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6인조 K팝 걸그룹 캣츠아이가 오는 13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유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남미’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흑인 멤버 마농이 지난달 돌연 활동을 중단하면서 캣츠아이는 5인 체제로 공연에 나서게 됐다.
활동 중단 이유를 놓고 마농과 소속사 측이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면서 K팝 팬들 사이에선 마농이 인종차별을 겪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전히 논란이 식지 않은 가운데 하이브 측은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마농의 복귀 시기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BTS)이 속한 하이브가 미국에서 데뷔시킨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이브 “건강·웰빙 위해 활동 중단” 발표에 마농 “난 건강”
캣츠아이는 하이브와 미국 3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게펜레코드가 합작한 다국적 6인조 걸그룹이다. 2024년 8월 데뷔한 캣츠아이는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그래미어워즈에서 2개 부문 후보로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캣츠아이가 한창 주가를 올리는 상황에서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돌연 마농의 활동 중단 소식이 전해졌다. 하이브는 당시 “마농이 건강과 웰빙에 집중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마농은 몇 시간 뒤 직접 “저는 건강하며, 저 자신을 잘 돌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때로는 상황이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저는 더 큰 그림을 믿고 있다”고 했다.
서로 상반된 메시지가 나오자 팬덤에선 여러 추측이 나왔다. 가나 출신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인 마농이 팀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패션 잡지 엘르는 “마농과 소속사 양측의 서로 다른 입장이 음악계 전반과 온라인에 충격파를 던졌고,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흑인 여성의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활동 중단 이틀 뒤 마농이 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커졌다. 이 게시물은 크리에이터 심플리시몬이 지난달 22일 올린 것으로, 그룹 ‘피프스 하모니’의 멤버 노르마니·그룹 ‘리틀믹스’의 멤버 리앤 피녹 등 서구권 걸그룹 내 유일한 흑인 멤버에 대한 차별 사례를 다뤘다. 릴스의 설명란에는 ‘#캣츠아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또 다른 흑인 소녀가 인종차별과 소속사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쓰여 있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흑인 소녀’가 캣츠아이의 마농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마농의 팬들은 소속사에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과거 사건도 재조명했다. 데뷔 선공개 곡이었던 ‘Debut’의 안무 동선상 마농이 다른 멤버에게 가려지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 다시 문제가 됐다. 단체 사진 촬영에서 마농만 빠졌던 사례, 곡 ‘가브리엘라’의 퍼포먼스 영상 촬영 당시 부상을 입은 마농을 제외한 채 촬영을 마친 일 등도 의혹에 불을 지폈다.
결국 마농 팬들은 ‘캣츠아이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팔로워 수가 8만4000명이 넘는 팬의 주도로 ‘보이콧 폴 마농(#BoycottForManon)’ ‘저스티스 폴 마논(#JusticeForManon)’ 등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글이 수많이 올라왔다.
◇ 해외 아티스트들, 마농 지지 잇따라... 외신 “걸그룹 흑인 멤버 문제 조명”
흑인을 포함한 해외 아티스트들이 마농을 응원하고 나서면서 차별 의혹은 더 확산했다. 리틀믹스의 리앤 피녹은 마농과 자신이 인스타그램에서 서로 팔로우를 했다는 게시글에 “우리는 서로 보호해야 해요”라는 답글을 남겼다. 그룹 ‘푸시캣돌스’의 유일한 흑인 멤버였던 멜로디 손튼은 마농의 사진을 올리며 “우리가 당신을 보고 있다”고 적었다. 이외에도 할리우드 배우 겸 가수 할리 베일리·클로이 베일리 자매, 팝가수 SZA, 켈라니 등이 마농을 응원했다.
