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데뷔 10주년 페스타 행사장을 찾은 수리남 출신 앰버리엔 말리하 피어칸(33)./독자 제공

“2022년 6월 방탄소년단(BTS)이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힌 날, 수리남의 한 직장 화장실에서 혼자 숨죽여 울었습니다. 그들이 잠시 멈춘다는 소식에 제 세상도 멈추는 것 같았죠. 그 눈물은 결국 이 함성을 위해 기다려온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수리남 출신 아미(ARMY·BTS의 팬덤 명) 앰버리엔 피어칸(33)씨는 이번 BTS 완전체 컴백 무대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7년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연히 띄워준 한 편의 영상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BTS의 노래 ‘피 땀 눈물’ 안무 영상이었다.

당시 안무가로 활동하던 그는 강렬한 비트와 발소리, BTS 특유의 칼군무에 압도됐다고 했다.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관계와 서사까지 따라가게 됐다.

피어칸씨는 “처음엔 그냥 멋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팀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곧 BTS는 ‘좋아하는 가수’ 이상의 의미가 됐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완벽해 보이지만, 노래와 인터뷰, 라이브 방송에서는 불안과 고민, 상처를 숨기지 않는 팀이라는 진솔함에 매료됐다. 그는 “BTS는 늘 정답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가는 법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며 “그래서 더 믿게 됐다”고 했다.

◇“불안과 고민까지 꺼내 보인 팀, 그래서 더 믿었다”

2023년 6월 데뷔 10주년 페스타 기간, 서울 용산구 하이브(HYBE) 사옥 앞. 지구 반대편 수리남에서 날아온 피어칸씨가 사옥 외벽을 가득 메운 보랏빛 BTS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독자 제공.

피어칸씨가 특히 깊게 공감한 멤버는 RM이다. 대학 졸업 후 진로 문제로 방황하던 20대 중반, 그는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흔들렸다고 했다. 그 시기 RM이 라이브 방송과 연설에서 자신의 고민과 책임, 불안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을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

“RM은 완벽한 답을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흔들린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잖아요. 그걸 보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고 느꼈어요.”

BTS의 음악은 힘든 시기를 건널 수 있게 해줬다. 힘든 날이면 그는 노래 ‘Magic Shop’을 반복해 들었다. 피어칸씨는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속에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마음속에다.(Magic Shop·2018)”

◇논현동 사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피어칸씨가 지난 2023년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 페스타(FESTA) 당시 부산광역시 카페 '매그네이트(MAGNATE)'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카페는 멤버 지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지민과 정국의 고향 공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 부산을 방문했다"고 했다./독자 제공

그는 BTS 이후 다른 K팝 그룹들도 찾아봤다고 했다. 다양한 팀들의 무대와 음악을 접했지만, 마음이 오래 머문 건 BTS였다. “BTS를 BTS답게 만든 건 결국 ‘관계’입니다. 멤버들 간 팀워크와 서로를 향한 지지, 그리고 음악에 담긴 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BTS를 “완벽한 스타”가 아니라 “같이 성장해 온 사람들”로 느끼게 됐다고 했다. 이후 BTS를 따라 한국의 여러 장소를 찾았다. 2019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논현동 옛 빅히트 사옥을 찾았다. “작고 소박한 건물이었어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여기서 시작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 작은 곳에서 출발한 소년들이 이제 광화문에 선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수리남 출신 아미 앰버리엔 피어칸씨가 제주도 여행 중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방문해 화제가 된 한 식당을 찾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실제 멤버들이 식사했던 좌석에 앉았다. /독자 제공

그는 BTS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다. 부산과 제주도 등 멤버들의 흔적이 남은 장소들도 직접 찾았다. 부산에서는 지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 ‘마그네이트’를 찾아 사인 앨범과 전시를 봤다. 그는 “멤버들이 자라난 도시의 공기를 느껴보고 싶었다”고 했다.

제주도에서는 디즈니+ 예능 ‘이게 맞아?!’ 촬영 이후 알려진 식당과 장소들을 따라갔다. 그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그들이 머물렀던 시간을 따라가 보는 일이었다”며 “BTS 덕분에 한국은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연결된 공간이 됐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보랏빛으로 이어진 사람들”

BTS 10주년 행사 당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페스타 모습./독자 제공

2023년 열린 BTS 데뷔 10주년 행사도 피어칸씨에게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의도 한강공원을 가득 메운 보랏빛 아미밤(응원봉) 사이에 섰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내 사람들(My people)’을 찾았다는 감각을 느꼈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혼자 좋아하는 느낌이었어요.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냐’고 묻곤 했고, 이렇게 많은 아미를 한 번에 본 적도 없었죠. 그런데 여의도에서 사방이 보랏빛으로 물든 걸 보는 순간, ‘아, 여기 모인 사람이 내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어칸씨는 데뷔 10주년 헌정곡 ‘Take Two’와 최근 복귀 공연을 앞두고 공개된 홍보 영상에 삽입된 2019년 곡 ‘소우주(Mikrokosmos)’를 특별한 곡으로 꼽았다. 그는 “Take Two의 가사는 BTS가 아미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동시에 아미가 BTS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며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주는 가사 같았다”고 했다.

“당신들의 과분한 사랑을 내가 받을 자격 있을까 / 수년간 우리가 만든 영혼의 교집합 / 함께여서 너무 고맙고 행복합니다.(Take Two·2023)”

소우주에 대해선 “노래를 들을 때마다 BTS와 함께 보낸 청춘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저 다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한 사람에 하나의 별/70억개의 빛으로 빛나는/70억 가지의 world(소우주·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