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을 지낸 이문희(李文熙·86) 대주교가 14일 오전 1시 20분 선종(善終)했다. 이 대주교는 1986년부터 2007년까지 21년간 제8대 대구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교구 내 본당(성당) 67개를 신설하는 등 오늘날 대구대교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대주교는 경북고와 경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사제의 꿈을 안고 프랑스로 유학해 리옹대와 파리가톨릭대에서 수학했으며 1965년 사제가 됐다. 이 대주교의 부친은 6·7대 국회의장을 지낸 정치인 이효상씨다.
대구 동촌성당 주임, 청주교구청, 군종신부, 대구대교구청에 근무한 후 1972년 대구대교구 보좌주교, 1986년 대구대교구장 대주교에 임명됐다. 이 대주교는 교구장 시절 소탈하게 사제·수도자·신자들을 대하면서 신심운동 등을 통해 전교(傳敎)에 앞장섰다. 2020년 6월 현재 대구대교구 내 성당 수는 164개로 이 대주교 재임 21년간 설립된 성당 67개는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1993~96년),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장(1996~99, 2005~07년) 등을 지냈으며 2007년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원로 주교가 됐다. 은퇴 당시 그는 만 72세로 교구장 은퇴 정년(75세)에 이르지 않았으나 식도암이 발병하자 조기 사임했다.
이 대주교는 2008년 암 수술 후에는 호스피스 봉사 활동과 영적 묵상을 담은 시집(詩集)으로 신자들과 만났다. 그는 시집 ‘저녁 노을에 햇빛이’에서 암 투병 과정의 고통을 통해 묵상한 삶과 죽음, 순교, 하느님의 섭리를 노래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투병 과정에서) 내 믿음이 이렇게 약하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이토록 절실히 느끼지는 못했다”며 “하느님이 원하신다면 순교자들처럼 고통을 참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빈소는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 미사는 17일 오전 10시 30분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구대교구는 홈페이지에 이 대주교의 선종 사실을 알리며 화환과 조의금은 받지 않으며 기도로 대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