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조선 22대 왕 정조는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7박 8일간의 행차에 나섰다. 수원까지 내려가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을 참배한 후 화성행궁에서 성대한 회갑 잔치를 연다. 8일간의 행사가 글과 그림으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상세히 남아 있다.
한국화가 이환영(81)씨는 이 의궤를 찬찬히 살펴보다 유독 한 인물에 눈이 갔다. 말을 탄 채 역동적인 자세로 북을 치고 있는 젊은 고수(鼓手)다. 그는 “이번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공연을 보면서 의궤 속 고수를 떠올렸다”며 “231년 전 ‘조선 최대 축제’에서 흥과 끼를 발산했던 청년 고수의 DNA가 지금 세계적 열광을 받고 있는 BTS 멤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BTS 공연에서 영감을 받은 이씨가 한지에 수묵 담채로 그린 ‘광화문 BTS 진찬도(進饌圖)’를 본지에 공개했다. 진찬도는 궁중의 잔치 의식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우뚝 솟은 북악산 아래 광화문이 서 있고, 월대 무대에 오른 일곱 멤버가 노래를 부른다. 실제 공연은 밤에 열렸지만, 그는 대낮의 활기를 상상했다. 3월 한낮의 계절감을 표현하기 위해 담장엔 백매화를 활짝 그려 넣었다.
진짜 주인공은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BTS 멤버보다 더 크게 그렸다. 할머니 손 잡고 구경 나온 아이와 강아지, 춤추는 무희, 상모 돌리는 악사…. 군중 맨 앞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인물이 바로 의궤 속 흥 넘치는 고수다. 이씨는 “양손에 채를 쥐고 허리를 꺾어가며 북을 치는 의궤 속 청년을 오마주해 그려 넣었다”며 “고수의 역동성이 바로 21세기 한국인의 정체성임을 강조했다”고 했다.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아미(BTS 팬)들이 몰려와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고 뿌듯했어요. 앨범 제목을 ‘아리랑’으로 하고 무대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은 걸 보면, 한국 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큰 것 같아서 대견하고 감동적입니다. BTS 젊은이들의 기상과 당당함, 그 원형질을 조선 왕실 의궤 속 고수에서 발견하고 오늘로 소환한 겁니다.”
이씨는 유천(柳泉) 김화경을 사사했고, 김기창과 김학수의 애제자로 한국화의 맥을 이어왔다. 1977년 국선 입선 이후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독교 100주년 기념전’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조선 정조 때 의궤인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반차도(행렬 그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우리 민족이 워낙 탁 트인 마당에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나. 광장에 모여 즐기는 시민들을 더 강조하고, 고수와 무희들의 의상을 오방색으로 화사하게 한 것도 그 이유”라며 “제 그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축제의 여운을 더 오래 즐기시면 좋겠다”고 했다.
이환영 작가가 조선닷컴 독자들께 선물을 드립니다. 이환영 작가가 조선왕실 의궤 속 역동적인 청년 고수와 광화문을 그려넣은 ‘광화문 BTS 진찬도’의 이미지를 다운받아, 두고 두고 감상하세요. 아래 <작품 내려받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