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한복판의 가회동성당은 주변과 어울리게 한옥과 현대적 건축물이 어우러진 명소다. /건축사진가 윤준환씨 제공

“송 신부, 예전에 건축 공부를 했잖아. 잔말 말고 가서 지어.”(총대리주교)

“아, 예.”(송 신부)

송차선(60) 신부가 서울 가회동성당을 짓게 된 시작은 이 한마디였다. 2014년 재건축된 가회동성당은 서양식 건물과 한옥이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건축문화대상, 올해의 한옥상, 서울시 건축대상 등 굵직한 건축상 6개를 휩쓸었다. 비·김태희 부부가 혼배미사를 올리는 등 결혼식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송 신부는 이 성당을 짓게 된 과정을 에세이로 풀어쓴 ‘가회동성당 이야기’(일상이상 출판사)를 최근 펴냈다.

2010년 송 신부가 가회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할 때 성당 건물은 붕괴 직전이었다. 송 신부는 일반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됐다. 사제의 길에 들어서면서 덮었던 건축 공부가 이렇게 ‘재활용’될 줄은 몰랐다. 일단 순명(順命)한 송 신부의 머릿속엔 ‘계획’이 있었다.

우선 가회동성당과 주변의 역사부터 공부했다. 신도시 허허벌판에 짓는 것이 아니라 유서 깊은 한옥마을 한가운데에 짓는 성당이라 ‘스토리’의 옷이 필요했다. 공부할수록 새 스토리가 발굴됐다. 이 지역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피신하면서 사목하던 중 체포돼 순교한 동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박해의 주역이었던 조선 왕실의 후손인 의친왕과 의친왕비가 1955년 별세하기 직전 이 성당에서 각각 ‘비오’와 ‘마리아’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박해와 순교의 스토리가 신앙의 결실로 마무리된 것. 이 스토리를 바탕으로 송 신부는 재건축 주제를 ‘선교 본당(성당)’으로 잡았다.

앞마당에서 본 가회동성당. /건축사진가 윤준환씨 제공

구체적으로는 ‘벽안의 외국인 선교사와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조선의 선비가 어깨동무한 것’을 구상했다. 현대 서양식 건축과 한옥을 접목시킨 것. 구상 단계부터 ‘건축상’을 노렸다. 상 받은 건축물을 구경하러 오게 만드는 것도 ‘선교’의 일환이라 생각한 것.

그렇지만 송 신부가 직접 설계를 한 것은 아니다. 지명 공모를 통해 당선된 오퍼스 건축(대표 건축가 우대성 조성기 김형종)이 디자인을 맡았다. 오퍼스 건축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본원’(2016) 멕시코의 ‘비야 알로이시오’(2018) 등 다양한 가톨릭 건축물을 설계해온 건축사 사무소다.

송 신부와 오퍼스 건축가들은 아이디어와 의견을 교환하며 설계를 완성했다. 성당 건물을 결혼식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하나였다. 신자가 적어 자급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 성당 구석구석까지 ‘포토 존’으로 손색없도록 정성을 들였다. 이렇게 모두가 한마음을 모은 결과 오퍼스 건축은 2016년 가톨릭미술상 건축부문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건축상을 휩쓸었고 가회동성당은 북촌의 필수 방문 코스로 떠올랐다.


가회동성당을 재건축한 송차선 신부. 현재는 용산성당 선교담당사제로 있는 송 신부는 "재건축 과정에서 느낀 하느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그러나 송 신부가 책을 쓴 이유는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다. 건축 전 과정을 통해 나타난 ‘하느님 은총’을 전하기 위해서다. 건축 과정은 신자 설득부터 비용과 재료 마련, 시공 현장에서 벌어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까지 난관의 연속. 송 신부는 암 수술까지 받았다. 포기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도 여러 번. 그러나 매번 기적적으로 문제가 해결됐다. 송 신부는 “단순히 우연의 연속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었기에 책으로 기록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