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팬데믹 패닉' 책을 출간한 슬로베니아 출신 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화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영상이다.

“뉴노멀 시대엔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장미빛 미래를 밝혀줄 비전이 아니라 재난 자본주의의 해독제로 쓰일 ‘재난 공산주의’ 전망에 더 가깝다.”

²‘철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는 슬로베니아 출신 스타 학자 슬라보예 지젝(71) 류블랴나 대학 선임연구원은 몸이 좋지 않다며 침대의 꽃무늬 베개에 기대 연신 콧물을 훔치고 눈을 비볐다. 지난 10일 화상 앱 줌으로 그를 만났다.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전화나 화상 인터뷰를 제안했다. 백내장 수술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글을 읽는 게 힘들다고 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지젝은 지난 7월 출간한 ‘팬데믹 패닉’(북하우스)에서 “국가가 훨씬 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 마스크, 진단키트, 산소호흡기같이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들의 생산을 조정하고, 호텔과 다른 휴양지들을 고립시키며 이번에 실직한 모든 사람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수행해야 함은 물론, 이 모든 일을 시장 메커니즘을 버려가며 해야 한다”고 썼다.

-여러 분야에서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려스럽게도 ‘뉴노멀’이라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과학자들도 전망하지 못한다. 문자 그대로 ‘내전(civil war)’ 같은 거라고나 할까. 오늘날 전 세계에서 ‘무엇이 뉴노멀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는 거대한 정치적 투쟁이라 생각한다. 포퓰리스트 보수주의자들은 ‘뉴 노멀’에선 우리 중 누군가는 바이러스로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잔혹한 일이다. 빌 게이츠와 같은 디지털 테크노크라트(과학기술전문가)들은 ‘뉴 노멀’에선 훨씬 더 급진적인 디지털화가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 머무르면서도 디지털로 커뮤니케이션하게 하는 기술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러한 기술중심주의적 전망도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누군가는 격리가 가능하지만, 그들을 위해 음식과 물품을 배달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몇몇 나라에서 세번째 버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한국, 중국, 대만, 호주, 베트남, 뉴질랜드처럼 이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완전한 연대(full solidarity)가 가능한 곳 말이다.”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나.

“'뉴 노멀리티'에 관한 이슈는 철학적으로도 매우 심각하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매우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급진적으로 변해야 한다. ‘인간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비교적 운이 좋다. 그렇지만 라틴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서유럽은 공포에 질려 있다. 격리가 다시 시작되었고 끝날 기미가 없다. 사람들은 아직도 ‘올드 노멀리티(old normality)’가 돌아올 일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 단지 이 에피데믹(epidemic·전염병)이 영속될 것이라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에피데믹이 닥쳐 올 것며 다른 위기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불 같은 것이 한 예다. ‘어떤 상태’의 휴머니티에 대한 이슈는 끝났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era)에 들어서고 있다.”

/북하우스 최근 출간된 지젝의 '팬데믹 패닉'.

-산업혁명 이후 환경을 파괴하고 이윤만을 추구해온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전망도 있다. 확고한 견해가 있을 것 같은데.

“세부적인 답변은 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빌 게이츠처럼 지적인 기업인조차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자본주의는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훨씬 강한 국가, 훨씬 강한 국제적 협력, 훨씬 높은 강도의 지역적 인력 동원(mobilization)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통상의 시장 메커니즘으로 전염병과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의약품과 의료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며, 시장은 그에 대한 답을 공급할 것이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 번 보라. 미국조차도 완전히 반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주고 있다. 매우 도발적이지만, 나는 이를 ‘새로운 공산주의’라 명명한다. 북한이나 중국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나는 우리가 경제를 사회화하거나 정치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데믹에 맞서 백신이 나왔을 때, 이것이 시장 논리로 공급된다면 그건 휴머니즘이 아니다. 나는 거대한 중앙집권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다.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며 지역 커뮤니티가 움직여야 한다. 다들 팬데믹 사태에 중국이 잘 대응했다고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대만이 훨씬 잘했다. 대만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대만의 방식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길게 볼 때 경제적으로도 이게 최선이다.”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판옵티콘적인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안이 나오고 있다. 큰 정부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내가 뉴스를 제대로 본 게 맞다면 한국에서는 누군가 확진되면 그 사람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더 이상 추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는 ‘만일 확진되면 사람들과 모이지 말 것이며, 집에 머무르며, 의사에게 가라’고만 말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통지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사람들이 구(舊) 공산주의의 통제 상태를 기억한다. 그 때문에 자유에 대한 그릇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매우 슬픈 일이다. 인구 200만명 국가에서 거의 매일 100명 가까이 확진되는데도 확진자들이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명단을 국가에 제공하길 거부한다. 통제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업이다. 이러한 통제는 사람들이 국가를 믿고, 동원이 가능할 때 가능하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이렇게 강한 방식의 규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구소련에서처럼 국가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주어지고 국가가 이를 악용해 사망자 숫자 등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투명하게 움직여야 통제가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반정부 시위를 막기도 한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슬로베니아에서도 정부가 코로나 위기를 반정부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핑계로 이용한다. 공산주의자들이나 ‘큰 국가’가 일부러 코로나 위기를 부풀리고 있다는 오래된 음모이론도 일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국가의 그런 통제가 진짜 위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우리 일상에 스민 디지털 통제다. 이는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에선 비밀 경찰이 전화와 이메일을 검열한다. 이스라엘 친구는 자기나라에서도 20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코로나 방역을 위한 물리적 통제로 자유를 위협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위선적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바이러스 확산을 제한하기 위한 비교적 간단한 통제다. 당신이 누구랑 사는지, 누구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같은 사적인 세부 정보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확진자 접촉 여부를 알고 싶다. 이처럼 제한된 정보를 국가에 제공하는 건 두렵지 않다. 훨씬 무서운 것은 이메일과 인터넷 개인 정보를 통해 내가 뭘 사고, 어떤 음악을 듣고, 뭘 읽는지에 대해 검열당하는 것이다. 이미 수십년간 비밀스럽게 이런 일들이 진행돼 왔다. 공포스럽다.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친구들도 내게 컴퓨터와 이메일이 공권력에 완전히 노출돼 있으니 조심하라 경고해 왔다. 이는 중국보다 미국에서 자유에 더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어쨌든 평범한 사람들도 국가에 의해 감시받는다는 걸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환상이 없다.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당신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느낄 때 닥쳐온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읽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읽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통제받고 있는 것이다.”

