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망울에 큰 코. 만화 주인공 같은 얼굴에 걸걸한 반전 웃음이 걸린다.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으로 돌아온 배우 고윤정(30)이다.
특별한 회복 능력을 가진 드라마 ‘무빙’(2023)의 인상적인 여고생 ‘희수’부터,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2022)의 ‘진부연’,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2025)의 레지던트 ‘오이영’, 최근 공개된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톱스타 ‘차무희’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TV와 OTT 드라마를 활보하며 털털한 매력으로 시청자에게 스며들었다. 공식 석상에서 긴장한 모습을 보여 소셜미디어에선 ‘연예인이 덜 된 배우’라는 친근한 밈까지 얻었다.
◇“누구나 아는 게 사랑이라 연기 어려워”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선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표현에 서툰 배우 ‘무희’를 연기했다. 비참한 사랑만 하던 무명 배우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적인 배우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혀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뒷걸음질하는 인물이다. 배우 김선호가 연기한 무희의 통역사 ‘주호진’이 처음으로 무희에게 합당한 사랑을 준다.
23일 만난 고윤정은 “그동안 출연했던 좀비가 나오는 드라마나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작품보다 사랑의 감정을 연기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더라”며 “만국 공용어처럼 쓰이는 영어를 할 때 발음이 이상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처럼 누구나 느껴봤을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 했다.
마냥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인물의 어두운 내면을 비추는 작품이라 폭넓은 감정 연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무희의 어머니가 남긴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인격 ‘도라미’가 극 중반부터 깨어난다. 도라미를 통해 남자 주인공 호진에게 자신의 마음과 치부를 드러낸다.
고윤정은 “도라미는 무희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호진이와 무희 사이에서 소통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통역사’였다고 생각한다”며 “이 드라마는 어떻게 해야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왜곡 없이 들리게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각자가 가진 다른 언어에 어떻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돌아봤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쇼 부문 2위에 오르며 국내외에서 흥행했다.
◇“재미있게 연기하면 몇 십 년도 더 할 수 있어”
고윤정은 주연을 맡기 전 드라마 ‘스위트홈’(2020)과 ‘로스쿨’(2021)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다 강풀 작가가 극본을 쓴 ‘무빙’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아버지와 친구 등 주변을 챙기는 털털하면서도 인간적인 여고생 ‘희수’ 역이 잘 맞아떨어졌다.
실제 배우의 인상도 이와 비슷했다. 그도 가장 고마운 작품으로 ‘무빙’을 꼽으며 “다시 돌려 봐도 많은 선배님들 사이에 한 일원이 돼 뿌듯한 작품”이라고 했다. 반면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1인 2역을 하며 제가 모든 걸 시도해볼 수 있었던 무대였다”며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윤정은 “앞으로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연기를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즐겁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다면 그게 몇 년이든, 몇 십 년이든 일하는 게 즐거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