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연인 대신 인공지능(AI)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세계는 디스토피아일까, 유토피아일까. AI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서구권 작품이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한국 드라마도 여기에 출사표를 냈다. 인간과 연애하는 AI 서비스를 소재로 삼은 ‘월간남친’(넷플릭스)이다.
블랙핑크 멤버 지수가 연기한 주인공 ‘미래’가 퇴근 후 머리에 기계를 쓴다. 눈앞에 아름다운 가상 세계가 펼쳐지고, 여기서 901가지 버전의 AI 남자 친구를 만난다. 서비스 구독료가 최저 월 50만원이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AI와 인간이 어우러지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그림이다. “어딘가에서 정말 개발되고 있을 것 같은 서비스”라는 김정식 감독 말처럼 머지않은 미래로 느껴지는 점이 흥미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흥행 열기는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국내외 반응에 온도 차가 나타났다. 영어와 비영어 작품 합산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월간남친’이 1위를 차지한 국가는 공개 사흘째인 8일에 3곳(한국·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 9일 1곳(한국)으로 줄었다. 미국·캐나다 등에선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에 새롭게 등장한 AI 소재를 바라보는 해외 매체의 시선도 눈길을 끌고 있다. ‘월간남친’을 ‘화려한’(glossy) 드라마라고 표현한 미 타임지가 “한국의 친기술적인 분위기와 상대적으로 AI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가 드라마에도 드러난다”며 아쉬운 점을 짚은 것이다. 타임지는 “인간 관계를 기술(AI)과의 상호 작용이 대체하는 것에 대해 서구 작가와 감독들은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월간남친’은 기술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묘사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 근거로 작년 25개국 대상으로 진행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이 조사에서 일상 속에서 AI 기술이 대두되는 것을 우려스럽게 본다는 응답률은 한국이 16%로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비율이 50%에 달했다. 그만큼 AI를 다루는 방식이 사회 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타임지는 배우 지수의 활약과 여성 입장에서 전개되는 로맨스 서사에 좋은 점수를 주면서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펼칠 기회를 놓친다”고 평했다.
시청자 사이에선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평도 있다. ‘미래’가 AI 연인을 정리하고 현실 속 사랑에 뛰어드는 과정은 공감도 부른다. 다만 내용의 깊이보다 볼거리에 방점을 찍은 드라마들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 드라마들이 글로벌 OTT 영역에서 대중의 관심을 ‘독식’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오락성에 치중한 ‘상품’보다 작품이 나와야 한다”(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