학 시절엔 ‘기독교는 미국 종교인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귀국 후 삼국사기를 읽다가 최치원의 ‘풍류도’를 접하고 ‘이거다’ 싶었다. 유불선(儒佛仙)을 통합한 ‘풍류도’는 한국인 고유의 심성(유 박사는 ‘마음의 버릇’으로 표현)이며 이런 바탕에 기독교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기에 우리보다 먼저 기독교를 접한 중국·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만 기독교가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특히 ‘왜정’ 시절 민족적 차별에 대한 울분과 절망감이 우리 고유의 심성을 찾는 동력이 됐다고 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유학 중이던 그는 학병으로 끌려갔다. 배치받은 곳은 가고시마 해안 부대. 미군이 상륙하면 각자 지뢰 하나씩 안고 육탄 돌격하는 것이 임무였다. 중학교도 안 나온 일본인이 대학 다니다 온 유 박사를 때리곤 했다. 죽음은 항상 눈앞에 있었다. 전쟁 말기 상급 부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낙하산에 매달린 폭탄이 떨어지면 만사 제쳐두고 깊은 데로 들어가라.’ 며칠 후 또 다른 명령이 떨어졌다. ‘내일 오전 10시 모든 장병은 정복을 입고 정위치하고 방송을 경청하라.’ 아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항복 선언이었다. 그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젠 거름통 지고 평생을 살아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체험(原體驗)’이란 말이 있죠? 제겐 8·15 해방이 원체험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2020년 1월 초 연세대교회에서 설교한 유동식 박사. /김한수 기자

그는 “왜정 때 그 압박 속에 어떻게 살았나 싶다”며 “요즘 친일파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조상이나 친척 중에 창씨개명한 사람 없냐고 묻고 싶어요. 그땐 창씨개명하지 않으면 출생신고도 못했어요. 모든 공무(公務)를 할 수 없었죠. 유(柳)씨와 임(林)씨만 예외였습니다. 일본 성(姓)에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죠. 요즘 보니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친일파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그런 레벨의 사람을 중용한 것이 문재인 정권의 레벨입니다. 여러 정권 봐왔지만 제일 못났어요.”

그럼에도 유 박사는 항상 희망을 이야기한다. 특히 예술 분야에 대한 희망이 크다. “지금 싸이, 기생충,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휩쓸지만 왜정 때도 우리 민족이 앞장선 것은 예술이었어요. (무용가) 최승희 하나가 다했지. ”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100년을 살아온 느낌은 어떨까. “원대하고 구체적인 목표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 경험으로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 봐도 수물(수학물리)에서 신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도, 태평양전쟁에서 살아온 것도, 조부모·부모님 모두 환갑 지나고 돌아가셨는데 저는 백 살 가까이 살아있는 것도.” /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