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로 3시간, 다시 지프로 7시간을 달려갔다. 길이 2m짜리 말 그림 암각화 탁본을 뜨러간 길이었다. 그러나 막상 바위 앞에 서니 그림이 안 보였다. 검붉은 이끼만 잔뜩 끼어있을 뿐. 허탈한 마음에 바위 앞에 앉아 있는 사이 서산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바위 위에 말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 그림은 신기하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알람을 설정해 둔 것처럼 해가 뜨거나 질 때 그리고 달 밝은 밤에만 보인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은 지난 5년간 암각화에 푹 빠져 살았다. 시작은 지난 2016년 한국화가 김호석씨와 동행한 러시아 알타이행. 이후로 그는 틈만 나면 탁본 도구를 챙겨 몽골, 키르기스스탄, 러시아의 알타이 등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암각화를 사이에 두고 선사시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암각화 하나하나를 탁본 뜰 때마다 떠오른 생각과 감상을 적은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불광출판사)를 펴내고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전시회도 연다.
책엔 7000년 전 사람들이 바위를 도화지 삼아 그린 암각화가 사진으로 소개된다. 그냥 동그라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양을 사람처럼 의인화한 그림, 말·사슴·염소 등 동물 그림,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사람 그림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선사시대 화가들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어떤 그림은 장욱진(1917~1990) 화백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스님이 왜 암각화에 빠졌을까? 그는 “솔직히 그냥 좋았다. 암각화를 보면 항상 설렘이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암각화에서 당시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었다. “대부분 암각화는 제단(祭壇) 부근에서 발견됩니다. 당시 사람들의 고통이나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새겨져 있지요. 그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와닿았습니다.” 문자 이전의 그림이란 점에서 문자 너머의 깨달음을 찾는 불교의 화두(話頭)와도 연결된다.
스님이 꼽는 또 한 가지 암각화의 매력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 “저를 암각화의 세계로 이끌어준 김호석 화백과 저는 암각화를 볼 때 해석이 거의 매번 달랐어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7000년 전에 살아본 것도 아닌데요(웃음).”
전시에는 높이 4m, 폭 8m에 이르는 울산 반구대암각화 탁본과 길이 2m짜리 말 그림 탁본 등 60여점의 탁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