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이돌아이’의 주인공 ‘세나’(배우 수영·왼쪽)가 아이돌 가수 ‘라익’(김재영)과 우연히 만나는 장면. 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린 라익을 위해 변호사인 세나가 나선다. 로맨스물에 미스터리와 법정물의 매력을 더했다./ENA

이름 날리는 유명 변호사인 여자 주인공이 집에 오는 순간 누군가의 열렬한 팬으로 변신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재생하는 순간 자동으로 미소 장착. 그런데 그 아이돌 가수가 살인 용의자가 된다. 진실이 미궁에 빠지고 주인공이 그를 위해 ‘본업 천재’ 면모를 발휘한다. 로맨스물이지만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법정물의 성격도 지닌 드라마 ‘아이돌아이’(ENA) 이야기다.

올 겨울 로맨스 드라마가 강세다. 그런데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시대극, 판타지, 미스터리, 코믹, 법정물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결합해 볼거리를 가득 채운 ‘K 로맨스물’이 잇달아 나오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강렬한 범죄·액션·스릴러에 밀리던 정통 로맨스가 아니라 여러 장르와 결합된 ‘혼종(하이브리드) 로맨스’의 전성기다. “한때 한류를 이끌었던 로맨스 드라마가 플랫폼의 변화에 맞춰 ‘하이브리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OTT가 대중화한 이후로는 예전만큼 기를 펴지 못했다는 평이 많았다. 액션, 스릴러, 오컬트 등 자극적인 이야기의 드라마들로 추세가 이동하며 로맨스물이 주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에 인기몰이를 한 조선 시대 판타지 로맨스 ‘폭군의 셰프’(최고 시청률 17%)가 주춤했던 로맨스에 활로를 뚫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선재 업고 튀어’ ‘폭군의 셰프’(tvN)처럼 스릴러, 범죄, 판타지, B급 코믹물 등 다른 장르의 요소를 결합한 로맨스물 드라마들이 성공 사례를 만들며 새로운 흥행 공식을 만든 것이다.

기상천외한 행동들로 웃음을 주는 ‘스프링 피버’의 남자 주인공 ‘재규’(안보현). 여자 주인공 '봄'은 배우 이주빈이 맡았다./tvN

이런 흐름을 타고 판타지와 시대물을 결합한 로맨스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나오는 중이다. 조선 시대 대군과 의적 활동을 하는 노비 출신 여인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 로맨스물인 ‘은애하는 도적님아’(KBS)는 4회 방영만에 시청률 6%를 넘었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MBC)가 종영한 지 10여 일 만에 또 등장한 ‘영혼 체인지’ 로맨스 사극이다.

로맨스물이지만 코미디에 방점을 찍은 ‘스프링 피버’(tvN)도 있다. 깡패 같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상남자’와 여교사의 사랑을 다룬다. ‘스프링 피버’는 공개 3일 만에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TV쇼 부문에서 글로벌 2위(플릭스패트롤 7일 기준)를 찍으며 해외에서도 통했다. ‘MZ세대’ 구미호와 축구 선수의 판타지 로맨스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SBS)도 오는 16일부터 방영한다.

최근 ‘혼종 로맨스’의 강세는 작년 ‘우리영화’(SBS) ‘바니와 오빠들’(MBC) 같은 잔잔한 로맨스물의 부진과도 대비된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요즘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해 따라가야 하는 정통 로맨스 대신에 감정 소모 없이 볼거리로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선호하다보니 로맨스 드라마의 스토리 텔링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녀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는 사극 로맨스 '은애하는 도적님아'의 두 주인공 '은조'(남지현·왼쪽)와 '열'(문상민)./KBS

이 같은 ‘하이브리드 로맨스’ 붐은 기존 공중파·케이블 외에도 OTT의 가세로 더 두드러질 전망이다. 올해 디즈니+는 로맨스에 시대극과 미스터리를 섞은 ‘현혹’과 판타지 시대극인 ‘재혼 황후’를 공개할 예정이다. 방송가에서도 ‘21세기 대군부인’(MBC) 같은 가상 역사 로맨스물이 기대작으로 꼽힌다. 시청자들의 취향 변화를 고려하면 ‘장르 혼종 로맨스’에 대한 선호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자칫 시간 여행, 영혼 체인지 같은 비슷한 소재의 반복으로 자기 복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