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네는 모든 경험의 합이야. 모든 상실과 기쁨, 슬픔, 비탄 같은…”(‘원더맨’ 중).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나이 든 배우가 오디션 탈락을 걱정하는 신인 배우를 다독인다. 기댈 곳 없는 젊은이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 선생님이 되어준다.
영화 ‘아이언맨’ ‘어벤져스’ 같은 수퍼히어로물 제작사 마블이 ‘마블답지 않은’ 신작으로 호평받고 있다. 지난달 말 공개한 8부작 시리즈 ‘원더맨’(채널 디즈니+)이다. 여느 마블 작품들처럼 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졌지만 그럴듯한 수퍼히어로 액션은 단 한 장면뿐. 대신 셰익스피어 작품 구절과 고전 영화 대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연기’와 ‘인생’에 대한 경구가 넘쳐나는 휴먼 드라마인 셈이다.
마블이 잘하는 볼거리 가득한 수퍼히어로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해외 매체에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기준에선 화려한 볼거리 대신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파격적인 시도”(가디언) “할리우드가 수년간 겪어온 수퍼히어로 피로감을 해소해 줄 해법이 될지 모른다”(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같은 평이 나오고 있다.
‘원더맨’은 초능력을 감춘 채 배우가 되고 싶은 ‘사이먼’(배우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과, 얼굴을 알린 배우이지만 마약 중독으로 ‘퇴물’이 된 중년 배우 ‘트레보’(벤 킹슬리)가 우정을 써 내려가는 이야기다. 국가기관의 사주를 받고 사이먼에게 접근했던 트레보는 사이먼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 ‘원더맨’ 오디션에 응시하게 된다. 뜻밖에 둘 다 꿈같은 기회를 얻으며 트레보의 계획에도 변화가 생긴다.
조 판토리아노, 조시 게드 같은 유명 배우들이 카메오로도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트레보 역의 배우 벤 킹슬리의 호연이 전체 드라마를 이끈다. 마블 영화 ‘아이언맨3’(2013)에서 테러 조직 두목 ‘만다린’ 역을 했던 그는 드라마 안에서도 과거 ‘만다린’ 역할을 했던 한물간 배우라는 설정이다. 유연한 삶의 태도로 사이먼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자신의 미래까지 양보하려는 트레보의 인간다움이 ‘원더맨’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연기 예술에 보내는 따뜻한 찬사”라는 호평도 있다. 트레보는 사이먼에게 말한다. “인생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 그게 우리 일이잖아. 우리가 고통과 슬픔과 기쁨을 나누면 관객도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우리도 혼자가 아니게 돼.”
마블의 정통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겐 부족한 액션 장면이 아쉬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더맨’은 ‘마블다움’을 결코 빼놓지 않는다. 회당 30분 남짓인 8부작을 완주한다면 마블 역대 가장 훈훈한 ‘브로맨스’ 초능력 신(scene)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서사를 잘 쌓아 올린 뒤 쏘아 올리는 초능력 한 방에는 더 큰 힘이 있다.
‘원더맨’은 MCU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전작을 보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을 뜻하는 이른바 ‘마블 스포트라이트’ 라인업에 속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글로벌 리뷰 사이트 IMDb 등에는 “각본, 연기, 케미스트리에 힘이 있다” “마블의 새로운 새벽을 알리는 신호탄” “독창적이고 기대 이상” 같은 시청자들의 평이 올라오고 있다. 기존의 유산 위에서 마블이 새로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