미국 포브스, 보그 등 주요 외신도 이번 의혹을 집중 보도하면서 걸그룹 내 흑인 멤버 문제를 조명했다. 엘르는 지난 1일 “마농의 활동 중단은 흑인 여성 팝 가수들이 겪는 고립된 여정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롤링스톤은 ‘마농의 활동 중단: 흑인 걸그룹 멤버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코스모폴리탄은 지난달 25일 공식 X(옛 트위터)에 “우리는 마농을 영원히 사랑하고 응원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9일 기준 조회 수 1186만회 이상, 좋아요 수 17만개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팬덤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도 나왔다. 그간 컨디션 난조 등을 이유로 일정에 빠지는 등 마농의 태도 문제가 활동 중단 결정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캣츠아이는 2023년 오디션 프로젝트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통해 결성됐다. 데뷔 전 인플루언서였던 마농은 스타성을 인정받아 멤버 중 유일하게 오디션 없이 발탁됐다. 일부 팬들은 이 프로젝트 중 마농이 연습에 빠지는 등 태도가 소극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마농은 데뷔 후에도 컨디션 난조 등을 이유로 2024 마마(MAMA) 어워즈에 불참하고, 첫 북미 투어 일부 공연에도 참여하지 못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마농은 지난달 17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자주 아프다. 미국은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성공을 위해 애쓴다. 제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는 아프면 하루 쉰다”며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흑인 여성으로서 ‘게으르다’는 말을 듣는 것은 평등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멤버 5명도 괜찮다” 다니엘라父 SNS에 팬들 논란 커져
팬들의 의견이 갈린 가운데 미국인 멤버 다니엘라의 아버지가 소셜미디어에 남긴 댓글도 논란을 키웠다.
그는 마농의 활동 중단 소식을 전하는 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멤버가 있든 없든 쇼는 계속돼야 한다”, “캣츠아이는 소녀 한 명보다 중요하다” 등 댓글을 남겼다. “캣츠아이는 6명이어야 한다”는 네티즌의 글에는 “5명도 괜찮다”라고 답을 달았다. 이는 다른 소셜미디어로 확산하며 마농 팬들에게 비난을 샀다.
다니엘라 아버지가 올린 게시물은 다른 멤버에 대한 인종차별 의혹도 키웠다. 그는 과거 그룹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와 딸 다니엘라를 비교한 한 게시글에 “다니엘라가 더 낫다”며 “딸은 라틴계인데 아시아 댄서에 비해 장점”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와 함께 그가 멤버들과 찍은 셀카도 도마에 올랐다. 다른 멤버들과는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넌 정말 수퍼스타다” 등 문구를 적은 반면, 한국인 멤버 윤채와는 비교적 차분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문구도 사진을 찍은 장소를 언급한 게 전부다. 이를 두고 “윤채에 대한 차별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등장했다. 현재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삭제된 상태다.
하지만 캣츠아이는 멤버 전원이 혼혈이거나 비백인인데 이런 사안을 인종차별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팬덤에서 여러 의혹이 확산하는 것에 대해 하이브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마농이 언제 활동을 재개할지도 미지수다. 캣츠아이는 13일부터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3개국에서 열리는 ‘롤라팔루자 남미’에 출연한다. 다음달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도 선다. 하이브 측은 조선닷컴에 “마농은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언제 복귀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당장 13일, 14일에 예정된 아르헨티나, 칠레 공연은 참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이후 스케줄은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다국적 걸그룹 내 갈등, 팬들에겐 인종차별로 해석될 수도”
K팝 그룹 내 글로벌 멤버에 대한 차별 의혹을 둘러싼 논쟁은 이전에도 있었다.
2021년 다국적 그룹 블랙스완의 멤버 사이 불화가 있었을 당시 일부 팬들이 흑인인 파투가 인종차별을 받았을 것이라며 다른 멤버를 향해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또 블랙핑크의 리사가 한국 연예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은 태국 팬들을 중심으로 수차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멤버들이 함께 활동하는 다국적 그룹은 인종차별 문제와 같은 ‘정체성 리스크’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다국적 그룹에서는 예상치 못한 갈등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 갈등이 각국 팬들에게 인종차별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다국적 그룹을 운영하려면 인종 문제와 국민 감정 등 여러 요소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며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K팝 산업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