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종교교회 최이우 담임목사님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평소 인상이 단아하고 학구적인 분입니다. 이전에 뵐 때에도 주로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눴죠. 그날도 식사 자리로 향하면서 속으로 ‘좀 묵직한 자리가 되겠군’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입견이 깨진 것은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비결은 ‘군대 이야기’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군종 장교로 군복무를 했다고 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학생회장도 지내며 ‘문제 학생’으로 찍혔던 목사님은 어렵사리 군종 장교가 됐지만 ‘험한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습니다. 귀가 쫑긋해졌지요. 저 역시 지금도 ‘험한 곳’으로 꼽히는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했냈거든요. ‘혹시?’ 여쭸더니 ‘역시’였습니다. 저와 같은 지역, 같은 사단에서 근무하셨더군요. 물론 군생활 기간은 겹치지 않았고, 목사님은 장교였고 저는 사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부터 대화는 일사천리, 오로지 군대 이야기였습니다. 식사하는 1시간반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최 목사님은 군목(軍牧) 시절에 대해 매우 뜻깊은 기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방 1년이 지난 후 후방 근무 기회가 생겼지만 “여기서 전역하고 싶다”고 자원해 결국 그 지역에서만 근무했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군대 이야기는 성속(聖俗)의 울타리를 단번에 무너뜨릴 정도의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2016년 여름 논산훈련소에서 열린 훈련병 단체 침례식. 각 종교에서는 군대를 '선교와 포교의 황금어장'으로 부른다. /극동방송 제공
2012년 논산훈련소에서 열린 불교 합동수계식/조계종 군종교구 제공
2019년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등이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 장병을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있다. /천주교 군종교구 제공

얼핏 ‘군(軍)’과 ‘종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군과 종교 사이엔 끈끈한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 종교에선 군부대를 ‘선교·포교의 보고(寶庫)·황금어장’으로 부르지만, 사병들의 관심은 딴 데 있었지요. 군복무를 마친 분들이라면 일요일 오전의 기억이 떠오르실 겁니다. 입대 전 종교가 없는 이들은 어느 종교 행사가 ‘잠 자기 좋은가’를 따졌지요. 천주교는 미사 도중에 자꾸 일어서라 앉으라 하고, 개신교는 찬송가 소리 때문에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불교 법회가 취침엔 가장 좋다는 식이었지요.

군종병과 마크
각 종교별 육군 군종병과 마크. 위로부터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마크.

◇천주교 원불교 군종장교는 군대 두 번 입대

성직자들은 군종장교의 추억을 떠올리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한국의 군종장교 제도는 1951년 6·25 전쟁 와중에 개신교 목사와 천주교 신부로 시작됐습니다. 1968년 월남전 당시 불교가 추가됐고, 2007년 원불교가 합류했지요. 현재 개신교 목사[軍牧] 260여명, 불교 스님[軍法師] 130여명, 천주교 신부 90여명, 원불교 교무 3명 등이 군종장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는 각각 군종 교구(敎區)를 두고 있기도 하지요. 육군, 해군, 공군별로 최고 상위 계급은 대령 군종감(軍宗監)입니다. 각 종교별 군종 장교 숫자의 차이가 있다보니 군종감은 개신교가 두 번 맡을 때 불교와 천주교는 사이사이에 한번씩 맡는다고 합니다. 군종 장교들은 평소엔 군복을 입고 근무하다가 종교행사가 있을 때는 각 종교별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군종장교의 조건은 4년제 대학을 마친 성직자 중에 각 종교가 추천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선발합니다. 같은 군종 장교라 해도 종교별 차이는 있습니다. 개신교와 불교는 대부분 신학교와 동국대·중앙승가대 등을 졸업하고 입대해 군 복무를 겸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부와 원불교의 남성 교무는 이른바 ‘군대 2번 가는 사람들’입니다. 천주교는 대부분 신학교 2학년을 마치면 일제히 군대를 보냅니다. 면제 혹은 단기 복무 대상자도 일단 휴학합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제로 서품됩니다. 원불교는 불교, 개신교와 달리 대학교 재학 중의 후보생 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성직자(교무) 생활을 하다 군종 장교로 임관합니다. 과거 만난 한 신부님은 두번째 군대, 즉 군종장교를 해병대로 가서 장기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해당 교구 몫으로 ‘할당’된 자리를 주교로부터 ‘지명’ 받아 ‘순명’하고 또 군대에 간 것이지요. 천주교 사제들은 동기끼리 제비뽑기를 해서 다시 입대할 사람을 정하기도 한다지요. 제일 나중에 군종장교에 합류한 원불교는 현재 5호 장교까지 나왔습니다. 2호 군종 장교였던 조경원 교무는 사병으로 강원도 최전방 육군 7사단에 근무했는데, 군종장교로 선발돼 다시 7사단에서 3년, 육군사관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고 전역했답니다. 사병으로 근무한 부대에 장교로 다시 갈 때 심정을 어땠을까요?

