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야구 투수 우진은 요즘 스트라이크 하나 던지는 일조차 버겁다. 갑자기 찾아온 ‘입스(Yips)’. 극심한 불안감과 심리적 압박에 몸이 굳어 버렸다. 한때 유망주로 불렸던 시간은 멀어져 간다. 그런 우진 앞에 전학생 태희가 나타나 “매니저가 되겠다”고 한다. 두 소년은 서로를 구원하며 성장해 간다.
TV 드라마나 OTT 시리즈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6일 공개된 아이돌 그룹 NCT 제노(우진 역)·재민(태희 역) 주연 숏드라마 ‘와인드업’ 내용이다.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맞춰 찍은 2~3분짜리가 여러 회차로 나뉘어 이어진다. 이 작품은 글로벌 K팝 숏폼 플랫폼 ‘킷츠(KITZ)’에서 공개 이틀 만에 누적 조회 수 300만회를 넘기며 앱 내 인기 랭킹 1위에 올랐다.
틱톡·인스타그램 릴스·유튜브 쇼츠처럼 ‘짧게 보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는’ 숏드라마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스크롤 한 번이면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는 세로형 드라마. 모바일 시청 패턴에 맞춰 진화하며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감독들 합류, 아이돌과 정통 배우들까지… “판이 커졌다”
숏드라마는 더 이상 신인 연예인이나 무명 감독들이 만드는 콘텐츠가 아니다. 영화 ‘사도’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최근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배급사 키다리이엔티 제안으로 시작된 작품은 사고 이후 ‘요리 백지증’에 걸린 아내를 대신해 집밥을 맡게 된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진영·이정은·변요한 등 정통파 배우들과 출연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21일 본지와 통화에서 “숏드라마 시장 확장에 기여하고 싶다”며 “3월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도 레진스낵 플랫폼 작품에 연출 및 각본으로 참여했고, 가수 솔비는 숏드라마 ‘전 남친은 톱스타’를 집필했다. 배우 박한별·김향기 등도 숏드라마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1~5분짜리 세로형 드라마… “짧지만 끝까지 보게 된다”
숏드라마는 회당 1~5분짜리 초단편이고, 전체 분량은 30~100회로 짜이는 경우가 많다. 세로형 화면과 빠른 전개가 핵심.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 시선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에 로맨스나 막장·복수극 등 자극적 소재가 많다. 인물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 사건과 감정을 압축해 속도를 끌어올린다.
숏드라마 플랫폼 ‘비글루’에 따르면, 핵심 이용자층은 35세 이상 여성이 과반을 차지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정주행한 작품은 ‘해야만 하는 쉐어하우스2’였고, ‘집착 결혼’ ‘로맨틱 아일랜드’ ‘로펌 에이스 변호사와 비서’ 등이 뒤를 이었다. 톱(Top) 10 작품 완주 평균 시간은 1시간 50분, 평균 완주율은 95%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시청자들이 잠깐 보고 끝내지 않고, 한번 시작하면 ‘정주행’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국내 시장 6500억 추산… 플랫폼 경쟁도 격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MPA)에 따르면 글로벌 숏드라마 시장 매출은 2023년 50억달러(약 7조3400억원)에서 2024년 120억달러(약 17조6200억원)로 크게 증가했다. 2030년에는 260억달러(약 38조1700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의 70~80%는 중국이 주도하지만 미국·일본·동남아시아·한국 등에서도 확장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6500억원으로 추산된다.
숏드라마만 전문으로 제공하는 플랫폼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네오리진 ‘탑릴스’, 스푼랩스 ‘비글루’, 왓챠 ‘숏차’가 출시됐고, 드라마박스·릴쇼트·드라마웨이브 등 중국계 플랫폼도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회당 15억 vs 5000만원”… 저비용·단기간 제작이 강점
숏드라마의 강점은 제작 문턱이 낮다는 점이다. 기존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15억원 수준이라면 숏드라마는 5000만원으로도 제작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일반 드라마가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것과 달리 숏드라마는 짧게는 2주, 길어도 2~3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제작비와 기간 부담이 줄어든 만큼 소재·포맷 실험도 쉬워지고, OTT에서 시도되던 파격적 설정이 숏드라마로 옮겨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짧은 분량 탓에 서사가 얕아지기 쉽고, 막장·치정·폭력 등 자극적 소재에 과도하게 의존할 가능성도 크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숏폼 드라마 시장은 한국 콘텐츠가 진화할 기회”라며 “성장 속도만큼 콘텐츠 완성도와 시장 안정성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