-20세기까지 인간의 문명은 접촉과 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간 문명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인간 역사에서 지금까지 정말로 급진적인 변화는 두 번 있었다. 첫번째가 신석기혁명인데 이를 통해 정착 농경과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 두번째 변화인 산업혁명은 정치적이진 않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다. 시장지배적인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연 두번째 시대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전지구적인 환경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그렇다. 홍콩, 터키 등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고 있다. 앞으로는 디지털 전체주의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물리적으로 격리되어있으면서 우리는 디지털 메커니즘에 의해 어느 때보다 더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영적 고독은 확보받지 못한다. 진정으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 나는 더 혼자 있고 싶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느낀다. 비극적인 시대가 다가왔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매우 정치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 의료적 위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할 때가 이미 왔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재의 자본주의가 이미 급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기억하라. 두 달 전, 우리는 영국과 미국이 전대 미문의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배웠다. 실업률은 높은데 주식은 가파르게 올랐다. 경제는 전면적 위기에 처했는데 주식 시장은 활황이라니 이건 역설이다. 더 이상 시장이 생산성을 증명하며 기업이 잘 되어 이익이 많으면 주가가 올라가는 구 자본주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식시장이 실제 경제적 생산성과는 괴리되어 있는 시대, 투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우리가 알던 방식의 자본주의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대중문화 분야의 예를 들자면 넷플릭스는 거의 ‘포스트 자본주의’ 기업이다. 수백 개의 영화를 만들면서 돈을 잃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새로운 시리즈를 항상 만들면서 아직도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알던 방식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같은 방식으로 체제를 나누지만 이미 자본주의는 뭔가 새로운 것, 다른 것으로 변하고 있다. 나를 공산주의자라 비난하지 마라. 진정한 폭력은 신보수주의다. 혁신을 공격하지 마라. 도널드 트럼프라는 대단한 혁명이 저기 있지 않은가. 하하! 신보수주의가 진정한 급진적 혁명이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는 일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의 질적 저하 문제도 나오고 있다.

“줌 에듀케이션이 팬데믹의 가장 큰 재앙 중 하나다. 코로나 상황에서 정통 교육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 줌이 기능하는 방식은 교육의 종말에 불과하다. 이것이 진정한 재앙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사회적 위기로 대두되고 있다. 어린이와 10대들의 정서가 파괴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 적합한 교육의 장을 아직 찾지 못했다. 좀 더 기술이 발전한다면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정도가 대면하는 포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는 아마도 많은 젊은이들을 잃게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은 사회적 대면의 예의, 책임, 친구를 어떻게 대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이 유예됐다는 것이 끔찍하다.”

/북하우스 철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 슬라보예 지젝.

-코로나 이후 당신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유일한 변화는 더 이상 여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낙원은 학회차 해외로 떠났는데 뭔가 착오가 생겨 회의가 다 취소되고 혼자 외국 대도시에 3~4일 있게 되는데 아무도 내가 거기 있는 걸 모르고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다. 어딘가 혼자 있으면서 자고 읽고 영화보고 글 쓰는 것.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걸 전혀 못하고 있다. 2월 중순 이후 여행하지 못했고 항상 여기 있다. 폐소공포증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너무 혼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혼자 있지 못해서다. 항상 여기 있으면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데 좀 사라져버리고 싶다. 그게 코로나가 내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이다. 일할 시간이 생겨서 미친 것 처럼 일해 두 권의 책을 마쳤다. 내가 저녁 외출을 즐기는 사교적인 부류의 사람이 절대 아니라서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 자유롭고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런던, 뉴욕, 서울, 같은 대도시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때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남들이 보기에 괴상한 취향이라 할 수도 있다. 내가 서울서 좋아하는 곳은 물론 강남이지만 그 중에서도 거리의 작은 음식점들을 좋아한다. 아마 서울의 식당들은 살아남으리라 생각하지만, 런던과 뉴욕 중심가는 예전같지 않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사람들은 도심에서 교외로 이주했다. 수백, 수천 개의 작은 카페테리아들이 문을 닫았다. 그들은 결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크고 붐비는 도시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강남의 레스토랑에서 혼자 일하는 것이 군중 속에서 혼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나는 혼자가 되기 더 어렵기 때문에 덜 붐비는 도시를 무서워한다.”

-혼자 사나?

“아니. 아내와 함께 산다. 그렇지만 아내는 저녁 내내 나가 있는 걸 좋아한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두 아들은 독립했다. 관계가 매우 좋지만 같이 살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병들고 숨졌다. 이 팬데믹에도 어떤 이점이라는 게 있을까?

“위기 그 자체가 이점이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우리의 첫 반응은 격리였다. 3~4월만 해도 두 달 후엔 괜찮아질 거라며 여름 휴가를 꿈꾸기도 했다. 이 사태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우리가 어떠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점차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처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으니까. 그래서 불행하게도, 이 위기는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것이다. 어떤 환상을 걷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삶은 역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시스템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좀 더 급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