◇“군종장교 경험이 성직자로서 자세 다잡는 계기 됐다”

왼쪽부터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 세 종교인 모두 군종장교로 복무하면서 성직자로서 정체성과 사명감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조선일보DB

일반인들도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의 악몽(惡夢) 1순위가 ‘군대 다시 가는 꿈’이라고 할 정도이지만 성직자 가운데에는 군종장교 경험이 ‘성직자 인생 전환점’이 됐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경기 성남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 같은 분이 대표적이지요. 유 목사님은 1984년 4월 24일이 진정으로 회심한 날로 기억합니다. 유 목사님이 군목 장교 후보생 훈련 중 고관절이 골절되는 중상을 당했던 때입니다. 군의관으로부터 “평생 장애인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좌절해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지요. 그러다 다음날 문득 “지금까지 모범생이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다”는 자각이 들었답니다. 그 순간 “낫게 해달라”던 기도를 “다리를 바치겠다”고 바꿨다고 합니다.

현재 천주교 의정부교구장인 이기헌 주교님은 2018년 펴낸 ‘함께 울어주는 이’라는 책에서 군종 신부 시절, 사제로서 정체성을 다잡았노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군종 신부로 생활하던 시절 “밤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소주 한잔 마시고 사제관에 돌아오던 그는 성당에 들어가 무릎 꿇고 “예수님 정말 힘듭니다”라고 호소했다지요. 그렇게 밤새 기도 드리고 나올 무렵 ‘언제라도 힘들 때는 나에게 오너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일을 겪으며 사제들에게 외로움이란 참으로 의미 있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게 해주는 큰 선물이라고 느꼈답니다.

지난주엔 불교 조계종 군종교구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계룡대에 짓는 군법당 홍제사 착공식을 알리기 위한 자리였죠. 이 자리를 주재한 군종교구장 혜자 스님은 군 훈련병들에겐 산타클로스 같은 분입니다. 2006년 가을부터 ’108산사(山寺) 순례'를 이끌면서 10여년간 전국의 군장병들에게 초코파이 430만개를 나눠줬거든요. 시작은 2007년 2월 논산 관촉사 순례였습니다. 인근에 논산훈련소가 있는 것에 착안해 순례단 신도들에게 초코파이를 보시하면 좋겠다고 알렸더니 보살님(여성신도)들이 병사들의 할머니, 어머니가 된 심정으로 배낭에 초코파이 한 상자씩 가져온 것이죠. 당시 저도 현장 취재했는데, 과장을 좀 보태면 순식간에 초코파이가 산을 이뤘습니다. 이후로도 순례단은 다른 지역 사찰로 순례 갈 때에도 초코파이를 보시했습니다.

2007년 2월 논산 관촉사를 찾은 108산사 순례단이 초코파이를 모으고 있다. 혜자 스님은 10년 넘게 430만개의 초코파이를 군장병들에게 전달했다. 이런 인연 덕분인지 혜자 스님은 조계종 군종교구장을 맡고 있다. /조계종 군종교구 제공

◇군종장교들의 가장 큰 숙제는 병사들 졸지 않게 하기

이날 김 법사는 군 장병들의 종교생활의 흥미로운 변화도 전했습니다. 과거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후임병사들의 일요일 종교활동 참여율은 매우 높았습니다. 종교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귀찮은 작업을 할 때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일과 후 휴식이 보장된 요즘은 병사들의 종교행사 참여율이 50% 미만이라고 합니다. 일반 사회의 종교인구와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군종 장교들의 ‘숙제’는 여전하다고 합니다. 그 숙제란 장병들이 졸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