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별세한 배우 윤석화의 생전 모습. 연극 ‘햄릿’(2016)에서 예순 나이에 햄릿의 어린 연인 오필리아를 연기했을 만큼, 무대 위 그는 세월에 아랑곳없이 늘 청춘이었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만인의 사랑을 받는 스타였으나 화려한 만큼 쓸쓸했다고 고백했던 사람. 무대에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루고도 늘 새로운 무대에 목말랐던 천생 연극인. ‘신의 아그네스’ ‘명성황후’의 배우 윤석화(69)씨가 19일 오전 9시 54분 뇌종양 수술 뒤 투병 중이던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그는 2022년 연극 ‘햄릿’ 무대에 선 뒤 10월 영국 출장 중 쓰러졌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 서울에서 세 차례 대수술을 받았다. 항암치료는 굳센 그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후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연요법 치료에 전념하기도 했으나, 3년여 투병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2023년 8월 배우 손숙의 연기 인생 60년 기념 연극 ‘토카타’에 뒷모습만 등장하는 ‘공원 벤치에 앉은 노인’ 역할로 5분쯤 출연했다. 짧은 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쓴 채 책장만 넘겼다. 부축을 받으며 커튼콜 무대에 올라 “암만 빼면 건강하다”며 활짝 웃었다. “크게 한 번 말해볼게. 언니 사랑해!” 그 말 뒤 손숙의 품에 안겨 무대를 내려갔다. 그것이 무대 위 마지막 모습이 됐다.

◇‘천재 소녀’로 불린 연극 데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오란씨’ ‘부라보콘’ CM송의 청아한 목소리로 먼저 알려졌다. 1975년 이른 봄, 녹음을 위해 드나들던 음악평론가 이백천씨 스튜디오에서 그 옆방에 더부살이하던 민중극단 단원들과 마주쳤다. 당시 민중극단 대표이자 방송국 PD였던 이효영 선생이 “탤런트 해보겠느냐” 물었다. “연극 배우라면 몰라도 탤런트는 싫어요.” 그 말이 ‘씨’가 됐다. 그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꿀맛’의 주연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극작가 이근삼 선생은 “천재 소녀의 등장”이라고 했다.

연극계 흥행 신화를 썼던 ‘신의 아그네스’에서 수녀 아그네스로 분장한 윤석화(사진 가운데). /조선일보DB

새벽에 일어나 전단지를 돌리고, 포스터를 붙이다 경찰서에 끌려가는 극단 막내 생활을 오래 했다. 1983년은 그가 주연한 연극 ‘신의 아그네스’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170회 공연을 마쳤을 때 이미 관객 3만명이 몰렸다. 그를 수퍼스타이자 ‘만인의 연인’으로 만든 소극장 연극의 기적이었다.

연극이 지성의 자존심이었던 1980~90년대 연극판 한가운데엔 늘 그가 있었다. 연극 ‘하나를 위한 이중주’(1988·이하 초연 연도), ‘목소리’(1989),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 ‘마스터 클래스’(1998),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등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배우 윤석화의 이름은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그는 “아그네스에 출연한 때부터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그것 때문에 불행했다”고도 했다. “화려한 만큼 더 쓸쓸했어요. 하루는 참 잘한 것 같아서 천국이고, 다음 날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 지옥이었죠.”

예순 나이에 오른 ‘햄릿’(2016) 무대에서 햄릿의 어린 연인 오필리아를 연기했다. 무대 위 그는 세월에 아랑곳없이 늘 청춘이었다. 그에게 연극은 “허구의 땅에 세운 진실의 성채(城砦)”였다. 그는 무대를 “틀렸다고 다시 할 수 없고, 예쁜 것만 편집해 보일 수도 없는 정직한 곳”이자 “가장 크게 숨 쉬고, 가장 깊게 숨을 수 있는 나만의 땅이고 우주”라고 불렀다.

◇“정직한 연극 무대, 나만의 우주”

손숙, 윤석화, 박정자(왼쪽부터)는“우리가 이렇게 사진 찍으면 좋아할 사람 많다”고 했다. 각자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선일보DB

50대에 시련이 찾아왔다. 2007년, 철없던 시절 바로잡지 못한 ‘이화여대 출신’ 학력 위조 파문에 휩싸였다.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여러 차례 참회했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한 적도, 20층 꼭대기를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죽기 전에 미리 죽지 않는다’는 한 외국 여배우의 말이 그의 좌우명이 됐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요. 살아 있으면서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싸우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내려놓는 거예요.”

