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니콜라’(이주승·강승호)는 석 달째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엄마 ‘안느’(정수영)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 무시하는 아들 때문에 사는 게 지옥 같다. 아빠 ‘피에르’(이석준)는 이혼 뒤 새로 꾸린 가정에서 이미 새로 아들까지 얻은 상황. 전처의 도움 요청에 아들을 만난 아빠는 결석 이유를 묻지만, 아들은 “그냥 걸었다”고만 한다. “상태가 별로였다”고, “긴장을 풀 수 있는 방법이 그냥 걷는 것뿐이었다”고.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아들’(연출 민새롬)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관객을 비극적 감정의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의 세련된 완력이 놀랍다.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엔 저마다 불행의 이유가 있다. 요즘은 그 ‘가정’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아무도 백년해로 따위 믿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 이혼과 재혼은 흔하디 흔한 일. 버텨줄 가족의 울타리는 무너진 지 오래인데, 아이들은 여전히 어른이 되는 경계를 넘다 쓰러지고, 부모는 처음 해보는 부모 역할이 버겁기만 하다.
아빠는 그토록 증오했던 자기 아빠의 말을 아들에게 반복하고, 아들은 거짓말과 연기로 순간을 넘긴 뒤 방에서 몰래 칼로 팔목을 긋는다. “더 이상 못하겠어. 사는 게 버겁다고. 미쳐버릴 것 같다고.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고….” 니콜라와 이미 해체된 그의 가정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파국을 향해 추락을 거듭한다.
무대 위 시간이나 장소가 바뀌기 전 암전할 때마다 들리는 새소리, 바람 소리,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는 아마도 학교를 거부하고 마냥 걸었던 니콜라의 기억. 격렬한 감정이 드러나기 직전엔 ‘꼬르륵 꼬르륵’ 누군가 물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소리가 관객의 목을 죈다.
가족 삼부작 중 ‘아버지’에서 알츠하이머를, ‘어머니’에서 정체성 상실을 이야기했던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는 마지막 ‘아들’에서 가족의 붕괴와 우울증의 문제를 바닥 끝까지 파고 들어간다. 파국에 이르러 아빠 피에르는 “살아지지가 않아…”라고 울부짖는다. 비극의 끝에서 토해내는 어린 동물의 비명 같은 울음이다. 11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