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안성기(75)가 5일 세상을 떠나자 그와 60여 년 지기 친구인 ‘국민 가수’ 조용필(76)과의 인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일이 1월 1일인 안성기는 학교에 빨리 입학했고, 조용필과 경동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특히 3학년 때는 짝꿍이었다. 서울 돈암동(안성기)과 정릉(조용필)에 산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조용필은 1997년 KBS ‘빅쇼’ 출연 당시 “(안성기는) 저하고 중학교 동창이면서 같은 반이었다”며 “제가 29번이었는데, 안성기는 바로 제 짝인 30번이었다”고 했다. 조용필이 기억하는 안성기의 어린 시절은 “학교에서 머리를 기른 딱 한 명의 학생”이었다. 당시 안성기는 아역 배우로 활동 중이었고, 중학교 3학년 때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얄개전’(1965)이 상영되던 서울 아카데미 극장에 조용필을 비롯한 친구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조용필은 “크리스마스 때인가, 집에서 저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는데 성기가 밖에서 부르더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며 “아버님이 ‘안성기와는 얼마든지 놀아도 괜찮은데, 다른 애들과는 안 된다’고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안성기는 당시 이미 스타였지만, 조용필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안성기는 2018년 조용필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한 릴레이 인터뷰 첫 주자로 나서 “(조용필은) 조용한 모범생이어서 가수가 될지 꿈에도 몰랐다”며 “신만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누구도 그런 기미를 채지 못했고,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구 조용필은 자연인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수 조용필은 어마어마하다. 진짜 거인”이라며 “가창력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창작 의지, 이런 것들은 정말 귀감이 된다”고 친구를 치켜세웠다.
안성기는 평소 조용필의 곡을 즐겨 불렀다. 애창곡 중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한 소절을 직접 부르며 “이 노래는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몸과 마음이 푸근하게 젖어든다고 할까?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고 꼽았다.
안성기는 1997년 ‘빅쇼’에 게스트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서 조용필의 기타 반주에 맞춰 애창곡인 페기 리의 ‘자니 기타’(Johnny Guitar)를 함께 불렀다. 안성기는 노래를 부른 뒤 “이런 무대에서 노래했다는 게 정말 영광스럽다. 친하기는 하지만 조용필 옆에서 (노래) 하니 좀 떨리기도 하고 영광스럽다”며 “저도 옆에서 잘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앞으로 한 20집 정도에서 또 만나서 그때는 더 구수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용필은 이 방송으로부터 27년 뒤인 2024년 20집을 발표했다. 하지만 안성기가 2019년부터 혈액암을 투병하면서 방송 등 공개 석상에서 두 사람의 재회는 성사되지 못했다.
두 스타의 인연은 공동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안성기는 2003년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인 ‘실미도’에 출연했는데, 조용필은 이 영화 장면으로 정규 18집 타이틀곡 ‘태양의 눈’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오페라와 록을 결합해 강렬하고 웅장한 ‘태양의 눈’은 684 북파부대의 비극적 실화를 다룬 ‘실미도’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성기는 박중훈과 함께 주연한 영화 ‘라디오스타’(2006)에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또 다른 노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사용하자고 이준익 감독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평소 자신의 곡을 영화에 삽입하는 것을 꺼려한 조용필은 안성기의 부탁에 흔쾌히 곡 사용을 허락했다.
2009년 안성기가 조용히 모친의 장례식을 치렀을 때도 두 사람의 우정은 남달랐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많이 어려웠고, 안성기는 이를 고려해 조용필을 비롯한 어머니를 잘 아는 일부 친구에게만 연락해 장례를 치렀다.
2013년 두 사람이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나란히 받은 모습도 화제가 됐다. 훈장을 수훈한 뒤 조용필이 안성기와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주목받았다.