쓰러지려 할 때마다 연극 무대가, 거기 서야만 만날 수 있는 관객들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늘 관객들의 눈과 숨소리였어요. 관객의 ‘살아 있음’, 그것을 곧 진실이자 사랑이라고 믿어 버렸어요. 그 진실과 사랑이 배우의 길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삶의 자세, 배우의 길을 이어준 탯줄이었습니다.”

왜 연극을 하는가 물으면 그는 마리아 칼라스의 굴곡진 삶을 담은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대사로 답하곤 했다. “세상은 우리 없어도 돌아갈 거예요. 하지만 우린 이 세상을 예술이 없는 세상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곳으로 만들어 왔어요.”

◇연출가, 제작자, ‘객석’ 발행인…

오랜 배우 생활에도 매체 출연은 영화 ‘봄, 눈’(2012)과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2018) 등 수편에 불과할 정도로 무대를 사랑했다. 제대로 된 공연 비평을 정착시키기 위해 1999년부터 7년간 공연예술 전문지 ‘객석’의 발행인을 맡았다.

그가 맡은 동안 ‘객석’은 한때 3만부 넘게 발행하기도 했다.

후배 연극인들을 위해 소극장을 만들고, 공연을 연출하고 제작하는 데도 힘썼다. 2002년 서울 대학로에 개관한 소극장 ‘정미소’는 실험적 연극의 산실이었다. 연출가 양정웅, 배우 박해수·전미도 등 스타 연극인들이 그가 깔아놓은 ‘정미소’라는 멍석에서 돈 걱정 덜고 마음껏 새로운 연극을 만들었다. 17년간 운영한 이 소극장은 연극 팬들에게 ‘파리 퐁피두 센터보다 아름다운 곳’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3년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직접 연출했다. 영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첫 런던 웨스트엔드 프로듀서로 뮤지컬 ‘톱 해트’ 제작에 참여했고, 2013년 5월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을 때 공동 프로듀서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1995년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다.

◇아들·딸 입양… 연극인 복지사업 앞장

윤석화씨는 2003년 6월 자신이 제작, 연출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공연하던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로비에서 앞서 그 해 4월 입양한 아들 수민씨의 백일 잔치를 열었다. 아기는 관객들이 정신없이 몰려드는 가운데서도 윤씨 품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조선일보DB

아들과 딸을 입양한 고인은 입양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입양문화 개선에 앞장섰다. 연극인복지재단 대표를 맡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연극인들을 위한 의료비와 주거비 지원, 연극인 자녀 장학 사업 등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춰 선 2020년 늦가을 만났을 때 그는 “연극은 순간의 예술이라, 남아 있는 것도 없고 별 보상도 없지만 주고받는 마음과 따뜻한 정은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보상”이라고 했다. “예전에 교통사고 당하고 20일 만에 무대에 섰던 적이 있어요. 갈비뼈가 6대가 나가서, 의사는 ‘그 상태로 무대에 섰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무대에 올랐어요. ‘아, 무대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하다’ 싶었지요.” 그런 깊고도 쓸쓸한 말을 윤석화만큼 진심을 담아 할 수 있는 배우도 드물었다.

2021년 박정자가 주연한 연극 ‘해롤드와 모드’를 연출했을 때 그는 “공연을 할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관객을 만나는 순간 ‘이 강을 건너오길 잘했구나’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모두가 언젠가 건너게 될 그 강을 한 발 앞서 건너, 미리 도착한 선후배 연극인들과 함께 하늘 무대를 꾸밀 것이다.

1998년 이해랑연극상을 받았다. 백상예술대상 네 차례를 포함,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등에서 배우가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연기상을 받았다. 2005년 대통령 표창, 200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빈소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유족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 아들 김수민, 딸 김수화씨. 발인 21일 오전 9시.

◇“18일 밤 별세” 혼선도

앞서 18일 밤 배우의 지인들이 병원으로 마지막 인사를 다녀오고, 유족이 미리 빈소를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연극 관련 단체가 “윤석화 배우가 18일 밤 9시 별세했다”는 문자와 보도자료 등을 보내고, 이를 인용한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연극배우협회는 “가족들에게 사과드린다”며 별세 보도자료를 취소하는 보도자료를 다시 내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