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벨 선교사 100주기를 공동으로 준비하는 '자녀 교회와 학교' 목회자들. 왼쪽부터 전병식 배화여대 교목실장, 이현식 배화여대 이사장, 최이우 종교교회 목사, 차재일 광희문교회 목사, 홍용표 자교교회 목사. /김지호 기자

“저희는 모두 ‘도심 속 시골교회’입니다. 캠벨(1852~1920) 선교사님의 선교 방향과 닮았지요.”

최근 서울 종교교회에 모인 최이우(종교교회) 홍용표(자교교회) 차재일(광희문교회) 목사와 배화여대 이현식 이사장(진관교회 목사), 전병식 목사(교목실장)는 입을 모았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올해로 서거 100주년을 맞는 캠벨 선교사 기념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함께하지 못했지만 수표교교회(김진홍 목사)까지 학교 1곳·교회 4곳은 캠벨기념사업회를 구성해 기념 행사를 공동으로 마련한다. 한국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은 혼자 여러 교회를 설립하곤 했지만 ‘자녀 교회’들이 선교사의 업적을 공동으로 현양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강(姜) 부인’ 혹은 ‘강 모인(慕仁)’으로 불린 캠벨 선교사는 미국 남(南)감리회가 한국에 파송한 대표적 여성 선교사. 일찍 남편·자녀와 사별한 캠벨 선교사는 1886년부터 10년간 중국 선교사 생활을 거쳐 1897년 만 45세 나이로 한국에 왔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1898년 5월 경복궁 근처 자골에서 여학생 3명, 남학생 2명으로 매일학교(day school)를 시작했고 그해 10월에는 여학생 10명으로 기숙학교를 열었다. 배화여고와 배화여대의 시작이었다.

이 학교를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가 종교교회와 자교교회. 두 교회는 ‘일란성 쌍둥이’로 불린다. 두 교회가 배화학당에서 ‘독립’하게 된 것은 여학교에서 여성 위주로 예배를 드리던 중 남성 교인이 늘어나자 따로 예배처를 마련한 것이 시작이다. 수표교교회와 광희문교회는 캠벨 선교사가 세우지는 않았지만 여성 사역을 담당했던 교회. 캠벨 선교사는 이렇게 한국 교회의 리더, 특히 여성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다 1920년 11월 12일 68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운명해 종교교회에서 장례를 치른 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안장됐다. 캠벨 선교사와 같은 시기 활동했던 저다인 선교사는 “그(캠벨 선교사)가 세운 학교, 그가 출석하는 교회, 그가 관리하는 전도부인들이 나름대로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강부인 학교’ ‘강부인 교회’ ‘강부인 전도부인’으로 불렀다”고 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념 사업을 함께하는 네 교회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교회 이름에 공통으로 ‘다리 교(橋)’자가 들어간다. 광희문교회도 옛 이름은 ‘청녕교 교회’였다. 또 여성 선교사가 세우고 사역한 영향 때문인지 전통적으로 여성 장로의 수가 3분의 1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닮았다. 종교교회는 전체 장로 70명 중 여성이 18명에 이른다. 이 교회들 목회자들은 “교회 이름에 다리[橋]가 들어간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고 했다. 하늘과 땅, 너와 나, 예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뜻이 담겼다는 것. ‘도심 속 시골교회’라고 스스로 붙인 별칭에서 보듯 위치는 사직로, 자하문로 등 도심에 있지만 교인들이 대(代)를 이어가며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소박하게 신앙의 본질을 지켜가고 있다고 목사들은 말했다.

기념 사업은 학술제, 추모 예배 등으로 이어진다. 학술제는 캠벨 선교사 기일인 12일 오전 10시부터 배화여대 캠벨홀에서 열린다.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기조 강연을 하고 황미숙 박사와 권지영 목사가 각각 교육 사업과 선교 사역에 대해 발제한다. 추모 예배는 15일 오후 5시 종교교회 본당에서 네 교회가 주축이 돼 열린다. 기념사업회는 전기 발간과 훈장 추서도 추진할 예정이다.

최이우 목사는 “캠벨 선교사의 희생적 헌신은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요한복음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며 “그를 닮은 사람들이 계속 배출됨으로써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